주간동아 634

2008.05.06

성장기 딸에게 보내는 엄마의 편지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Khhan21@hanmail.net

    입력2008-04-30 15:25: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성장기 딸에게 보내는 엄마의 편지

    네가 어떤 삶을 살든 <BR>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BR>공지영 지음/ 오픈하우스 펴냄/ 256쪽/ 1만2000원

    밀리언셀러 ‘스펀지’(동아일보사)는 파편화된 단편지식을 다룬다. 누구는 그것을 잡학(雜學)이라 표현하면서 이 잡학이 부모와 자식 사이의 단절된 인간관계를 뚫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된다고 했다. 오늘날은 휴대전화 등 온통 1인 미디어로만 소통이 이뤄지는 바람에 가족 구성원 간의 진솔한 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이러한 사회적 틈새를 비집고 ‘영 어덜트(young adult)’ 소설이 뜨고 있다. 영 어덜트는 주로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에 이르는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데, 영 어덜트를 타깃으로 하는 카멜레옹이라는 출판 브랜드도 등장했다.

    ‘완득이’(김려령 지음)는 창비가 펴내고 있는 ‘청소년 문학’ 시리즈의 여덟 번째 책이다. 하지만 출판사는 처음부터 성인용 양장본을 따로 내놓았다. 열일곱 살 고등학생이 주인공인 이 소설은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성인까지를 겨냥한 것인데, 지금 영 어덜트들이 앓고 있는 성장통의 의미를 함께 고민해보라고 압박하는 셈이다. 그 압박은 어느 정도 먹혀드는 것 같다. 청소년 소설은 팔리지 않는다는 것이 철칙처럼 여겨지는 세상에서 한 달도 안 돼 4만부나 팔렸다고 한다. 특히 청소년용보다 성인용이 몇 배나 더 팔리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 땅의 영 어덜트가 지닌 가장 큰 고민은 대학입시와 취업이다. 20대 백수가 109만명이나 되고, 그나마 요행으로 취업을 했다 해도 대부분 ‘88만원 세대’라는 달갑지 않은 닉네임을 갖게 된다. 또 엘리트 교육의 강화로 입시에 대한 집착은 더욱 심해졌다. 최근 중앙정부는 ‘0교시’와 ‘야자(야간 자율학습)’를 허용하겠다며 지방의 교육위원회에 권한을 위임했지만, 정작 위임받은 곳에선 허용을 거부하는 바람에 자식을 둔 부모는 갈팡질팡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현실에서 공부에는 별 관심이 없고 실존적 문제로 방황하는 고3 아이를 둔 엄마라면? 최고의 인기작가 공지영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매주 화요일, 철없는 딸 위녕에게 편지를 썼다. 그리고 그 편지는 2년이 지나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오픈하우스)란 책으로 나왔다. 작가의 장편소설 ‘즐거운 나의 집’(푸른숲)에 등장하는 주인공 이름도 위녕이다. 소설 속의 주인공은 허구적인 인물로 볼 수 있지만, 이 편지의 대상이 된 인물은 실제 작가의 딸이다. 그리고 그 딸은 지금 이 땅에서 가장 외롭고 힘든 세월을 보내고 있는 보통명사로서의 딸이다.

    작가는 편지마다 한 권의 책을 화두로 삼는다. 작가는 딸과 자신의 사이에 빗줄기 같은 창살이 쳐져 있다고 느끼지만 다행히 책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작가인 엄마는 인생의 다른 많은 것들이 그렇듯, 가끔 좋은 책의 어떤 구절에서 인생이 방향을 트는 소리를 듣곤 한다. 그런 엄마가 마치 감전된 것처럼 마음이 찡했던 책의 구절을 편지에 인용하며 삶의 진정한 가치에 대한 충고를 일일이 늘어놓는다. 엄마는 그것을 딸의 어린 시절 운동회에서 목이 터져라 외쳤던 응원이라 생각한다.



    엄마는 나약하다. 첫 편지에서 같이 수영을 하겠다고 한 결심은 수영복이 없어서, 너무 울어 기운이 없어서 등 온갖 핑계를 대며 마지막까지 지켜지지 않는다. 마지막에는 진짜 수영장에 가긴 하지만 수영장이 대형 슈퍼마켓으로 바뀌어 결국 실천하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딸에게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는 충고는 빼먹지 않는다. 우리에겐 아직 남은 오늘이 있고 또 다른 수영장이 있다는 이유를 대며.

    작가는 딸에게 줄곧 매순간 시간의 주인이 되라고 말한다. 딸이 선의와 긍지를 가지고 있다면 궁극적으로 너를 아프게 할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성적이나 성격, 체중이 어떻든 딸은 이 시간의 주인이고 우주에서 가장 귀한 생명(사람)이라는 설명과 함께. 엄마는 힘들어하는 딸이 지금 이 시기를 좀 잘못 넘겨도 괜찮다는 생각을 한다. 아직 젊고 많은 기회가 있으니까.

    딸과 엄마가 서로에게 바라는 소망은 수없이 많지만 희망은 단 한 가지다. 그건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서로 존중하고 자유롭게 해주는 것이다. 이것은 인류가 누려온 매우 위대한 지혜다. 하지만 그런 지혜는 무척 단순하다. 그래서 엄마는 딸에게 내가 나이 들어 얻은 선물이라면 위대한 것은 단순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나는 이 글을 한 무가지에 연재될 때 처음 읽었다. 그때 자신의 상처 때문에 딸이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는 엄마의 마음을 느꼈지만, 자기 개인사를 또 털어놓는 데 대한 안타까움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요즘 나도 한 기자가 쓴 아버지에 대한 책으로 나의 과거사를 간접적으로 털어놓고는 과묵한 막내딸의 눈치를 살피던 처지였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애써 미뤄놓고 있던 책을 찾아 읽었다.

    그래서 내린 결론, 딸이 듣지 못하는 응원을 나도 목청껏 외치기로 했다. 봄날의 가뭄을 이기려고 깊이 뿌리 내린 벼들이 강한 태풍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법이니까. 나 또한 빗방울처럼 혼자였다는 생각을 하며 젊은 날을 지냈지만, 결국 나를 키운 것은 눈에 보이지 않은 수많은 이들의 응원이었음을 깨달았으니 말이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