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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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판 스타워즈’ 총감독은 럼스펠드

NMD 시스템 통해 우주에 무기기지 보유 추진… 강한 군사력 바탕 ‘람보 시대’ 예고

  • 입력2005-03-18 13: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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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시판 스타워즈’ 총감독은 럼스펠드
    클린턴 1기 행정부 때 CIA 국장을 지낸 존 도이치는 부시 대통령 당선자가 도널드 럼스펠드를 국방장관으로 임명했을 때 이런 글을 썼다. ‘미 국방부 장관은 세계 최고의 기술을 갖춘 세계 최대 규모의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인 셈인데, 럼스펠드는 이 자리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다.’

    그러나 존 도이치는 펜타곤의 신임 수장을 이렇게 치켜세운 다음 두 가지를 꼬집었다. 첫째는 공식적인 군비 통제 협정 안을 만드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러시아의 핵 무기 감축과 통제를 도와주는 것이라고 했다. 비공식적인 일이고 생색나지 않는 일이긴 하지만 핵 위협을 감소하는 실질적인 노력을 해달라는 주문이었다.

    둘째, 국가미사일방어(NMD) 시스템 구축을 서둘러서는 안 된다고 했다. 당장 미사일 위협이 있는 것도 아니고 러시아와 중국의 반대에 부닥칠 것이 뻔하니 초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NMD 구축’ 부시와 손발 착착

    이에 대답이라도 하듯, 럼스펠드는 입만 열면 NMD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1월11일 의회 인사 청문회 증언 자리에서도 NMD 조기 구축을 역설했고, 1월26일 기자회견에서도 러시아 등의 반대가 있긴 하지만 NMD를 구축하려는 부시 대통령이나 부시 행정부의 입장은 전혀 변함이 없다고 단단히 쐐기를 박아버렸다.



    부시 대통령도 NMD에 대해서는 단호하다. “내 선거 공약을 기억해 봐라. 그 중의 하나가 NMD 추진이다. 아주 중요한 일이다.”

    부시와 럼스펠드는 각자 한쪽 팔목에 NMD라는 이름의 수갑을 같이 차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럼스펠드와 부시가 만나는 매개가 NMD였다. 럼스펠드가 위원장 자리를 맡아 이끈 미 탄도유도탄위원회가 1998년에 보고서를 내놓았을 때 그 보고서를 금지옥엽으로 아낀 사람 중의 한 명이 부시다. 북한이나 이라크의 장거리 미사일에 대처하지 않았다가는 미 안보가 위태롭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는 보고서였다.

    부시 선거 캠프에서 국가 안보 문제에 대해 조용히 부시 후보를 보좌했을 때도 럼스펠드는 NMD를 잊지 않았고, 국방장관 인선 과정에서도 NMD는 역시 두 사람을 잇는 동아줄이었다.

    NMD는 미사일 방어에서 끝나지 않는다. 우주 방어와 직결되어 있다. 럼스펠드를 주축으로 한 NMD 구축 계획이 우주 군비 경쟁의 도화선이 된다는 지적은 괜한 말이 아니다. 럼스펠드는 “인공위성과 우주 정책에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미국은 우주의 진주만이 되기에 딱 좋다”고 했다. 부시 행정부가 추진하겠다는 NMD는 우주에 발사 기지를 둔 무기를 갖겠다는 것이다. 미 50개 주로 날아드는 장거리 미사일을 알래스카의 지상 기지에서 쏘아올린 요격 미사일로 지상에서 막아보겠다는 클린턴 행정부의 제한적인 NMD 시스템과는 방어 개념 자체가 다르다.

    미 국방부의 2001년 예산 항목에는 소위 ASAT라 불리는, 우주에 기지를 둔 미사일 방어 시스템을 위한 예산이 책정되어 있다. 이미 20년 전부터 추진되어 온 것이고 위성 요격 기술 개발을 위한 2000만 달러도 이 항목에 포함되어 있다.

    뉴 멕시코주의 커틀랜드 공군 기지 내에 펜타곤이 직접 레이저 작전을 지휘하는 본부를 구축하기 위한 예산 3000만 달러, 우주 기지 레이저 계획을 위한 7320만 달러, 고에너지 레이저 실험을 위한 3750만 달러, 적국의 위성 작전을 방해하기 위한 ‘큰 까마귀’ 프로그램 구축비 300만 달러 등이 모두 이 예산에 들어 있다.

    미사일 방어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보다는 위성 요격 능력을 갖추는 것이 더 용이하고, 우주 군비경쟁에서는 방어용에 비해 공격용이 훨씬 값이 적게 든다. 예를 들어 중국이 개당 10억 달러에 달하는 미국의 미사일 방어 위성을 1개 파괴하려면, 지상 기지 설치에 3000만 달러와 1개당 400만 달러짜리의 요격 미사일만 있으면 된다는 산술이 나온다.

    미국은 통신, 첩보, 일기 관측 등 위성 의존도가 절대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위성을 등한시했다가는 치명타가 될 수 있다. 1980년에 과학자들이 우주 지뢰 위성이라는 아이디어를 개발해낸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물론 미국은 아직 그런 무기를 보유하지 못했다. 그러나 미국은 전투기나 인공위성에 배치할 우주 무기 연구를 시작한 지 20년이 넘었고, 부시 행정부가 그 첫 단추를 끼우겠다는 것이며, 럼스펠드가 ‘부시판 스타워즈’의 총감독을 맡겠다는 것이다.

    럼스펠드를 국방장관에 천거한 이는 체니 부통령이다. 체니가 먼저 그를 만나 국방장관 자리를 제안했고, 이튿날 그는 텍사스 오스틴으로 날아가 부시를 만났다. 텍사스 주지사 관저에서의 개인 면담 자리에서도 그는 NMD를 빼들었고, 부시는 또 한 번 감명받았다. 나흘 후인 크리스마스 다음 날, 부시는 체니에게 전화를 걸어 “럼스펠드로 갑시다”고 했다.

    사실 럼스펠드는 팀워크를 강조하는 부시의 인사 원칙에서는 약간 벗어나 있는 인물이다. 그러나 부시는 럼스펠드를 택했다. 그가 국방장관으로 지명되었을 때 ‘뉴욕 타임스’는 ‘근육질의 펜타곤’이 탄생했다고 평하면서,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 힘의 ‘람보’ 시대를 예고했다.

    “파월은 강인한 인상을 주고 체니는 외향적인 사람인데 반해, 럼스펠드는 강인한 인상을 주지도 않고 외향적이지도 않다.”

    안보팀을 주종 관계가 아닌 대등한 균형으로 꾸린 부시가 그의 성품을 평한 말이다. 부시는 닉슨 때의 키신저 1인 독주나, 레이건 때의 슐츠 국무장관과 와인버거 국방장관 간의 알력을 피하겠다는 것이다. 부시와 체니가 럼스펠드의 국방장관 내정을 결정한 뒤 파월에게 그 사실을 통보한 것도 이런 의도가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럼스펠드는 거의 40년 가깝게 ‘워싱턴 게임’에 단련이 된 사람이다. 한 노래책에서 같은 노래를 절대 두 번 부르는 법이 없는 사람, 손에 쥔 카드를 가슴에 바짝 붙이고 있어서 도대체 뭘 들고 있는지 알 수가 없는 사람이라는 평을 듣는다. 공화`-`민주 양당에 두루 친숙한 수재형이다. 키신저 전 국무장관은 럼스펠드가 대통령에 출마하지 않은 것이 유감이라고 할 정도다.

    시카고 출신으로 30세에 일리노이에서 첫 연방 하원의원이 된 뒤 4선의 경력을 쌓았고, 닉슨 대통령 경제 자문, NATO 대사(1973~74)를 거쳐 포드 대통령 때는 백악관 비서실장을 지낸 뒤 1975년 43세의 나이에 최연소 국방장관 자리에 앉았다.

    포드 행정부 당시 CIA국장이었던 조지 부시 전 대통령과 한바탕 겨룬 적도 있다. CIA가 소련의 군사비 지출액을 너무 낮게 평가하고 있다고 부시 국장 면전에 들이댔고, 나중에 럼스펠드의 말이 사실로 밝혀졌다. 부시 행정부에서 두번째 국방장관을 맡은 것도 결코 평범하지 않은 그의 이력에 또 한 줄을 보태는 것이다.

    그가 만들어낸 이른바 ‘럼스펠드 원칙’은 워싱턴 게임의 생존 규칙 같은 것이다. ‘모르겠다고 말하는 법을 배워라. 적절할 때 많이 써먹을수록 좋다’ ‘비판받지 않는다는 것은 일을 많이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유머를 익혀라. 원숭이는 나무에 높이 오를수록 똥구멍이 많이 보이는 법이라고 말한 스틸웰 장군처럼…’ ‘자신이 없으면, 대통령에게 넘겨라.’

    럼스펠드 원칙은 백악관용과 국방부용이 따로 있다.

    ‘대통령에게 대들어도 된다는 양해를 대통령에게서 받아내지 않은 한, 그리고 그럴 용기가 없는 한, 네 자신이 그럴 위치에 있다고는 생각하지 말아라’ ‘너와 나로 세상을 나누지 마라. 언론이나 의회, 경쟁자나 반대자에게 깊이 빠져들거나 적대시하지 마라. 그들을 있는 그대로(fact) 수용하라.’ (백악관용)

    ‘국방장관은 특제 장군(suer general)이나 특제 제독이 아니다. 군에 대한 민간 통제의 임무를 수행하는 자리다’ ‘무슨 일에든 뛰어들어 일할 수 있는 권한을 확보하라’ ‘가장 훌륭한 장군은 어떤 사람이냐는 물음에 나폴레옹은 이렇게 답했다. 승리한 장군이다라고.’(국방부용)

    이 원칙들은 럼스펠드 개인의 좌우명이다. 세계 유일의 군사 초강대국 미국의 군 지휘권을 잡은 럼스펠드는 국방장관 자격 심사를 받는 의회 인사 청문회 자리에서 또 하나의 원칙을 이렇게 밝혔다.

    “약하면 화를 부른다.”(Weakness is provoca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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