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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ㅣ실종자 가족의 눈물

애타는 부모들, 아이 찾아 삼만리

생업 포기한 채 전국 보호시설 뒤지고 전단지 배포 … 경제적 빈곤·가족 갈등 ‘후유증’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애타는 부모들, 아이 찾아 삼만리

애타는 부모들, 아이 찾아 삼만리

실종자 가족들이 애타게 찾고 있는 미아들의 전단지.

부산의 한 찜질방 폐쇄회로 TV에 찍힌 여자아이는 정말 정선이었다. 고개를 쳐들어 카운터에 턱을 걸치고 조잘대는 모습이나, 갈아입을 옷과 수건을 받아들고 잰걸음으로 뛰어가는 모습이 영락없는 정선이었다. “할머니와 놀러 온 여자아이가 자신의 이름이 정선이고 엄마 아빠는 없다고 했다”는 제보자의 확신에 찬 말에 정선이 아버지 우광현씨는 9월19일 실종된 딸을 이제야 찾게 됐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TV에서 실종 방송을 내보낸 직후 들어온 제보였습니다. 한달음에 부산까지 내려가서 경찰관들과 함께 그 여자아이를 찾아 부산 주택가를 밤낮으로 헤집고 돌아다녔어요. 10일 만에 찾아내긴 했는데… 아니더군요. 다리에 힘이 탁 풀리는 게, 죽을 맛이었어요.”

12월8일 경기 광주의 한 순댓국집에서 기자와 만난 우씨는 금세 눈시울이 붉어졌다. 큰형님이 운영하는 이 식당 앞 골목에서 놀던 정선이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진 지 벌써 석 달째. 정선이가 타고 놀던 자전거까지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동안 우씨는 수십 건의 제보 내용을 일일이 확인하느라 정신 차릴 새도 없이 전국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그는 “사업 실패로 아내와 헤어진 뒤 큰형님 댁에 두 딸을 맡겨놓고 제대로 돌보지 않은 탓에 이런 일이 생긴 것이 아닌지 자책감에 가슴이 죄인다”고 털어놓았다. 당시 그는 대출 상환금과 생활비를 벌기 위해 낮에는 주유소, 밤에는 대리운전 일을 했다. 우씨는 “대리운전을 다니면서 곳곳에 전단지 붙이는 일 말고는 딸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사실이 가장 마음 아프다”며 고개를 떨궜다.

제보만 오면 전국 어디라도 한달음에 … 그러나 허탕 일쑤



올 한 해도 실종사건이 연이어 발생했다. 1월에는 경기 부천에서 두 명의 초등학생이, 2월에는 포천의 여중생이 실종된 뒤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데 이어 9월 우정선양(6), 10월 천안 여고생 박수진양(16)과 화성 여대생 노모양(21)이 연달아 실종됐으나 수사 상황은 여전히 오리무중인 상태여서 가족들의 애간장을 녹이고 있다. 실종사건은 정상인보다 정신지체나 치매노인 등 ‘장애미아’ 발생 건수가 훨씬 많은데, 올해도 11월 말 현재 4725명의 장애미아가 발생했으며 이중 133명이 발견되지 않고 있다. 11월11일 등굣길에 실종된 김기훈군(17) 또한 그러한 경우다.

정신지체 3급 장애를 가진 기훈이는 수중에 몇 만원이 있을 때마다 PC방에도 가고 택시 타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느라 며칠씩 집에 들어오지 않곤 했다. 그리고 돈이 떨어지면 택시요금이나 식당 밥값을 내지 못해 파출소에 인계되어 집으로 연락이 오곤 했다. 그러나 기훈이가 사라진 11월11일 기훈이의 손에는 교통카드 한 장밖에 없었다. 하루하루를 가슴 졸이며 보내고 있는 기훈이 어머니 이창순씨는 “경찰이 단순 가출로만 보고 있어 더욱 답답한 심경”이라며 울먹였다.
애타는 부모들, 아이 찾아 삼만리

딸 정선이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경기 광주의 한 골목(왼쪽)과 정선이를 찾는 플래카드.



애타는 부모들, 아이 찾아 삼만리

4년째 실종된 딸 준원이를 찾고 있는 최용진씨(왼쪽)와 실종 직전 집에서 동생을 안고 있는 준원.

“기훈이 휴대전화 통화명세서라도 뽑아서 수사했으면 좋겠는데, 경찰에서는 기훈이 사건이 범죄와 연관됐다는 증거가 전혀 없기 때문에 불가능하다고만 해요. 없어진 날 이후 좋아하는 게임 사이트에 접속한 적이 한 번도 없고, 수신자 부담 전화까지 걸 수 있는 아이가 전화 한 통 안 하고 있어요. 정말 기훈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만 같은데 속수무책인 채로 있을 수밖에 없다니…. 불안해서 잠도 잘 오지 않습니다.”

어느덧 2004년도 다 지나가고 있다. 그러나 실종자 가족들에겐 연말연시의 흥겨움이나 크리스마스 시즌의 설렘 따윈 없다. 잃어버린 가족에 대한 간절함과 그리움은 해가 바뀌는 12월에 더욱 커질 뿐이다.

“준원이를 잃어버렸을 때 갓난아이였던 셋째가 이제 자라서 딱 준원이만한 나이가 됐어요. 그런데 이때까지 단 한 번도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준 적이 없어요.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을 해본 적도 없고요. 크리스마스이건 연말연시이건, 아무런 흥이 나지 않습니다. 다 싫습니다.”

최용진씨는 2000년 4월 친구네 집에 놀러 간다며 집을 나섰던 둘째 딸 준원이가 실종된 이후 전국을 돌며 딸 찾기에 나섰다. 지금까지 수십만 장의 전단지를 돌렸고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의 인가·미인가 시설을 방문해왔다. 허튼 제보라 할지라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찾아갔다가 헛걸음한 것도 수십 차례. 최씨는 2001년 실종가족모임을 발족시키고 회장을 역임하면서 미아찾기 지원법안 마련 등 사회적으로도 왕성한 활동을 벌여왔다.

그러나 이 같은 노력을 기울이느라 직장이나 가정생활은 엉망이 됐다. 제보 전화만 받으면 모든 일을 내팽개치고 달려나가는 바람에 한 직장에 오래 근무할 수도 없었다. 현재 최씨는 서울에 있는 가족들과 떨어져 충북 청원군의 한 공사현장에서 일하고 있는데, 이곳이 딸의 실종 이후 자리잡은 네 번째 직장이다. 준원이를 잃어버린 처음 몇 년간은 아예 직장을 쉬면서 전국을 돌아다니는 바람에 경제적 타격도 컸다.

가족들은 웃음 사라지고 연말이면 그리움 더해

준원이가 없는 최씨의 가정에는 웃음이 없어졌다. 아내는 꿈에 자꾸 준원이가 나온다며 눈물 바람이고, 그의 어머니는 툭하면 역술인을 찾는다. 당시 혼자 숨어서 울곤 했던 초등학교 4학년이던 큰딸은 이제 중학교 2학년이 됐는데, 엄마와도 대화를 별로 나누지 않는 말수 적은 소녀로 자랐다. 가족들끼리의 외식이나 주말여행 등 평범한 가족 풍경은 최씨 집안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최씨는 준원이를 잃은 뒤 친척들 보기에도 껄끄러워서 명절 때조차 고향에 내려가지 않다가 올해 추석 때야 처음으로 아내 없이 혼자 고향에 다녀왔다. 그나마 구김살 없이 자란 막내딸이 최씨에게 위안을 주고 있다.

애타는 부모들, 아이 찾아 삼만리

2003년 11월24일 서울역 광장에서 벌어진 미아찾아주기 캠페인.

“아침에 나갈 때 제 어깨를 툭 치면서 ‘아빠, 언니 찾으러 가지? 꼭 찾아와!’라고 해요. 저녁에 집에 돌아오면 ‘언니 못 찾았구나? 아빠 걱정 마, 내가 커서 찾아줄게요’라고 하고요. 아내와 남은 아이들 생각하면 즐겁게 살려고 노력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되네요. 앞으로는 노력해야죠.”

90년대 초반부터 대구 개구리소년 가족들과 함께 전국을 다니며 미아찾기 운동을 벌여온 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 시민의 모임(이하 실종가족모임) 나주봉 회장은 “실종은 가족을 잃어버리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남은 가족의 인생까지도 황폐화한다는 점에서 어떤 시련보다 가혹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실종가족모임을 찾는 실종 가족의 30∼40%가 사망, 가출, 이혼 등으로 가정 해체 상황에까지 이르는 실정이다. 처음 1∼2년은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전국을 돌며 아이 찾기에 주력하다가 별다른 성과가 없어 지치면 부부가 서로의 잘못을 비난하는 갈등 상황에 놓이게 된다는 것. 술에 취한 채 부부싸움을 벌이는 일은 다반사다.

실제로 2002년 5월 놀이동산에서 네 살 된 딸을 잃어버린 한 택시기사 부부는 사건 발생 6개월 만에 이혼한 후 딸 찾기를 포기한 상태. 나 회장은 “열심히 자녀를 찾으러 다니던 실종 가족이 갑자기 연락이 끊기는 때가 있는데, 대부분 부부 갈등 끝에 이혼하고 자녀 찾기를 포기한 경우”라며 “젊은 부부일수록 더욱 쉽게 갈라서는 경향이 있다”고 덧붙였다.

자녀의 실종은 남은 가족들을 극단적인 상황으로까지 내몰기도 한다. 99년 2월13일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실종된 송혜희양(18)의 어머니는 2년 전 음독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혜희는 그날 술에 취한 남자와 같이 버스에서 내린 것으로 확인됐으나, 경찰은 이 남자조차 찾아내지 못했다. 혜희 아버지 송길용씨는 “경찰이 단순 가출로 보고 사건 발생 이틀이 지난 뒤에야 수사에 착수했다”며 “곧바로 수사를 시작했다면 중요한 단서라도 찾을 수 있지 않았겠느냐”며 여전히 서운한 감정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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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째 실종된 딸 하늘이를 찾고 있는 조병세씨(왼쪽)와 하늘.

“딸 찾아나선 지 5년째 … 별의별 상상 다 들어”

경찰 수사에서 별로 기대할 것이 없자 송씨 가족은 직접 딸 찾기에 나섰다. 개 사육업을 하던 송씨는 화물차에 전단지를 붙이고 제주도를 포함한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120만장이나 되는 전단지를 뿌렸다. 마을 주민들과 함께 딸의 흔적을 하나라도 찾을까 싶어 마지막으로 목격된 지역 주변을 샅샅이 뒤졌다. 교사를 꿈꾸던 혜희는 전교에서 1, 2등을 다툴 정도로 공부도 잘하고 명랑한 둘째딸이었다. 중학교 때부터 지역구 국회의원의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부모를 기쁘게 했다. 송씨는 “할 수 있는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도 별다른 희망이 보이지 않자 아내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며 “나도 아내 뒤를 따라가고 싶은 심정이었다”며 말끝을 흐렸다.

조병세씨는 실종가족모임에서 ‘최고참’이자, 절망에 빠져 자녀 찾기를 포기하려는 가족들에게 힘을 돋우어주는 일을 하고 있다. 99년 6월24일 당시 여섯 살이던 조씨의 딸 하늘이는 엄마가 부엌에서 만들고 있던 새우볶음을 한 움큼 쥐고 집 밖으로 나가 이집 저집 들르며 친구들에게 나눠주었다는 동네 주민들의 목격을 마지막으로 10년째 소식이 없는 상태. 그러나 조씨 부부는 여전히 딸 찾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게다가 조씨는 딸을 잃은 고통을 달래기 위해 술에 의존하지 않으며, 그의 아내 또한 우울증을 극복한 상태여서 다른 실종 가족들에게 모범 사례로 비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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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은 장기미아들. 김기훈, 신태림, 모영광, 김대현, 송혜희(왼쪽부터). 이 아이들을 본 사람은 어린이찾아주기종합센터(02-777-0182)에 연락하면 된다.

딸이 하늘이란 이름보다 ‘안나’라는 세례명으로 더 많이 불렸을 정도로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조씨이지만, 딸을 잃은 뒤부터는 성당에 나가지 않는다. 주말마다 전단지를 가득 넣은 배낭 하나를 짊어지고 전국의 보호시설을 찾아다니느라 한가하게 성당에 앉아 있을 시간조차 없기 때문. 아내는 딸을 잃고 심각한 우울증에 빠졌고, 조씨 또한 툭하면 술을 마셨다. 그러나 이들 부부는 최근 들어 엄청난 스트레스를 극복하기 시작했다. 그의 아내는 2년 전부터 장애인 가정의 아이들을 돌봐주는 봉사활동을 통해 딸을 잃은 상실감과 우울증을 달래고 있다. 조씨 또한 3년 전부터 술을 끊고 그만두었던 직장을 다시 나가기 시작했다.

“하루는 엄청 술에 취한 상태에서 집으로 돌아오다가 하늘이를 봤어요. ‘하늘아, 아빠랑 집에 가자’면서 자연스럽게 그 아이 손을 잡고 걸었어요. 그런 저를 아이 엄마가 보고 경찰에 신고하는 바람에 한바탕 곤욕을 치렀습니다. 그 일 이후로는 술을 마시지 않아요. 정 가슴이 답답할 때는 관악산에 올라 소리를 지르지요.”

실종 가족들은 “머릿속이 둘로 갈라진 채 살고 있다”고 말했다. 잃어버린 아이 생각이 항상 머릿속을 떠나지 않으면서 일상생활을 꾸려나가야 하기 때문. 수사기관조차 찾아내길 포기한 상황에서 전단지 뿌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처량한 현실이지만, 이들은 자녀 찾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올해 추석 연휴 때 집 밖에 나갔다 현재까지도 연락이 없는 정신지체아 태림군(18)의 아버지 신용원씨는 직장을 그만두고 부산 일대 지하철역을 돌며 승객들을 상대로 아들에 대해 수소문하고 있는 상태. 신씨는 “정신병원 같은 시설에 아들이 감금되어 있는 건 아닌지 불안하다”며 “경제적 문제는 고려할 상황이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5년 넘게 딸을 찾고 있는 혜희 아버지 송길용씨는 “해외로 팔려나갔을까, 아니면 외딴 섬에 끌려가 있을까 하루에도 몇 번씩 온갖 상상을 한다”고 털어놓았다.

“요즘처럼 날이 추워질 때면 더 사무치게 그립습니다. 못난 아비가 되어서 어딘가에서 고생하고 있을 우리 딸을 찾아내주지 못한다는 점이 가장 미안합니다. 아내도 먼저 떠난 지금, 남은 바람이라고는 딸을 다시 만나는 것밖에 없어요. 꼭 찾아내야지요.”





주간동아 465호 (p50~53)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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