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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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치안 총수’로 또다시 등극

  • 입력2005-03-07 14: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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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치안 총수’로 또다시 등극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당선자는 차기 행정부 국가 안보팀의 3대 기둥 중 하나인 국방장관에 도널드 럼스펠드 전 국방장관(68)을 지명했다.

    부시 당선자의 국방장관 선택은 그동안 워싱턴 정가의 최대 관심사였다. 대통령 당선이 확정된 뒤 콜린 파월 전 합참의장을 국무장관에, 콘돌리자 라이스 스탠퍼드대 부총장을 국가안보보좌관에 속속 임명한 부시 당선자는 무려 2주일 동안 국방장관 자리를 놓고 결정을 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부시 당선자가 오랜 고민 끝에 하필 럼스펠드를 국방장관으로 선택한 이유는 뭘까. 부시 당선자는 차기 국방장관 기용에 두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힘에 의한 평화 주창 … 강력한 군사외교 펼칠 듯

    우선, 체니-파월 라인에 휘둘리지 않을 만한 무게있는 외교안보 전문가가 필요했다는 것. 국방장관이 웬만한 경륜을 갖춘 인물이 아니고서는 국방장관 출신의 딕 체니 부통령 당선자와 합참의장을 지낸 콜린 파월 국무장관 지명자에 가려 허수아비 노릇을 하기 십상이라는 것이 부시의 고민이었다.



    이런 점에서 럼스펠드의 화려한 경력은 부시를 만족시키기에 충분했다. 1932년 시카고에서 태어난 럼스펠드는 프린스턴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해군에서 3년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주재대사로 활동했다. 1974년 제럴드 포드 대통령에 의해 백악관 비서실장에 임명된 럼스펠드는 이듬해 베트남전 종전과 함께 45세의 나이에 미국 역사상 최연소 국방장관에 임명되는 영광을 누렸다.

    체니 부통령 당선자는 차기 부시 행정부에서 럼스펠드의 상관이 되지만 원래는 그의 ‘정치 문하생’ 출신. 닉슨 대통령 때부터 계속 럼스펠드 밑에서 일했던 체니는 포드 행정부 때 럼스펠드가 국방장관에 임명되자 그의 뒤를 이어 백악관 비서실장직을 맡기도 했다.

    럼스펠드는 냉전 종식 후 미국인들의 안보불감증을 경고하고 힘에 의한 평화를 주창하는 미국의 대표적인 보수 강경론자다. 그는 차기 국방장관에 지명된 뒤 “미사일 안보, 군장비 현대화, 테러리즘 방지 등 3대 목표를 위해 일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98년 초 의회의 요청으로 세계 미사일 위협에 관한 조사위원회를 맡아 6개월 간의 작업 끝에 북한 이란 이라크 등 이른바 ‘불량국가’의 미사일 위협을 강력히 제기한 ‘럼스펠드 보고서’를 발표해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이 보고서가 미국의 국가미사일방위체제(NMD) 구축에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럼스펠드는 ‘강력한 미국’을 주창하는 부시 당선자의 국방개혁 정책 추진에는 더없이 적격인 셈이다.

    럼스펠드가 국방장관에 기용된 또 다른 요인은 그의 탁월한 의회 교섭력에 있다. 그는 62년 일리노이주에서 하원의원으로 첫 당선된 뒤 64, 66, 68년 네번 연속 선출되는 기록을 세웠다. 4선 의원의 경험은 그를 의회도 추스를 만한 경륜을 지닌 인물로 평가받게 했다.

    그는 당초 중앙정보국(CIA) 국장 기용설이 나돌기도 했다. 그러나 의회와 긴밀한 협조 아래 정책 수립을 하는 데 더 적절하다는 부시 당선자의 판단에 따라 댄코츠 전 상원의원, 폴 월포위츠 전 국방차관 등을 따돌리고 국방장관에 전격 기용됐다. 특히 파월 국무장관 지명자와 라이스 안보보좌관이 의회 경험이 전혀 없다는 점을 고려할 때 부시 당선자는 럼스펠드에게서 든든한 의회 로비 창구의 역할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러미’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럼스펠드는 속내를 쉽게 드러내지 않아 ‘스핑크스’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의 럼스펠드가 펼칠 강력한 군사외교에 워싱턴 정가에 벌써부터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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