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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창|전향적인 改名 허가

‘새벽이 오기 전에 걸어온 사람’ … 인디언 이름 짓기 되새겨볼 만

‘새벽이 오기 전에 걸어온 사람’ … 인디언 이름 짓기 되새겨볼 만

‘새벽이 오기 전에 걸어온 사람’ … 인디언 이름 짓기 되새겨볼 만

‘늑대와 춤을’

월드컵 등에서 가끔 불가리아 축구팀의 경기를 보면서 신기해한 것이 하나 있었다. 선수들의 이름이 열의 여덟이나 아홉은 ‘프’로 끝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페트코프, 보리미로프, 페트로프 하는 식이다. 정확히 말하면 이름이 아닌 성이고, 슬라브 계통의 언어에서 많이 보이는 일종의 어미라고 하지만 ‘프’ 자 돌림으로 통일된 것 같은 이름들에서 우선 느껴지는 것은 일정한 규격에 갇힌 듯한 답답함이었다.

그런데 사실 우리의 경우에도 사람의 성명에는 또 다른 ‘규격화’가 있다. 한자 문화권의 특성이지만 성 한 글자에 이름은 두 글자로 된 것이 ‘공식 성명 규격’인 셈이다. 그러나 우리네 이름이 원래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다. 가령 박혁거세나 연개소문, 흑치상지처럼 고대 시대만 해도 성이 두 글자, 이름도 세 글자인 경우가 많았다. 노리사치계 같은 다섯 자 이름도 귀에 익다.

지금의 ‘석 자 규격’으로의 변화는 물론 부르기에 적절한 음절 단위로 발전해온 ‘진화’의 한 흐름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영어권에서도 이름은 음절 수 제한 없이 자유롭게 짓지만 긴 이름은 약칭으로 부르는 것도 그런 이치다. 가령 엘리자베스는 ‘리즈’로, 로버트는 ‘밥’으로 부르는 식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이름 형식이 상상력의 한계를 지우는 일정한 틀로 작용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그것은 이름이 단순히 호칭을 넘어서 어떤 사람을 가장 분명히, 압축적으로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인터넷 세상에서 많이 쓰는 아이디들에서 보이는 자유분방함과 다양함은 그런 면에서 ‘세 글자 감옥’에서 벗어나보려는 일종의 반작용이다. 그러나 이 같은 사이버 세계의 현상이 전적으로 새로운 현대적 현상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 전통의 회복이랄 수 있다. 고려 이후 족보와 호적이 생기면서 이름은 간명해졌지만, 규격화의 길을 걷는 한편 이를 상쇄하는 반대의 흐름도 있었다.

옛사람들은, 이름은 그 사람의 주체성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하늘은 이름없는 사람을 내지 않고, 땅은 쓸데없는 물건을 기르지 않는다’는 인본주의 사상의 바탕에는 사람의 이름을 존귀하게 여기는 의식이 있었다. 본래의 이름과 함께 성인에 대한 존칭으로 자(字)를 부르고, 지인 간에 아호(雅號)를 교환하며, 죽으면 그 평생의 행적을 평가해 시호(諡號)를 주고 했던 것들은 이름으로 그 사람의 행실과 지향을 보여주려 한 것이었다.



‘범은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속담에는 이같이 범상치 않은 ‘존명(尊名)’ 사상이 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는 어느 나라보다 개명이 쉽지 않은데, 거기에는 이 같은 배경이 있었다.

‘나죽자’나 ‘김치국’ ‘한심해’ 같은 이름을 숙명처럼 안고 살아가야 하는 이들에 대해 우리 사법부는 그동안 ‘사회적인 혼란과 부작용’을 들어 대부분 기각해왔다. 여기에는 금융 행정상의 불편과 혼란도 고려됐다고 하는데, 그러나 이런 이유는 그 개인이 평생 겪는 고통을 외면하는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사람의 운명을 좌우하는 이름이 그 사람을 드러내고 고양시키는 것이 아니라 억압하는 경우, 이 같은 억압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국가 권력. 이건 이름에 대한 존중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다. 행정 편의주의라는 이름의, 국가권력의 횡포일 뿐이다.

그래서 개명 허가 기준에 관해 대법원이 최근 ‘전향적’으로 선회했음을 보여준 새 판결은 사실 전향적이라기보다는 지극히 정상으로 돌아온 것일 따름이라고 해야 맞을 듯하다.

법원이 이름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함부로 좌우할 수 없다는 것의 확인은 또 한편으로 자기 이름, 또 자기가 이름을 지어주는 사람의 운명에 대해 공동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깨치게 한다.

여기서 인디언들의 이름 짓기에 대해 되새겨볼 만하다. 인디언들은 성인이 되어야 비로소 이름을 가지게 된다. 그 이름은 그 사람의 성격이나 품성을 나타내는 단어들이 조합된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인디언 이름 하면 영화 ‘늑대와 춤을’에서-물론 ‘늑대와 춤을’도 사람 이름이다-웃음을 자아냈던 ‘주먹 쥐고 일어서’와 같은 우스꽝스런 이름부터 떠올리지만 이는 오해에 가깝다.

‘새벽이 오기 전에 걸어온 사람’, ‘맑은 하늘과 같이 나타난 사람’ 등등. 자연과의 교감을 담으면서 그 사람의 인격을 한눈에 ‘그려주는’ 탁월한 이름들이 진짜 인디언 이름들이다. 이름이 이런 식이라면 쉽게 짓지도, 쉽게 바꾸려고도 하지 않을 것이다.



주간동아 2005.12.13 514호 (p79~79)

  • 이명재/ 자유기고가 min1627@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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