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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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자발적 기부? 총수들의 자충수

‘최순실 게이트’ 진앙지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 낸 재벌의 자가당착

  • 정선섭 재벌닷컴 대표 ceo@chaebul.com

    입력2016-11-21 09: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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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순실 게이트’ 진앙지인 미르·K스포츠재단의 거액 출연금 기부에 동참한 재벌그룹 총수가 줄줄이 소환돼 검찰 조사를 받았다. 두 재단에 출연금을 낸 재벌은 18개 그룹, 53개 계열사다. 이들이 낸 출연금 총액은 774억 원. 여기에 삼성 등 일부 재벌은 최순실 씨 측과 직거래하거나 박근혜 대통령과 독대한 사실이 드러나 ‘부적절한 거래’에 대한 의혹이 짙어지고 있다.



    “전경련이 요청해와 냈다”

    검찰은 해당 재벌 총수를 검찰청사로 불러 참고인 조사를 했다. 이들이 출연금을 낸 경위와 이 과정에서 박 대통령이나 안종범 전 대통령비서실 정책조정수석 등 권력자의 ‘강요가 있었는지’, 또한 ‘대가성이 있었는지’ 등을 밝히는 게 목적이다. 검찰 조사에서 재벌 총수는 한결같이 ‘자발적 기부’라고 진술했다. 물론 ‘대가성이 없었다’고도 한다. ‘살아 있는 권력’에 불리한 증언을 했다 나중에 어떤 보복을 당할지 모르는 일이니, 재벌들이 그렇게 주장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대가성이 없는 자발적인 기부였다’고 주장하는 재벌 총수들의 강변은 몇 가지 점에서 ‘자가당착’에 빠질 공산이 크다.

    첫째, ‘자발적 기부’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미르·K스포츠재단이 재벌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재단이거나 ‘정부 혹은 공공기관이 설립’한 재단이어야 한다. 재벌들이 국민 경제를 위해 스스로 설립한 재단에 돈을 냈다면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다. 하지만 이 두 재단은 재벌이 만든 재단도, 정부나 공공기관이 만든 재단도 아니다. 설립 주체가 불분명한 민간재단일 뿐이다. 그럼에도 18개 재벌이 줄을 서서 돈을 냈다는 것은 설명이 안 된다. 재벌들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요청해와 냈다”고 하지만, 검찰 조사 결과 이들 재단에 출연금을 내기 전 재벌들과 전경련이 수차례 회의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재단의 성격이나 배후를 충분히 알 수 있었다는 얘기다. 이승철 전경련 상근부회장도 검찰에서 “안 전 수석의 강요가 있었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

    둘째, ‘자발적 기부’라는 주장은 스스로 ‘탈세’ ‘횡령’ ‘배임’ ‘주주 권익 침해’는 물론, ‘뇌물공여’ 같은 경제적 범죄를 저질렀음을 시인하는 꼴이다.



    공금인 회사 돈을 쓰려면 반드시 근거가 있어야 하고, 그 비용을 회계상 정당하게 처리해야 한다. 기업 관계자들은 ‘기부금’이나 ‘사회공헌기금’ 등으로 회계처리를 했다고 주장하지만, 상당수 기업은 두 재단에 낸 자금의 출처가 불분명하다. 이에 대해 세무조사를 할 필요도 있다.

    또 ‘자발적 기부’라는 주장은 ‘횡령’ ‘배임’으로 이어질 수 있다. 회사 공금 수십억 원을 지출하는 과정에서 이사회 결의조차 없었다면 이는 심각한 대목이다. 일부 기업은 “회사 내규상 기부금은 이사회 결의사항이 아니다”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정상적 기부일 때 적용되는 얘기다.

    ‘주주 권익 침해’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사내자금이 유출되면 투자자 처지에서는 그만큼 자신이 얻을 수 있는 배당금 등의 기대수익을 상실하게 된다. 정당한 사회공헌에는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지만, 부당한 사외 유출은 명백한 주주 권익 침해다.

    ‘자발적 기부’라는 주장의 가장 큰 문제는 ‘뇌물공여’ 부분이다. 사실 ‘뇌물죄’가 성립하려면 ‘대가성’이 분명해야 한다. 하지만 ‘불이익을 받지 않고자 금품을 제공하는 행위’도 ‘포괄적 뇌물’이다. 그것이 공무원이나 권력기관이 연루된 사안일 경우 ‘선의의 기부’라고 의미를 축소할 수 없다. 더욱이대통령과 대통령비서실 수석까지 개입됐다면 ‘포괄적 뇌물’일 개연성이 높고, 이들에게 돈을 준 쪽은 ‘포괄적 뇌물공여’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셋째, ‘자발적 기부’라는 주장은 재벌 스스로 정경유착에 앞장섰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셈이다. 과거에도 재벌은 수없이 많은 정경유착 사건으로 곤욕을 치렀다. 총수가 사법처리된 적도 있고, 사회적으로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한국 재벌사를 얼룩지게 만든 대표적인 정경유착 사례를 짚어보자. 이승만 정권의 ‘중석(텅스텐)불 사건’(1952), 박정희 정권의 ‘사카린 밀수 사건’(1966), 전두환 정권의 ‘일해재단 사건’(1983), 노태우 정권의 ‘율곡비리 사건’(1993), 김영삼 정권의 ‘김현철 게이트’(1997), 김대중 정권의 ‘옷로비 사건’(1999), 한나라당의 ‘불법 대선자금 사건’(2002), 노무현 정권의 ‘박연차 사건’(2009), 이명박 정권의 ‘저축은행 사건’(2012)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들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해당 재벌총수는 사법처리라는 수난을 겪었다. 사실 이런 권력형 비리사건에서 재벌은 ‘피해자’라는 인식이 강했다. 권력에서 요구하니 마지못해 돈을 갖다 줬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자발적 기부라고 했으니 정경유착의 출발점이 재벌임을 자인한 셈이다. 자칫하면 재벌에 대한 국민의 인식을 더욱 부정적으로 만들 수 있다.

    넷째, 민간재단에 불과한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 모금에 박 대통령과 안 전 수석 등 권력자가 개입한 것이 합법적인가 하는 부분이다.



    선의로 도와주신 기업?

    박 대통령은 두 번의 대국민사과에서 ‘선의로 도와주신 기업’이라고 말해 사실상 자신이 재단 출연금 모금에 개입한 사실을 인정했다. 2014년 11월 시행된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일명 기부금품법) 제6조를 보면 ‘기부금품 출연 강요의 금지 등’에 관한 내용이 있다. 1항에는 ‘모집자나 모집종사자는 다른 사람에게 기부금품을 낼 것을 강요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했으며, 2항에는 ‘모집종사자는 자신의 모집행위가 모집자를 위한 것임을 표시하여야 한다’고 규정했다. 당연히 제삼자도 기부금 모금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두 재단의 직접 당사자도 아닌 인물이 재벌들의 민간재단 기부금 모금에 개입했다면 이는 법을 위반한 셈이다. 더욱이 공무원 신분으로 개입했다면 이는 공직자 윤리에도 어긋나는 대목이다. 간접적이든, 직접적이든 이를 인식한 상황에서 재벌이 기부금을 냈다면 사실상 ‘공모’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다섯째, 당초 두 재단에 출연 사실이 들통났을 때 대다수 재벌은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검찰 조사에서는 ‘자발적 기부’로 태도를 바꿨다는 점이다. 그러면서 출연 이유를 ‘재단 취지가 좋아서’라고 했다. 이런 주장이 가능하려면 두 재단의 성격이나 운영 등을 명확히 파악했다는 근거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대다수 재벌은 두 재단의 정체를 거의 알지 못하는 상황이다. 최순실 씨 등이 이 재단의 실질적인 소유자라는 사실을 문제가 불거진 뒤에야 알았다는 게 재벌들의 설명이다. 재단 설립 취지가 좋아서 기부금을 냈다고 주장하는 재벌들의 설명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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