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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사탑 사리 주인공은 문무왕?

국립문화재연구소 “탑·사리함 장식 등 근거로 추정”… 불교계는 “어불성설” 반발

감은사탑 사리 주인공은 문무왕?

감은사탑 사리 주인공은 문무왕?
국보 112호 감은사지 쌍탑(경북 경주시 양북면 소재) 사리의 주인공은 과연 누구인가.

감은사지 동`-`서 3층석탑은 왜 쌍탑일까.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661~680년)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탑 속에 들어 있는 사리는 누구의 것일까 등을 놓고 그동안 다양한 해석이 무성했다.

최근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조유전)가 공개한 ‘감은사지 동 삼층석탑 사리장엄’ 보고서는 이런 측면에서 여러 모로 흥미롭다. 240여 쪽에 이르는 이 보고서는 1996년 4월 감은사지 동탑에서 발견한 사리함의 발견 경위, 미술사적-보존과학적 조사연구와 의미 등을 세밀하게 서술했다. 풍부한 사진자료와 친절한 설명을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보고서가 주목받는 것은 ‘감은사지 동탑 사리함(높이 23.4cm, 너비 18.8cm)의 주인공이 문무왕일 것’이라고 추정한 점이다. 지금까지 학계 일각에서 막연하게 떠돌던 얘기를 국가 기관에서 공식 거론했기에 학계의 비상한 주목을 받았다. 동탑에서 나온 사리는 모두 54과지만 이 가운데는 납유리와 수정 등도 있어 실제 사리는 10과 정도. 이 사리들은 지난 1996년 10월4일 동탑 복원과 함께 다시 동탑 속에 봉안된 상태다.

감은사지 동탑 사리함의 주인공은 정말 문무왕일까. 국립문화재연구소(이하 문화재연구소)는 어떤 근거에서 이런 주장을 편 것일까.



감은사탑 사리 주인공은 문무왕?
문화재연구소 미술공예실 김봉건 실장은 “감은사지 동서 양탑 사리장엄구의 구조와 문양 등을 비교한 결과 여러 모로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것은 양탑의 신앙대상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난영 연구원은 “정형화하고 완숙한 분위기인 서탑의 사리함에는 부처님 사리를 모신 듯하며, 자유스러운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동탑 사리함에는 문무왕의 사리를 안치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설명했다.

문화재연구소가 밝힌 동탑과 서탑 사리함의 차이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서탑에는 사리병 둘레에 부처님의 열반을 향연(饗宴)하는 듯한 악기를 연주하는 네 명의 천인(天人)이 있는 반면, 동탑에는 삼국통일의 과업을 완수한 문무왕을 호위하듯 무기를 들고 갑옷을 입은 사천왕상이 있다. 문화재연구소측은 “불교 ‘유행경’(遊行經)에는 부처가 열반한 이후 쿠시나가라 성의 말라족과 동자들이 향화(香花)와 주악공양(奏樂供養)을 했다는 구절이 있다. 이로 미뤄볼 때 서탑 사리함은 부처에 대한 공양을 표현한 것이다. 또 당시 호국신앙의 상징으로 숭배하던 사천왕상은 통치기간 중 사천왕사를 건립하는 등 남다른 호국사상을 가졌던 문무왕의 사리를 호위하는 것을 형상화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둘째로 서탑은 사리함 두 번째 덮개의 네 귀를 봉황으로 장식한 반면 동탑은 죽어서 용이 되겠다고 한 문무왕을 상징하듯 용을 장식하였다. 또 동탑 사리기 기단부에 있는 네 마리의 사자는 유마거사가 신통력으로 3만2000의 사자좌를 만들었다는 유마경의 기록과 관계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문화재연구소측은 분석했다.

김실장은 “감은사가 쌍탑 형식을 취한 것은 당시 유행하던 대승불교 경전인 유마경에서 영향을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유마경 9품에 문수보살과 유마거사가 좌우대칭으로 앉아 군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대담하는 것에서 영향을 받아 동서에 일직선상의 탑을 세웠다는 설명이다.

이런 분석은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은 현세의 유마거사로 칭송받았을 것”이라는 추측으로 이어진다. 문수보살과 유마거사가 문답하는 ‘유마경변상도’가 그려진 중국 돈황 석굴 103굴과 335굴에 서쪽에는 문수보살, 동쪽에는 유마거사가 그려져 있는 것도 감은사 탑의 배치와 비슷하다는 설명도 곁들여진다.

사리함의 천장구조가 돈황 285굴, 329굴과 같은 복두형(覆斗形:굴을 파내 그림 등을 장식하는) 천장이고, 사리기 내함의 기단 및 지붕 구조가 유마경변상도의 유마거사와 문수보살이 앉아 있던 좌대와 비슷한 양식이라는 분석도 서탑-부처사리, 동탑-문무왕 사리라는 주장의 한 근거로 지적된다.

문제는 사리다. 문화재연구소의 보고서는 감은사지 쌍탑과 사리함 양식의 근원을 불교경전과 중국 돈황 석굴 등과 비교하면서 나름대로 설득력 있게 풀어낸다. 머리 속에 그림이 그려질 정도로 정교하면서도 치밀하게 연구 분석한 흔적이 엿보인다. 그러나 ‘동탑 사리함의 주인공이 문무왕’이라고 추정하기 위해 사리를 어디에 봉안했는지는 둘째치고 ‘문무왕을 화장했을 때 사리가 나왔다’는 기록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역사 기록 어디에도 이런 기록은 없다. ‘삼국유사’에도 화장과 동시에 대왕은 용으로 변했고, 유골은 오늘날 문무대왕릉이라고 하는 곳에 뿌려졌다는 기록만 남아 있다. 문화재연구소측은 “화장했을 때 사리가 있었을 것이고, 여러 정황을 종합해 이 사리를 감은사 동탑에 봉안했다고 추론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이러한 명확한 맹점이 있다 보니 반론도 거세다. 특히 불교계는 “이럴 수 있느냐”는 분위기다. 조계종 총무원 문화부 관계자는 “정부 기관에서 정확한 사실도 아닌 추정을 통해 이런 주장을 펼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일”이라며 “내년 초쯤 발간할 자료집을 통해 문화재연구소의 주장을 반박할 것”이라고 밝혔다. 불교계 언론들도 “어불성설” “근거도 없는 주장을 국가기관이 하고 있다”는 등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지난 1996년 7월11일 덕수궁 중화전 앞뜰에서 송월주 당시 조계종 총무원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감은사 동탑에서 나온 사리를 부처님 사리로 규정, ‘부처님 진신사리 이운식’까지 가졌던 불교계가 “부처 사리가 아닌 문무왕의 사리일 가능성이 높다”는 문화재연구소의 주장에 반발하는 것은 당연한 일. 96년 당시 불교계는 며칠간 ‘부처님 진신사리 친견법회’까지 열었다.

학자들도 “문화재연구소가 너무 나간 것 아니냐”는 반응이다. 불교문화재 전문가로 문화재 위원을 지낸 한 교수는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된다. 신앙의 상징인 탑에 왕의 사리를 넣는다는 것도 그렇고 문무왕의 사리가 나왔다는 어떤 역사 기록도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장과 문화재관리국장을 지낸 이호관씨는 “동탑 사리함이 문무왕과 관계가 깊은 것은 사실로 보인다. 그러나 문무왕 사리라면 뭔가 역사 기록이 있었을 텐데 그렇지 않다”며 “문화재연구소가 비약된 결론을 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저런 구설수가 있음에도 문화재연구소의 이번 조사보고서는 감은사 탑 사리함에 대한 풍부하고 다양한 관점이 녹아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이다. 감은사와 문무왕의 관계, 당시 국제관계 속에서의 신라의 위치 등을 보는 지평을 넓혔다는 것. 이런 측면에서 보면 ‘사리가 문무왕의 것이냐 아니냐’는 문제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주간동아 2001.05.10 283호 (p66~67)

  • < 소종섭 기자 ssjm@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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