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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호의 휴대폰 문화인류학

모바일, 그 찾기 힘든 ‘정성 결핍증’

모바일, 그 찾기 힘든 ‘정성 결핍증’

모바일, 그 찾기 힘든 ‘정성 결핍증’

가끔은 친구와 대화할 때 휴대전화를 꺼두는 게 어떨까?

“밭에서 일하는데 전화가 울린다. 달려가 받았더니 한국통신 이용에 불편한 점은 없으시냔다. -아, 일하는데… 하면서 화를 내려다가 참았습니다. - 불편 없고요. 일하느라 바쁘니까 중요한 용건 아니거든 끊어주세요, 그랬지요. 속으로는 ‘아니, 이것들이!’ 그랬습니다.”

-이철수 ‘가만가만 사랑해야지 이 작은 것들’ 중에서

전화는 발신자 중심의 매체다. 전화를 거는 사람이 시간을 선택하고, 받는 사람은 전화벨이 울리면 일단 받아야 한다. 그에 비해 편지나 e메일은 언제 열어볼지를 수신자가 결정할 수 있다. 그리고 문자메시지는 그 중간에 자리하고, MSN 같은 인스턴트 메시지는 전화 쪽에 좀더 가깝다. 김찬호의 휴대폰 문화인류학

모바일, 그 찾기 힘든 ‘정성 결핍증’

가끔은 친구와 대화할 때 휴대전화를 꺼두는 게 어떨까?



전화는 예측 불가능한 메신저다. 불쑥 끼어드는 전화벨 소리는 무료한 일상에 신선한 스타카토가 될 수 있다. 마치 예고 없이 찾아온 친구를 반가워하듯 말이다. 그러나 전화는 평온한 휴식이나 조용한 몰입을 방해하는 불청객이 될 때도 종종 있다.

내가 뭔가를 바쁘게 하고 있는데 전화가 걸려오면, 그대로 업무를 계속하면서 통화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간단한 대화는 상관없지만, 심각한 내용으로 들어가면 오프라인의 일과 온라인의 소통을 동시에 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집중력이 분산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e메일을 쓰면서 전화로 친구의 고민을 들어주는 것은 어려운 작업이다. 그런 상태가 몇 분씩 지속되면 두뇌에 엄청난 부하가 걸려 곧 지치게 된다. 그런 상황을 가리켜 ‘부분적 관심의 지속(continuous partial attention)’이라고 한다. 이를테면 강의를 들으면서 인터넷 검색을 하는 사람의 심리 상태 같은 것이다.

그런데 이는 두 가지 일을 병행하는 사람에게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대니얼 골먼의 ‘사회적 지능’이라는 책에 이런 사례가 나온다. 친언니를 잃은 한 여자가 그보다 몇 해 전 누나를 잃은 친구에게서 위로의 전화를 받았다. 친구가 건네는 애도의 말에 감정의 봇물이 터진 여자는, 언니를 오래 간호하면서 겪은 고생과 장례를 치른 뒤 상실감을 털어놓았다. 그런데 전화 너머로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친구는 컴퓨터를 하면서 통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1시간 남짓 심경을 털어놓는 동안 친구의 대답은 점점 성의 없어지고 요점을 벗어났다. 전화를 끊고 나서 그녀는 차라리 친구가 전화를 걸어오지 말았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성’이라는 말이 있다. 인간관계에서 매우 소중한 덕목이다. 그런데 정성이란 무얼까? 몸과 마음이 함께 있는 것이다. 굿을 하는 무당들은 신(神)이 잘 내리지 않으면 ‘정성이 부족하다’며 참가자들을 꾸짖는다. 몸은 여기 있지만 마음은 다른 데 가 있다는 뜻이다. 미디어가 발달하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정성이 희박해지는 경향이 있다. 가족이 모여 앉아도 각자 텔레비전에 빠져 있으니 누가 무슨 이야기를 해도 건성으로 듣기 일쑤다.

휴대전화가 보편화되면서 사람을 정성으로 대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카페에서 마주 보고 앉아 이야기하는데 상대방이 갑자기 전화를 받거나 문자메시지에 몰입한다면 앞사람은 무시당하는 느낌이 들 수 있다. 그야말로 몸 둘 바를 모르면서 자기도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린다.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감동을 준다. 시오노 나나미는 ‘남자들에게’라는 책에서 그 경험을 이야기한다. “나는 VIP라고 불리는 속칭 어르신과 만날 기회가 적지 않으나, 그들의 오피스에서 만나는 것은 무척 싫어한다. 끊이지 않고 걸려오는 전화로 대화가 연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야 흥이 날 리 없다. 그런데 이탈리아 전 총리는 달랐다. 대화 중에 전화를 일절 연결하지 않았다. 장관급이라 할지라도 우리의 단 10분간의 대화를 방해할 수는 없었다. (중략) 그는 결코 미남이 아니다. 추남이라고 하는 편이 사실에 가깝다. 그러나 여자를 이렇게도 관능적으로 다룰 줄 아는 남자는 용모의 미추를 넘어 섹시하게 보인다. 매력 있는 남자다.”

중요한 사람 만날 때 테이블에 휴대전화 금물

에티켓 전문가들은 중요한 사람을 만날 때 테이블에 휴대전화를 올려놓지 말라고 조언한다. ‘당신은 별로 중요한 사람이 아니다’는 메시지로 감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생각을 확실하게 밀어붙이는 사람들이 있다. 프랑스의 일부 고급 식당에선 입장할 때 휴대전화를 카운터에 맡겨야 한다고 한다. 그 식당에 들어오는 손님들이 워낙 귀한 사람들인 만큼, 대화 중 불쑥 걸려오는 전화의 방해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오프라인 공간에서 ‘몸소’ 만나는 사람들끼리 서로를 배려하면 그 사람들의 품격도 높아질 것이다.

영어에 흥미로운 표현이 하나 있다. “Would you give me an undivided attention?”이라는 말인데, 직역하자면 “내게 갈라지지 않은 관심을 주겠니?” 정도가 되겠다. 자신에게 집중해달라는 뜻이다. 이에 대해 흔히 하는 대답은 “Yes, I am all ears”다. 나의 존재 전체가 귀가 된다는 것이다. 온 귀를 쫑긋 세워 경청하겠다는 뜻이다.

정보의 폭주 속에서 만성적인 주의력 결핍에 시달리는 우리들, 정성이 소홀해 행여 가족이나 동료들에게 섭섭한 기분을 주고 있진 않은지 점검해보자. 상대방에게 몰입하는 눈빛으로 서로의 소중함을 일깨우자.



주간동아 2008.05.06 634호 (p6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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