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83

2005.05.03

“아버지를 아버지라 못하고…”

YS에 이어 DJ도 숨겨진 딸 언론 등장 … 한 맺힌 ‘딸들의 전쟁’ 이제부터 시작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입력2005-04-28 15: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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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를 아버지라 못하고…”

    1987년 10월27일 고려대 집회에서 DJ와 YS가 나란히 앉아 있다.

    양김(金)의 말년이 불운하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딸 가네코 가오리(한국명 주현희)의 실체가 드러난 데 이어, SBS가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숨겨진 딸을 공개, 파장을 몰고 왔다. 정치적 역할을 끝낸 두 노정객의 평화로운 노년은 느닷없이 등장한 딸로 인해 위협받고 있다. 특히 민주화와 인권 옹호에 앞장서왔다고 자부해온 양김의 ‘숨겨진 그늘’은 그들이 평생을 던져 일군 정치적 업적과 신념에 대한 의혹으로 이어질 만큼 크고 넓다. 때문에 상도동과 동교동은 느닷없이 등장한 그들의 존재가 부담스럽기 그지없는 표정이다.

    그러나 40여년 어둠의 터널에 갇혀 살아온 딸들과 그들의 어머니는 설움에 북받쳐 눈물을 흘리며 “지금이라도 우리 존재를 인정해달라”고 몸부림친다. ‘뿌리’를 찾겠다는 양김의 딸들은 유전자 검사는 물론 친생자확인소송도 불사한다는 태도다. 아버지에 대한 딸들의 도전에는 이제 시민단체까지 가세할 분위기다. 과연 양김은 이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줄까.

    SBS 방송을 지켜본 많은 사람들은 DJ의 딸 김모 씨가 동교동에 매우 냉소적인 감정을 가진 것에 대해 납득하기 힘들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몇 차례 동교동을 다녀온 김 씨는 이를 ‘거지 짓’이라고 표현했다. 김 씨는 인터뷰 여러 군데서 동교동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냈다. 또 “어머니가 여러 차례 호적 문제를 정리해달라고 했지만 거절당했다”고 밝혀 동교동에 대한 감정선이 복잡해진 배경을 은연중에 시사했다. 김 씨의 이모인 대학교수 김모 씨도 그들 모녀의 평생 화두가 호적 문제였음을 확인해줬다. 김 씨는 4월20일 “그동안 동교동계가 나보고 미국으로 떠날 것을 종용했다”고 주장하며 울먹이기도 했다.

    40여년을 아버지 없이 살아오다 YS를 상대로 친생자확인소송(주간동아 388호, 2003년 6월12일자 참조)을 준비하고 있는 가오리와 그의 어머니 이경선 씨 처지도 DJ의 딸 김 씨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당시 강금실 변호사에게 전달한 친생자확인소송 서류에서 “YS가 나의 아버지입니까, 아닙니까. 재판을 통해 밝혀주십시오”라며 어둠 속에 갇혀 살아온 지난날에 대한 회한을 호소했다. 이경선 씨는 4월21일 전화통화에서 “10여 차례 상도동에 가오리의 입적을 요구했으나 그때마다 거절당했다”고 말했다. 이 씨는 “소송을 통해서라도 딸에게 아버지를 찾아주겠다”고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유전자 검사·친생자확인訴 불사



    이들의 요구는 양김의 처지에서 보면 매우 곤혹스러운 문제임이 틀림없다. 특히 정치 일선에서 활동하던 당시 이들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은 정치적 자멸을 부를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민주 대 반민주 구도로 점철된 1970~80년대 정치 기상도는 여야의 상생을 불가능하게 했다. 이런 상황에 ‘혼외’ 자식 문제가 터져나왔다면 정치적 타격은 불을 보듯 뻔하다. 때문에 양김은 이들의 존재를 철저하게 비밀에 부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70년대 양김의 정치활동 과정을 지켜본 원로 정치인 L씨는 양김이 하룻밤 ‘풋사랑’을 한 장소가 요정이고, 이것이 이들에게 더 큰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란 분석을 내놓았다. DJ의 딸 김 씨는 방송 인터뷰에서 “60년대 말 한정식 집에서 일하다 DJ를 만나 1~2년 연애하다 나를 낳았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로맨스가 시작된 과정과 장소를 설명했다. 가오리의 엄마 역시 당시 유명했던 한정식집 J에서 YS를 만났다는 것이 정설이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못하고…”

    YS의 딸 가오리와 이경선 씨가 2001년 제기한 친생자확인소송 관련 서류.

    이른바 ‘요정 정치’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과거 정치인들의 술집 출입과 일탈적 행위는 그다지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당시 야당 인사들도 정권과 맞서기 위해 하루 종일 치열한 머리싸움을 해야 했고 저녁이면 긴장을 풀고 편하게 한잔하기 위해 술집을 찾는 생활이 반복됐다고 한다. 삼청각·선운각·청운각 등 이른바 이름깨나 날리던 요정에는 내로라하는 정·재계 인사들이 인산인해를 이뤘다.

    그 과정에서 정치인과 종업원의 로맨스는 수시로 이뤄졌다고 한다. 유명 정치인이나 기업가들과 몇 번 만난 종업원이 의도적으로 몸을 숨겼다가 아기를 안고 와 당황시키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 당시 종업원들 가운데 일부는 정치인이나 기업가와의 하룻밤 풋사랑을 신분 상승의 수단으로 활용했을 법하다. 실제 출산을 통해 ‘작은집’의 위상을 확보한 경우도 있었다. 반면 출산에는 성공했으나, 아기를 외국으로 입양 보내 신분 상승 꿈이 좌절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양김은 ‘사생활’을 철저하게 비밀에 부쳤다. 80년 초·중반부터 정보기관의 손을 탄 가오리 모녀를 챙긴 사람은 당시 상도동 비서로 있던 김덕룡 전 한나라당 원내대표. 이경선 씨에 따르면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상도동에 전화를 했고, 그때마다 김덕룡 비서가 연락을 도맡았다”고 말했다. DJ의 경우 정일영, 정대철, 조풍언 씨 등 비밀을 보장할 수 있는 측근들을 동원해 모녀를 관리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모녀 관리 정보기관 개입 의혹

    문제는 양김이 권력을 잡은 뒤 숨겨진 모녀 관리를 정보기관이 한 게 아닌가 하는 점이다. 이 경우 단순한 개인의 사생활 문제를 넘어 직권남용의 문제가 대두될 수 있다. SBS는 김은성 전 국정원 2차장과 정성홍 전 경제과장이 ‘특수사업’이란 명목으로 김 씨 모녀 관리에 나섰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사실 여부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지만 사실이라면 국정원으로서는 또 한번 오명을 뒤집어쓸 수밖에 없다.

    이에 앞서 국정원 전신인 국가안전기획부도 93년 가오리 모녀를 관리하는 데 나서기도 했다. 이경선 씨가 2003년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일본에서 살던 나는 (YS) 집권 시절인 93년부터 몇 차례 귀국해 청와대에 연락을 취했다. 숙소인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김 실장(김기섭 전 안기부 기조실장)이 찾아왔다. 몇 차례에 걸쳐 23억원을 받았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못하고…”

    DJ의 딸로 알려진 김 씨의 자택.

    이와 관련 국정원 측은 2003년 사실을 확인해달라는 주간동아의 요청에 “김기섭 전 실장 개인 차원에서 이 씨를 만난 것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국정원이 조직적으로 이 씨 모녀를 챙긴 적은 없다”고 해명했다. 상도동 측은 “김 전 실장을 김 씨에게 보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이 씨가 몇 차례 돈을 요구한 적은 있다”며 “돈을 뜯어내려는 수작”이라고 말했다.

    어둠의 터널에 갇혀 있던 모녀들은 자기 권리 찾기에 적극 나설 태세다. 김 씨의 경우 유전자 검사를 받겠다고 하고, 이경선 씨는 친생자확인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게다가 한 시민단체는 최근 이경선 씨 모녀의 뿌리 찾기에 동참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양김의 사생활 보호도 중요하지만 40여년간 소외되고 무시된 그들의 딸과 어머니의 인권도 이제 보살펴야 한다”는 것.

    양김은 이제 어둠의 터널을 빠져나오려는 모녀의 부름에 응답을 해야 하는 처지다. 과연 양김은 그들에게 손길을 내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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