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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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가 들썩…리듬이 우리를 부른다

신명을 두드리는 타악 붐

  • 입력2005-06-03 13: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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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깨가 들썩…리듬이 우리를 부른다
    “마구 쳐라.” 말 없는 뮤지컬 ‘난타’를 굳이 풀이하자면 이렇다. 97년 10월10일 호암아트홀에서의 첫 공연 이후 4년째 장기공연(99년 1000회 돌파) 중이며 2009년께 1만회 공연을 달성하겠다는 ‘야심’이 놀랍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다.

    그 사이 공연 팀이 5개로 늘었고, 영국 에든버러 페스티벌에 참가해 격찬받으며 전석 매진 기록을 세웠으며, ‘난타 전용극장’까지 개관했다(2000년 7월1일). 문화관광부 선정 ‘서울의 10대 볼거리’ 중 하나로 한국에 수학여행 온 일본 학생들의 체험학습장이 되기도 했다. 이것이 그동안 ‘난타’가 거둔 가시적인 성과다.

    한국의 ‘난타’와 항상 짝을 이뤄 거론되는 것이 영국의 ‘스텀프’다. 흔히 말 없는 뮤지컬의 ‘원조’로 불리는 이 공연은 빗자루 쓰레기통 망치, 심지어 종이봉지와 라이터와 같은 생활 소도구를 동원해 소리를 만들어내고, 드럼통이나 밑창이 두꺼운 신발을 신고 걸어다니는 등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퍼포먼스를 한다. 96년 한국 초연 당시 16회 전석 매진 기록을 세웠다.

    어깨가 들썩…리듬이 우리를 부른다
    ‘스텀프’보다 한발 늦게 국내에 소개됐지만(97년 8월) 호주의 ‘탭덕스’ 인기도 이에 못지않다. 철강노동자들의 일상을 탭댄스 형식으로 꾸며낸 이 퍼포먼스는 배우들에 의해 수시로 바뀌는 무대장치, 현란한 조명, 물 위의 탭댄스 등으로 잠시도 눈과 귀가 쉴 틈이 없다. 관객들은 때 아닌 물세례를 받으면서도 즐거워하며 박수를 보낸다. ‘탭덕스’ ‘스텀프’ ‘튜브스’ 등 세계 3대 비언어 퍼포먼스는 뉴욕 오프 브로드웨이를 점령한 것으로도 모자라 전세계 무대에서 각광받고 있다.

    이처럼 리듬과 비트를 강조하는 서양식 퍼포먼스들은 거꾸로 우리 안에 잠자고 있던 ‘타악의 신명’을 깨워준 계기가 됐다. 굳이 뮤지컬이라는 서양의 틀을 빌리지 않더라도 ‘공명’ ‘푸리’ ‘두드락’ 등 국내 타악그룹의 연주가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는 것도 한국 관객들이 그 신명의 맛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증거다.



    실제 서양의 ‘말 없는 뮤지컬’과 최근 국내에서 자생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타악공연은 ‘손’과 ‘발’에서 차이가 난다. 우선 서양 퍼포먼스는 춤 의존도가 높다. 소도구를 이용한다지만 ‘스텀프’라는 말부터 ‘발을 구르다’는 의미고 ‘탭덕스’는 말 그대로 탭댄스가 기본이다.

    그러나 우리의 전통은 발보다는 손맛에서 나온다. 사물놀이 앉은반(앉아서 하는 연주)을 보면 화려한 춤동작이 없어도 얼마든지 황홀한 퍼포먼스를 제공한다. 최근 젊은 국악인들은 서양의 것과 우리의 전통을 적절히 가미해 새로운 타악 퍼포먼스를 창조해 내고 있다.

    지난 10월 ‘공명유희’(功鳴遊戱)라는 첫번째 단독 콘서트를 연 ‘공명’은, 추계예술대학에서 국악을 전공한 20대 젊은이 4명이 97년 결성한 그룹이다. 이들의 특징은 공연 때마다 자신들이 직접 제작한 악기를 포함해 30여 종의 타악기를 선보인다는 점. 원래 ‘공명’이라는 것도 그들이 첫번째 연주에서 선보인 대나무 타악기 이름이었다. 연극 ‘레이디 백베스’, 영화 ‘반칙왕’, 뮤지컬 ‘바리’ 등을 통해 이름을 알리는 데 성공했고 요즘은 콘서트 중심으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공명’보다 앞서 전통에 얽매이지 않는 ‘젊은 타악’을 선보인 것은 원일씨가 이끄는 ‘푸리’다. 93년 일본에서 열린 ‘국제 타악기 페스티벌’에 참가하기 위해 프로젝트팀으로 만들어졌으나 그 후 국립국악고 출신 4명으로 멤버를 구축해 지속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이 그룹은 사물놀이를 원형으로 하지만 아프리카 자일로폰, 하와이안 우드블록, 동남아 앙클롱 등 세계 민속 타악기를 동원해 100% 창작곡만 연주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99 이동’이라는 첫 음반을 내기도 했다.

    ‘두드락’은 10월19일부터 12월14일까지 세종문화회관 컨벤션센터에서 매주 목요일 ‘타악2000’이라는 상설공연을 펼친다. 도깨비들이 막대와 깡통 엿가위 그릇 대나무 등 생활소품을 두드리며 난장을 펼치는 유머러스한 내용. 외국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만큼 풍물과 태권무와 같은 한국 고유의 것과 불꽃놀이, 탭-재즈댄스 등의 다양한 퍼포먼스를 가미한 것이 특징이다. ‘두드락’은 2001년 3월 뉴욕 라마극장, 2001년 8월 에든버러 페스티벌에 참가하며 세계 시장 진출을 시도할 계획이다. 그 밖에도 풍물전문그룹을 표방한 ‘풍무악’이 빛과 리듬의 퍼포먼스 ‘도깨비’로 세계 무대에 도전한다.

    어깨가 들썩…리듬이 우리를 부른다
    그러나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는 말처럼 신선하게 보이는 타악 퍼포먼스도 알고 보면 사물놀이라는 기본 바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난타’만 해도 꽹과리 북 장구 징 등 사물 대신 젓가락 숟가락 칼 도마 프라이팬 등이 사용됐을 뿐 기본 장단은 사물놀이다. 초기 김덕수씨를 음악감독으로 모시고 사물놀이 가락을 전수받아 이 작품을 만들었다.

    젊은 국악인들에 의해 시도되는 새로운 타악공연은 일단 관객들의 호응을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속도의 테크닉에 의존하는 사물놀이의 단조로움에 식상한 관객들이 시각적 효과를 가미한 타악그룹의 공연으로 발걸음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TV강좌 ‘임동창이 말하는 우리 음악’의 임동창씨는 최근 타악 붐에 대해 기대 반 우려 반의 눈길을 보낸다.

    “다양한 공연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우리 음악의 희망을 보여준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이 담아내는 음악의 깊이와 연주 능력이다. 번뜩이는 아이디어에만 의존해 새로운 것을 보여주는 데 급급하면 음악은 계속 가벼워질 수밖에 없다. 두드린다고 우리 장단이 아니고 신명을 제대로 담아낼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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