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24

2008.02.26

IQ 130 넘으면 수업료 공짜!

獨 프라이부르크大 ‘잔머리 규정’ 입방아 대학 개혁 첫걸음부터 크고 작은 소동

  • 슈투트가르트=안윤기 통신원 friedensstifter@gmail.com

    입력2008-02-20 11: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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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Q 130 넘으면 수업료 공짜!

    독일 바우하우스 대학의 캠퍼스. 독일 대학들은 현재 개혁 요구에 직면해 있다.

    600년 이상의 전통을 자랑하는 독일 대학들은 재학생들에게 수업료 면제, 장학금 지급, 각종 생활편의 제공 등 경제적 혜택을 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독일이 ‘대학생들의 천국’으로 불리는 것도 이제는 옛일이 될 것 같다. 지난해 여름부터 독일 대학들도 수업료를 징수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물론 액수는 학기당 80여 만원으로 다른 나라들보다 많다고 하기 어렵다. 또 전체 16개 주 가운데 여전히 수업료를 면제하는 주도 절반가량 된다. 독일에서는 학교 이동도 수월한 편이니, 수업료를 내기 싫다면 다른 주의 대학으로 옮기면 그만이다.

    지난해 여름부터 수업료 징수 학생들 동요

    그러나 ‘대학 수업료 제도’가 독일에 도입된 사실 자체가 오랜 전통을 벗어나는 혁신의 첫걸음으로 볼 수 있다. 또 새로 정립될 대학의 상(像)이 어떤 것일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기에 수업료 징수에 관해 대학 당국이나 학생들 모두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다. 독일 대학생들의 반응은 3가지로 나뉜다. 순응하거나 수업료 거부 운동을 벌이거나, 아니면 조용히 학교를 옮기는 것이다.

    수업료라는 뜻밖의 소득원이 생긴 대학도 무조건 좋아할 입장이 못 된다. 독일 대학은 기본적으로 주 정부의 재정 지원으로 운영되는데, 이때 교육예산 분배의 1차 기준이 등록학생 수다. 그러니까 학생 수가 줄어들면 대학 당국은 재정적 손실을 보게 된다. 이런 이유로 주 정부의 정책 탓에 수업료를 징수하게 된 대학들이 학생을 잃지 않기 위한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



    바덴뷔르템베르크주에 있는 튀빙겐대학의 경우 중앙도서관 개관시간을 크게 늘리고 학생식당 테이블을 단장하는 등 ‘여러분이 낸 돈은 결국 여러분의 복리를 위해 쓰인다’는 암시를 주려고 애쓰고 있다. 수업료를 면제받을 수 있는 기회도 많다. 강의를 듣지 않아도 되는 박사과정 학생은 당연히 수업료 면제다. 수업료 제도가 도입되기 전 입학한 학생들도 일정 기간 수업료를 면제받는다. 미취학 자녀가 있는 학생도 수업료 면제 대상에 속하고, 가족 중 대학생이 여러 명일 때도 한 명만 수업료를 내면 된다.

    물론 이런 조치는 주마다, 학교마다 다르다. 그중 가장 기발하면서도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대학은 서남부의 프라이부르크대학이다. 이 대학은 ‘지난 3개월 이내에 실시된 지능검사에서 아이큐(IQ)가 130 이상일 경우 수업료를 면제한다’고 선포했다. 일명 ‘잔머리 규정’이라 불리며 독일인들 입방아에 오르고 있는 이 조치의 뜻은 우수한 두뇌의 학생들이 수업료 때문에 학교를 떠나는 일이 없게 하겠다는 것이다. 나아가 전국 우수 두뇌들을 향한 대학 측의 구애의 뜻도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0월 제2기 ‘독일 엘리트 대학’으로도 선정된 프라이부르크대학에서 경제적 부담 없이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은 적지 않은 학생들에게 뿌리치기 어려운 유혹이 될 수 있다. 대학 간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고, 대학마다 더 많은 후원금을 모으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이때 우수 두뇌들이 프라이부르크대학에 몰려든다면 이보다 좋은 학교발전 전략이 있을까?

    이런 조치의 법률적 근거도 찾기 어렵지 않다. 바덴뷔르템베르크주의 대학 수업료 관련 법에 따르면 ‘비범한 재능이나 탁월한 학문적 업적이 있는 경우 수업료를 면제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여기서 ‘비범한 재능’을 어떻게 평가하는지가 관건인데, 프라이부르크대학은 이를 ‘아이큐 130 이상’이라고 정한 것이다.

    “상식 위배” 몇몇 학생들 소송

    2007년 겨울학기에 이 조항의 혜택을 입은 학생은 150명가량 된다. 이들은 수업료 80만원을 아끼기 위해 기꺼이 검사비 8만원을 내고 ‘아이큐 130’의 관문을 통과한, 속칭 ‘약삭빠른 여우들’이다. 그러나 대다수 학생들은 이러한 대학 당국의 조치를 불쾌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누가, 무슨 권리로 개개인에게 지능검사를 하며, 또 왜 그것을 경제 문제와 결부하는 것인가?

    몇몇 학생들은 학교를 상대로 소송도 걸었다. 대학이 학생들의 학업 성취가 아닌, 지능검사 같은 학문 외적 기준을 가지고 평가하는 것은 상식에 맞지 않는다는 게 논거였다. 지난해 11월 중순 열린 행정소송 심리에서 학생들의 주장은 설득력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학교가 패소한다면 ‘아이큐 130’ 조항은 한때의 우스꽝스러운 스캔들로 기록되며 철폐되겠지만, 혹 그렇게 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프라이부르크대학 학생회는 또 다른 대응 조치를 생각해놓았다고 한다. ‘지능검사 준비반’을 상시 운영한다는 게 그것이다.

    그렇게 되면 학생들은 본연의 전공 공부보다는 당장의 수업료가 걸린 아이큐 시험 대비에 많은 시간을 쏟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아이큐 130 이상이면 수업료 면제’가 ‘대학 개혁’이라는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기 위해 내놓은 학교발전 전략인지, 아니면 잔꾀에 불과한지 학생들은 대학 당국에 묻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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