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茶人기행 l 김종직

백성 위해 차밭 조성 ‘愛民 실천’

함양군수 시절 茶稅 고통 덜어주기 위해 시행 … 사리 버리고 의 좇은 도학의 삶

  • 정찬주/ 소설가

백성 위해 차밭 조성 ‘愛民 실천’

백성 위해 차밭 조성 ‘愛民 실천’

김종직이 유자광 시판을 철거토록 한 경남 함양군 학사루..

한겨울 햇살이 축복처럼 따사롭게 쏟아지고 있다. 나그네는 지금 김종직(金宗直)이 경남 함양군수 시절 조성했다는 관영(官營) 차밭 터를 가고 있다. 목민관이 백성을 위해 차밭을 만든 것은 아마 이것이 역사상 최초일 것이다.

점필재(畢齋) 김종직은 우리나라 도학의 정맥을 이은 사림파의 종조(宗祖)로 불린다. 효제충신(孝悌忠信)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아 실천하는 도학은 정몽주에서부터 비롯하여 길재-김종직-김굉필-조광조로 이어지는데, 특히 김종직은 사리를 버리고 의를 지키며 행하는 것이 도학을 공부하는 목적이라고 했다.

김종직이 관영으로 차밭을 일군 이유도 목민관으로서 애민(愛民)을 실천하고자 하는 도학정신의 구현이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그의 문집인 ‘점필재집’에서 그는 함양 시절을 회상하면서 차세(茶稅)로 인한 백성들의 고통을 다음과 같이 기록해놓고 있다.

“나라에 바칠 차가 이 고을(함양)에서는 나지 않는데도 해마다 백성들에게 차세가 부과되었다. 그래서 백성들은 나라에 차를 바치려고 전라도의 여러 곳에서 쌀 한 말을 주고 차 한 홉을 얻었다. 내가 이 고을에 부임했을 때 이러한 폐단을 알고 백성들에게는 책임을 지우지 않고 관가에서 구입하여 대신 납부했다.”

김종직은 관가에서 차세를 납부해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관영 차밭을 일군다. ‘점필재집’에나와 있는 그 사연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어느 날 김종직은 ‘삼국사기’를 읽다가 신라 흥덕왕 때 지리산에 당나라의 차씨를 심었다는 구절을 보고는 차나무를 찾는다. 마침내 노인들의 증언을 듣고 인근 엄천사(嚴川寺) 북쪽 대숲에서 몇 그루의 차나무를 발견하고는 땅 소유자에게 보상한 뒤 관청 땅으로 차밭을 조성한다. 차나무가 무성해질 몇 년 뒤에는 차세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리라는 감회에 젖어 다시(茶詩) 두 수를 읊조린다.

함양엔 ‘차밭 조성 터’ 기념비 세워져

신령 차 받들어 임금님 장수코자 하는데/ 신라 때부터 전해지는 씨앗을 찾지 못하다/ 이제야 두류산 아래서 구하게 되었으니/ 우리 백성 조금은 편케 되어 기쁘네.

대밭 밖 거친 동산 백여평 언덕에/ 자영차 조취차 언제쯤 자랑할 수 있을까/ 다만 백성들의 근본 고통을 덜게 함이지/ 무이차처럼 명차를 만들려는 것은 아니라네.

지리산 실상사를 조금 지나자 엄천사 터로 추정되는 휴천면 동강리 건너편에 ‘점필재 김종직 선생 관영 차밭 조성 터’라는 기념비가 눈에 띈다. 그 옛날 김종직이 함양 백성들의 고통을 덜어준 마음에 비하면 오늘의 정성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 관영 차밭을 실제적으로 되살려 명차를 개발한다면 김종직의 애민사상도 기리고 지방자치단체의 세수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 함양 군민의 뜻은 어떤지 궁금하다.

나그네는 서둘러 함양읍으로 들어가 김종직이 함양을 떠나면서 너무 일찍 헤어진 늦둥이 아들 목아(木兒)의 넋을 달래기 위해 심은 느티나무를 눈에 담는다. 가족을 사랑할 줄 알아야 남도 사랑할 줄 안다는 말을 다시금 새겨보게 하는 수백년 된 느티나무다. 사거리 건너편에는 학사루(學士樓)가 있다. 함양 태수로서 선정을 폈던 최치원을 기리기 위해 지은 누각인데, 김종직과 그 제자들의 운명을 바꾼 건물이기도 하다. 김종직이 당시 관찰사였던 유자광의 시판(詩板)을 보고는 소인배의 글이라 하여 누각에서 철거토록 했는데, 시판 철거는 훗날 연산군 때 훈구파에 의해 사림파가 참혹하게 화를 당하는 ‘무오사화’의 한 원인을 제공했던 것이다.

가는 길

88고속도로에서 지리산 나들목을 빠져나와 전북 남원시 실상사를 지나 30분 정도 달리면 김종직이 관영 차밭을 조성한 경남 함양군 휴천면 동강리에 이른다. 함양읍에 가려면 동강리에서 지방도로를 타고 20여분 곧바로 가면 된다.




주간동아 468호 (p69~69)

정찬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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