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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뻔뻔스런 일본, 무기력한 한국

한국 역사학계는 여태 무엇했나

거듭된 왜곡 교과서 대응 미흡 … 일본 성토에 앞서 뼈아픈 ‘자기 반성’ 먼저 하자

한국 역사학계는 여태 무엇했나

한국 역사학계는 여태 무엇했나
우리는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에 대해 비분강개하기에 앞서, 일본의 일부 국수주의자들이 역사를 왜곡한 배경부터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 교과서들은 일본 역사학계의 우수한 고대사와 근대사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여기에 신자유주의 사관을 덧씌워 ‘자학사관’에서 탈출하자는 표방을 근대적 계몽성으로 내세운다. 그래서 “일본인에게는(선구자적) 자긍심을, 다른 사람에게는 이른바 역사의 신(운명적 손)”을 적용한다. ‘진출’이니 ‘합법적’이니 ‘사관의 다양성’이니 하는 핑계를 대면서 침략전쟁과 양민 학살-학대와 같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까지도 왜곡-미화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일본 교과서 왜곡은 고대사와 근대사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지금까지의 분석결과를 종합해 보면, 특히 중국 등 다른 나라에 비해 전면적인 식민통치를 당한 우리 나라 관련 서술이 더 심하게 왜곡-개악되어 있다. 전근대사는 사실 자체를 주로 왜곡했고, 근대사는 잘못했거나 자기에게 불리한 사실들을 은폐-축소시키는 방식을 주로 사용했다.

세계적 수준에 오른 일본의 역사연구

한국 역사학계는 여태 무엇했나
근대 역사학은 엄밀한 실증과 인과적 법칙에 입각하는 ‘과학적 윤리성’만을 기본으로 삼지 않는다. 민주적이고 평등한 시민사회의 건설과 통합에 필요한 정치적 기능성에 입각한 ‘국민적(민족적) 계몽성’ 역시 기본바탕이 된다. 즉 오늘날 역사학은 ‘과학적 윤리성’과 ‘국민적 계몽성’이라는 두 토대를 통해 제 기능을 발휘한다.



사실 일본의 역사 왜곡이 아무리 심각하다고 해도 일본 역사학계가 이미 세계적 수준의 과학성과 계몽성을 인정받았다는 사실까지 부인할 수는 없다. 일본은 학계, 정부, 지방자치단체들이 오래 전부터 연대해 기초자료 축적과 보존사업을 펼쳐왔고, 그 결과 옛 문헌과 고문서들이 언제든지 사용 가능한 사료로 잘 정리되어 있다. 이것은 일본을 방문한 우리 역사학자들이 늘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또 전근대 일본역사의 경우, ‘조오몽 문화’로 상징되는 신석기 생활문명은 이미 세계적으로도 그 선구성을 인정받는다. 근대사로 오면 일본식 근대 민족국가 건설체험을 ‘동아시아 근대화론’이라는 하나의 모델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모두 일본 역사학계가 과학성과 계몽성을 열심히 축적한 덕분이다. 뿐만 아니라 일본 국민들이 자기 역사에 대해 자긍심을 갖도록 언론계와 교육계가 벌인 ‘국민적 계몽’ 노력도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다.

반면 오랜 역사를 가진 나라, ‘문헌의 나라’라고도 하는 우리의 사정은 어떠한가. 먼저 역사학계의 기초자료 축적과 보존사업만 하더라도 일본에 비해 몇 십 년은 뒤처져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역사적 자료의 보존과 정리사업을 위해 학계와 공동보조를 취하였는가. 많이 나아졌다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긴밀한 공조가 필요하다는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았다.

전근대와 선사시대 문화 중 과연 우리 나라 특성을 잘 보여주는 세계적 문화가 있느냐는 물음에 자신 있게 내세울 게 없다. 청동기 시대 ‘고인돌 문화’를 들 수 있겠지만, 아직 그와 관련이 있는 생활문화 전체를 복원하지 못하고 있다. 과학성의 수준이 뒤떨어지기 때문이다. 또 일본의 ‘동아시아 근대화론’담론에 필적할 우리 근대사회 건설체험의 특징은 무엇일까. 아마도 ‘경영형 부농’ 또는 ‘서민지주’라는 조선 후기 아래로부터의 개혁운동과 이후 민족해방투쟁 과정으로 이어지는 모델을 띄워 올려야 할 것이다. 하지만 ‘동아시아 근대화 모델’은커녕 ‘조선 근대화’의 모델로조차 정립하지 못한 상태다. 몇몇 선구적 학자들의 피나는 노력이 있음에도 세계인들에게 인정받기 위한 과학성과 계몽성의 축적이 뒷받침되지 않은 탓이다.

애초 역사관련 학자들의 머리 수부터 일본학계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게다가 민족의 남북분단에 이은 이데올로기 대치상황으로 민족해방투쟁운동 관련 교육은 근대적 계몽성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또 언론계나 교육계가 일반 국민들에게 민족적 자긍심을 심어준다고 벌인 계몽도 꼽을 만한 게 없다. 오히려 식민사학의 청산을 위해 노력하는 학계를 식민사학의 아류라고 비난하는 캠페인 정도다.

한국 역사학계는 여태 무엇했나
그렇다면 우리는 일본의 교과서 왜곡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사실 식민지 근대화론, 신동아시아주의(특히 일제시대 최남선의 불함문화론에서 연유한 경우)와 같은 일본식 역사체험에 입각한 논리들을 시대적 추이라 하여 재빨리 채용함으로써 쉽게 인정받고 출세하려는 오늘날 우리 나라의 ‘시각형 지식인’들 수준에서는 결코 일본 교과서 왜곡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

동시에 일본과는 전혀 다른 역사체험을 지닌 중국과 조선사회에 일본식 동아시아 근대화 담론을 적용하려는 일본의 일부 몰지각한 지식인들의 오만 또한 정면으로 대응해야 한다.

이제 남의 것이 아니라, 우리가 전근대사회 역사체험의 특징으로 내세울 수 있는 것을 찾아내야 한다. 예컨대 무사적 성격이 아닌 문민적 성격, 백성을 하늘로 보는 데서 나오는 개인을 넘어서는 수준의 공공성 요구, 통치계층과 피통치계층이 ‘도덕성’과 ‘학문성’을 공통기반으로 섞여 살아가는 사회공동체, 자기 자신에 대한 공경이 가족-이웃-자연 사랑으로까지 이어지는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전통들을 지목할 수 있다. 근대사회 역사체험 중에는 군국주의 일본의 침략에 맞서 민족해방투쟁을 통해 근대 국민국가를 건설하려 한 인도주의적 전통이 있다. 이는 이웃 나라 중국의 역사체험과 비슷하다. 특히 근대에 들어와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으로 심각한 인적-물질적-정신적 피해를 본 점에서 중국과 한국은 입장을 같이한다.

사정이 이러한데 우리 정부가 중국 최고지도층이 제의한 공동대응 요청에 처음부터 미온적이었다는 언론보도는 참으로 충격적이다. 그야말로 우리 역사의식의 심각한 단절을 입증한 사례가 아닐까 한다. 세계화의 시대라지만 ‘세계화’가 자기 역사의식의 단절까지 긍정해 주는 것은 아니다. 현 정부는 일본 정부의 교과서 왜곡 조장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심각한 오류를 범했다. 세계인의 ‘인도주의’와 우리 고유의 역사체험에서 볼 때, 당연히 중국과 공동 대응했어야 한다. 평화주의 운운하며 정치적-실리적 계산으로 일단 거절부터 하는 실수를 저질렀다는 말이다.

이제 일부 일본인들의 왜곡된 생각을 성토하는 데 그치지 말고 더 많은 수의 양심적인 일본인들과 연대하고, 더 나아가 그들보다 더 세계적이고 양심적인 자기 반성을 거쳐 우리 역사학의 수준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려는 노력이 필요한 때다. 동시에 아직도 진행중인 진정한 민족국가 건설을 위한 계몽을 계속하는 길만이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을 극복하는 지름길이다.



주간동아 2001.04.26 281호 (p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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