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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만리장성에 막힌 사드 외교

G20에서 중국 태도 변화 기대, 한국 측 희망일 뿐…대북제재에 대한 한중 시각차도 드러내

  • 신석호 동아일보 기자·북한학 박사 kyle@donga.com

만리장성에 막힌 사드 외교

만리장성에 막힌 사드 외교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차 중국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왼쪽)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9월 5일(현지시각) 항저우 서호 국빈관에서 한중 정상회담 을 갖기 전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9월 5일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항저우 정상회담이 끝나자 한국 언론들은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문제에 관한 두 정상의 논의가 불만족스럽지만 일면 다행스럽다는 평가를 내렸다. ‘한중 사드 평행선…정면충돌은 피했다’(동아일보),  ‘사드, 정면충돌은 피해갔다’(조선일보), ‘사드 갈등 관리 나선 한중’(한국일보) 등이 주요 조간신문의 1면 톱 제목이었다.



46분간 비공개 회담

실제로 7월 8일 한미 양국이 사드 배치를 결정한 뒤 처음으로 직접 만난 박 대통령과 시 주석은 민감한 사드 이슈를 공개 발언에서 언급하지 않는 타협을 이뤘다. 시 주석은 정상회담 모두발언에서 “1930년대 김구 선생이 저장(浙江)성에서 투쟁했고 중국 국민이 김구 선생을 위해 보호처를 제공했다”며 “김구 선생의 아들인 김신 장군(전 공군참모총장)이 1996년 항저우 인근 하이옌(海鹽)을 방문했을 때 ‘음수사원(飮水思源) 한중우의(韓中友誼)’라는 글자를 남겼다”고 밝혔다. 음수사원은 ‘근원을 생각하고 그에 감사하라’는 뜻으로, 시 주석은 한국이 한미일 공조에 임할 때 항일운동을 함께 한 중국과의 역사를 생각해달라는 취지로 넌지시 말했다.

하지만 양측은 46분 동안 진행된 비공개 회담에서는 한반도 사드 배치 문제를 놓고 기존 시각차를 좁히지 못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사드는 오직 북한 핵·미사일의 대응 수단으로 배치, 사용될 것이기 때문에 제3국 안보 이익을 침해할 이유도, 필요도 없다”며 “북한 핵·미사일 문제가 해결되면 더는 필요 없을 것”이라 말했다고 김규현 대통령비서실 외교안보수석이 전했다. 그러나 시 주석은 “미국이 한국에 사드를 배치하는 것에 반대한다”며 “이 문제를 잘 처리하지 못하면 지역의 전략적 안정에 불리하고, 각 측의 갈등을 격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중국 관영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양국 고위 당국자들은 정상의 사드 발언 수위를 조절하고자 막판까지 토론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손님으로 간 박 대통령이 주인인 시 주석과 가진 짧은 만남 동안 사드 문제에 대한 전향적인 공개 발언을 이끌어내기는 역부족이었을 것이다. 시 주석 역시 전 세계 주요 정상을 불러 모은 자리에서 미·중과 한중의 현안인 사드 문제로 평지풍파를 일으키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판단했을 터다.



하지만 수십 명의 정상을 만나야 하는 시 주석이 시간을 쪼개 46분 동안 가진 짧은 비공개 회담에서 박 대통령에게 사드 반대 의사를 명확히 한 것은 향후 한미 움직임에 따라 적절하게 대응할 것임을 밝힌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결국 박 대통령의 대중(對中) 사드 외교는 만리장성을 넘지 못했다는 평가가 더 옳다고 봐야 한다.

시 주석의 이 같은 태도는 9월 3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박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도 차이가 있다. 푸틴 대통령은 박 대통령과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우리 두 나라는 평양의 자칭 핵 보유 지위를 용인할 수 없다”며 “한반도 핵 문제가 동북아의 전반적인 군사·정치 (긴장) 완화 틀 내에서 해결돼야 한다고 본다”고 말하고, 사드 문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에겐 ‘총화전진’이라고 쓰인 고(故) 박정희 대통령의 1979년 마지막 신년 휘호보다 더 값진 선물이었던 것 같다.



중국 “북한체제는 안정돼 있다”

시 주석의 발언으로 일각에서 제기된 중국의 ‘항저우 G20 계기 사드 논쟁 방향 조절론’도 일단 ‘희망적 사고’가 된 셈이다. 이에 앞서 시 주석은 9월 3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에서도 “미국이 한국에 사드를 배치하는 데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어 “중국의 전략적인 안전 이익을 실질적으로 존중해줄 것을 미국 측에 요구한다”며 “각 당사국이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하는 행동을 피해 형세가 전환되도록 공동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말해 사실상 이 문제에 전향적인 태도 변화가 없을 것임을 미리 알렸다.

변할 것 같지 않은 중국 측의 사드 반대는 G20 정상회의에 앞서 9월 2일 동아일보 부설 화정평화재단·21세기평화연구소가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개최한 제14회 한중일 연례심포지엄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한국 동아일보와 일본 아사히신문, 중국 현대국제관계연구원(연구원)이 1년에 한 번씩 3국을 번갈아가며 동북아 3국의 민간 소통 채널 노릇을 해온 이번 행사는 준비 단계서부터 사드 문제가 첨예한 쟁점으로 떠올랐다. 특히 중국 공산당 산하 기관인 연구원 측 인사들이 어떤 인식과 발언을 내놓을지에 관심이 모아졌다.

한반도 전문가인 왕푸둥 부연구원은 미리 제출한 1세션 발제문을 통해 북한과 사드 문제에 대한 중국 측의 기본 인식을 드러냈다. 그중 한미일 3국과 크게 차이가 나는 대목은 다음 세 가지였다. 첫째 북한은 안정돼 있고, 둘째 대북제재는 효과가 있으며, 셋째 사드 배치가 북한에게는 작은 위협이지만 중국과 러시아에게는 중대한 위협이라는 주장이다.

왕 부연구원은 북한이 안정됐다고 보는 이유로 “북한은 인사 안정을 유지하고 엘리트는 단결돼 있으며 김정은 유일지도체제는 한층 강화되고 있다. 외교적 고립 타파를 위한 노력을 강화하는 한편, 경제도 안정적이어서 국제사회의 제재 압력에 대응하고 있다”고 조목조목 적시했다. 김정은이 발언할 때 안경을 닦았다는 이유로 경제부총리가 총살당하고 주요국 외교관이 줄줄이 탈북하는 현실, 미국이 콧방귀도 뀌지 않는 ‘평화체제 협상’을 들고 핵·미사일 프로그램 개발에 열을 올리며 국제사회의 ‘왕따’가 되고 있는 최근 상황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진단이었다.

왕 부연구원은 또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 대해 “제재는 북한이 핵을 보유하기 위한 거액의 임대비와 같다. 계속해서 개발한다면 제재(임대비)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최후에는 임대비와 안보 수익이 하나의 균형점에 이르러 (핵개발을) 중단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를 것”이라며 낙관적으로 전망했다. 키를 쥐고 있는 중국이 북한 붕괴를 우려한 나머지 북한이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포기할 정도의 제재를 하지 않고 있다는 외부 시선과 대치되는 주장이었다. 북한이 핵·미사일을 실전배치한 뒤에야 그 균형점이 찾아온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마지막으로 한반도 사드 배치 문제와 관련해서는 “북핵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각국의 ‘통일전선’을 훼손했다”며 “중국, 러시아 양국의 전문가와 대중은 정부 측에 북핵 문제를 유연하게 이용하라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내부 상황을 전했다. 하지만 ‘사드는 북한 미사일을 막을 수 없다’는 중국 측 주장과 ‘사드는 북한보다 더 많은 핵·미사일을 가진 중국을 더 심각하게 위협한다’는 중국 측의 또 다른 주장은 논리에 맞지 않는다.

이어진 2세션에서 발표한 왕산 연구원은 사드에 대해 유사한 주장을 반복하면서 한중일 3국의 역내 안보 대화가 더 활발해져야 한다고 했다. 그는 “동아시아지역 안보환경 개선에 적합한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며 “각종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연락체제를 구축해 동아시아지역의 다자간 안보협력이 제도화될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당위적인 주장이지만, 미국을 제외한 한중일 안보 대화를 통해 사드 배치 문제 등과 관련해 중국 측의 영향력을 더 확보할 수 있다고 판단한 제안인 듯했다.



한국 “문제의 근원은 북핵”

만리장성에 막힌 사드 외교

9월 2일 동아일보 부설 화정평화재단 · 21세기평화연구소와 중국 현대국제관계연구원, 일본 아사히신문이 공동 주최한 제14회 한중일 연례심포지엄이 ‘도전 받는 동북아 안보와 한중일 협력’이란 주제로 열렸다. [동아일보]

만리장성같이 꿈쩍도 하지 않는 중국 측의 인식을 확인하는 동안 한국프레스센터 19층 회의장 북쪽으로 청와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화창한 날씨여서 뒤쪽 북악산이 더 높아 보였다. 애초 청와대 터를 잡은 사람들은 북악산이 북한의 미사일 공격으로부터 청와대를 막아줄 천혜의 지형지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핵·미사일이라면 산이 무슨 소용일까. 3세션에서 기자는 이 기회를 통해 한국 국민이 북한 핵·미사일에 느끼는 절박한 심정을 전하고, 미국과 중국이라는 강대국에 기대어 북한 비핵화를 이루려 했던 한국의 외교 전략이 총체적으로 실패한 상황에 대한 당혹감을 피력했다.

이어 중국 측에 두 가지 질문을 던졌다. 왕푸둥 부연구원에게는 최근 자칭궈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 원장이 공개된 세미나에서 “한반도 사드 배치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 때문”이라며 한국을 옹호한 사실을 상기시키며 “중국은 한국의 사드 배치 결정을 비난하는 것만큼이나 문제의 근원인 북한에 상응하는 불이익을 주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이어 “왕산 연구원이 주장하는 한중일 3국의 역내 안보 대화에서 다룰 이슈 가운데 북한 급변사태 대응도 포함돼 있느냐”고 질문했다. 즉 “북한에 급변사태가 왔을 때 지금 제기한 안보 대화에서 협의해 행동할 것이냐, 아니면 북중우호조약에 따라 단독으로 행동할 것이냐”고 단도직입적으로 질문했다.

이 질문에 대한 중국 측 반응은 완강했다. 지금까지 논의를 듣고만 있던 후지핑 부원장이 직접 나섰다. 그는 아주 솔직하게 “제재가 강할수록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 거 같은데, 그래서 북한 정권이 붕괴할 수 있다고 보는지, 붕괴하더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지 한국의 의도를 알고 싶다”고 되물었다. 이어 “북한은 붕괴하지 않을 것이며 만약 그렇다면 중국은 문서로 된 북중우호조약에 따라 행동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사견임을 전제로 말했다.

한국과 국제사회는 핵심 후원국인 중국이 나서서 북한이 핵·미사일 개발 프로그램을 포기하게끔 회초리를 들어주길 바라지만, 중국은 그러는 과정에 북한이 붕괴할까 우려하고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중국이 아무리 조심해도 북한에 급변사태가 일어난다면 중국은 북중우호조약에 따라 일방적으로 개입하겠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후지핑 부원장이 마음에 걸리는 발언을 했다. 그는 “그동안 한국에서 온 사람들이 ‘사드는 미국이 배치하려 하는 것인데 왜 미국이 아니라 한국에게 뭐라 하느냐’고 해왔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온 사람들’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을 막기 위해 한반도에 사드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설득하기보다 당장 임박한 것으로 우려되는 중국의 대한반도 제재를 피하려고 책임을 미국 측에 돌리려 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그 뒤 질문 하나가 떠올랐다. 국운이 걸린 이 문제와 관련해 우리는 중국 측에 한목소리를 내고 있는가, 그리고 진정성 있게 그들을 설득하고 있는가. 






주간동아 2016.09.14 1055호 (p48~50)

신석호 동아일보 기자·북한학 박사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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