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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東海야 잘 있느냐

부드럽고 차분하게 동해를 말하자

국제사회 설득 중장기 전략 필요 … 감정·정치 아닌 지명 제정 원칙 강조를

부드럽고 차분하게 동해를 말하자

부드럽고 차분하게 동해를 말하자

2007년 유엔지명회의 총회 모습.

4월21~23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유엔지명기구에 속한 한 위원회가 열렸다. ‘평가실행위원회(Working Group on Evaluation and Implementation)’라고 하는 이 위원회의 회의는 지난해 8월 뉴욕 유엔본부에서 5년 만에 열린 유엔지명표준화회의의 평가와 향후 실행방안을 주된 안건으로 삼고 있다. 필자를 비롯한 우리나라 전문가들은 유엔지명표준화회의에 대한 평가 설문을 분석하고, 1967년 이 회의가 시작된 이래 40년간 국제적인 지명표준화의 원칙과 규범으로 채택된 195개 결의안에 대한 분석·평가 방안에 관한 보고서를 제출해 토론을 이끌었다.

동해 표기를 되찾기 위한 ‘한국 사절단’의 노력은 2002년 이기석 서울대 명예교수(현 동해연구회 회장)가 이 위원회의 의장을 맡으면서 세계적인 지명 논의 분야로까지 확대됐다. 이러한 참여영역 확장은 앞으로 동해 표기를 확산하기 위해 나아가야 할 중요한 방향이기도 하다. 왜 그럴까.

현실 인정하되 ‘뒤집기 논리’ 개발 시급

첫 번째 이유는 우리가 동해 표기의 정당성을 설득력 있게 주장하기 위해서는 동해 표기가 국제적인 지명표준화의 원칙과 부합됨을 함께 알려야 하기 때문이다. 세계 곳곳의 지도에서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한 것에 우리는 화가 나고 잘못됐음을 말해야 할 의무감도 느끼지만, 감정을 최대한 절제한 채 우리 주장에 맞는 객관적 논리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 국제수로기구(IHO)가 펴낸 ‘해양과 바다의 경계(S-23)’에 아직도 ‘일본해’로 돼 있고 많은 지도제작자들이 이를 따르고 있다는 현실은 인정하되, 이를 뒤집을 수 있는 설득력 있는 논리를 제공해야 하는 것이다.

각기 다른 이름을 갖고 있는 지리적 실체(geographical feature)를 공유하는 국가들은 단일 이름을 확정짓는 합의에 이르도록 노력해야 하며 합의하지 못할 경우 각각의 이름을 인정해야 한다는 유엔지명기구의 결의안은, 단일 이름이 합의되기 전까지 적어도 ‘동해’와 ‘일본해’를 함께 쓰자는 주장을 뒷받침한다. 동해 같은 바다는 여기서 말하는 지리적 실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일본의 반론에 대해 우리는 적절한 개념과 사례를 통해 또 다른 논리를 제시해야 한다.



이번 샌프란시스코 회의에서 우리 대표단은 이 결의안이 시행되지 않는 문제를 제기하고 이를 보완하는 별개의 결의안에 대해 논의할 것을 고려하기도 했다.

현지 주민들이 사용하는 지명에 좀더 높은 가치를 둬 이를 우선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결의안은 또 다른 좋은 근거를 제시한다. ‘동해’는 우리 민족이 2000년 이상 사용한 이름이므로 적어도 우리 해역을 ‘일본해’라 부르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지명을 무형 문화유산으로 보고 이를 보호하자는 최근의 움직임은 우리의 숭배 대상이자 축복의 근원, 그리고 신성함의 원천인 ‘동해’를 우리 민족과 삶을 같이한 중요한 문화유산으로서 보전해야 할 대상임을 상기시킨다.

두 번째 이유는 동해 표기와 관련한 ‘국제사회의 피로현상’을 극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유엔 가입 이듬해인 1992년부터 유엔지명기구에 참석하면서, 이 지구상에 한민족의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동해’라는 바다가 존재함을 모든 수단을 동원해 알리고 이에 상응한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15년 이상 일본과의 지루한 논쟁이 계속되면서
부드럽고 차분하게 동해를 말하자

2006년 유엔지명회의에서 전략을 짜고 있는 한국 대표단. 시계 반대 방향으로 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주성재 교수.

국제사회는 이 이슈를 피곤하게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유엔 회의나 IHO 회의에서 이 문제가 제기되면 모든 참가국이 쥐 죽은 듯 조용한 장면을 연출하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우리 입장을 지지하는 지명전문가들조차 공식석상에서 이 문제가 거론되면 입을 닫아버린다. 의장은 한 영화의 대사처럼 ‘그만해라. 마이(많이) 했다 아이가’라는 듯한 표정으로 “양국이 더 얘기해봐라”며 피곤해하는 실정이다. 따라서 우리는 전략적으로 동해 표기 문제가 단순한 민족적 감정, 또는 일본 주장처럼 어떤 정치적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지명 제정 원칙 또는 국제적 지명 논의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된 것임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현재 국제기구에서 논의되고 있는 지명 제정 원칙에 충실하도록 우리 지명을 정비하고, 그 결과를 보고하면서 국제적인 지명 논의에 기여할 필요가 있다.

국제관계 이해에서 해법 찾아야

이러한 활동은 미개척 분야인 우리나라의 지명연구 분야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활동영역도 다양하다. 국제회의를 주관하거나 회의에 참가하는 것, 그리고 지명연구 분야에서 성과를 올리고 아직 지명 관리 시스템이 정비돼 있지 않은 개발도상국을 지원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국토지리정보원과 국립해양조사원에 축적돼 있는 육상·해양 지명의 제정과 관리 노하우를 전수하는 것은 동해 표기를 확산하는 간접적이면서도 매우 ‘힘 있는’ 방법이다.

동해 표기는 지도에 기록되는 단순한 표기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와 일본 북한, 그리고 국제기구 유엔과 IHO가 관여된 ‘국제정치적’ 문제다. 따라서 그 해법도 궁극적으로는 국제관계의 이해에서 찾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마케도니아 국명에 대한 그리스의 문제제기, 걸프만이라고도 불리는 페르시아만과 아라비아만 표기의 갈등처럼 그 끝은 요원해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일수록 중장기적 전략을 갖고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목소리를 차분히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방법과 논리 측면에서는 직설적인 것에서 간접적이면서도 부드럽고 설득력 있는 것으로 진행하는 ‘패러다임 시프트’가 필요한 시점이다.



주간동아 2008.05.06 634호 (p4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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