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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나간 燃比전쟁

800cc 경차, 기름은 그랜저급?

‘공인 연비’ 실제 연비와 큰 차…자동차 회사들, 편법 동원 연비 부풀리기

800cc 경차, 기름은 그랜저급?

800cc 경차, 기름은 그랜저급?
“넉달 가량 모 자동차 회사의 경차를 운전해보니 차만 보면 울화통이 터진다. 기름이 적게 들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연비가 1ℓ당 8km밖에 나오지 않았다. 출고 때 차량에 부착된 연비 16km보다는 적게 나올 것이라고 짐작했지만 1ℓ당 8km는 상상하지도 못했다. 800cc엔진이 2000cc 이상의 엔진과 다름없이 기름을 먹을 수 있단 말인가. 연비의 효율과는 상관없이 차의 무게와 배기량만 낮춰 경차라고 이름붙여 팔아먹는 자동차 회사의 얄팍한 상혼이 아닌가 의심스럽다.”

경기도 성남시에 사는 주부 이선영씨가 최근 모 신문에 투고한 내용이다. 이씨뿐 아니라 오너 드라이버치고 국산차의 연비(燃比)에 대해 분통을 터뜨리지 않는 사람은 드물다. 국산 자동차의 공인 연비와 실제 주행 연비의 차이가 너무 심하기 때문이다.

회사측 “연비 차이는 운전 환경 때문”

당연히 국내 완성차 업체들은 연비에 대한 소비자들의 항의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기름값이 폭등하면서 더욱 그렇다. 공정거래위원회 소비자기획과 정재찬과장은 “소비자들이 연비 표시가 허위가 아니냐는 민원을 제기하는 경우도 있다”고 밝혔다.

물론 자동차 회사라고 해서 할 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공인기관에서 연비 시험을 할 때와 운전자의 사용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당연히 실제 주행 연비가 공인 연비보다 낮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가령 서울시내처럼 차가 막히는 경우 가다서다를 반복하다보면 당연히 기름이 많이 소비되고 공인 연비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또 현재의 연비 표시 목적을 이해해야 한다고 충고하기도 한다. 자동차공업협회 강철구 부장은 “소비자들로 하여금 동급 차종 중에서 연비가 가장 좋은 차를 선택하도록 유도하는 게 연비 표시의 목적이기 때문에 실제 주행 연비와 공인 연비가 차이나는 것은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고 설명했다.

자동차 회사들의 이런 설명은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 현재 연비-등급 표시를 위해 사용하고 있는 미국의 연비시험모드(LA-4 모드)가 75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시가지의 실제 주행 여건을 모사해 만든 가상 실험 모드여서 우리나라 도로 사정과는 차이가 있기 때문. 에너지기술연구원 이영대박사는 “미국에서도 오래 전에 만들어진 연비 시험 모드가 신뢰도가 낮다고 해서 시내주행 연비의 경우 84년부터 보정계수 0.9를 곱해 연비 라벨에 표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산업자원부도 작년 9월 연비 제도의 이런 문제점 때문에 우리 실정에 맞는 연비 시험 모드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산자부는 또 현재의 단순 연비 표시제도를 낮은 연비의 자동차에 대해 규제할 수 있는 연비 관리제도로 바꾸기로 했다. 이를 위해 연비 개선이 미흡한 업체에 벌금을 물리는 기업평균연비제도, 기준연비제도 등 선진국의 연비관리제도에 대한 비교 분석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연료 소모가 적은 고연비 자동차가 향후 자동차시장을 지배할 것이라고 말한다. 특히 연비 중심의 자동차 정책을 펼치는 유럽의 경우 ‘3ℓ카’(3ℓ로 100km를 주행할 수 있는 자동차)개발에 나서는 등 연비 향상을 위한 많은 투자와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기름 한방울 나지 않아 100%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의 경우 연비 향상은 국가적인 과제이기도 하다. 98년의 경우 우리나라의 총 에너지 소비량 중에서 자동차가 소비하는 에너지는 14.8%(1950만TOE)였다. 따라서 자동차 연비가 1% 향상되면 연간 3000억원의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런 국가적인 과제에 적극 부응한 탓일까. 연비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만은 높지만 그래도 국산 자동차의 공인 연비는 미국 차에 비해 대체로 높은 편이다. 99년 모델 가운데 미국에서 가장 연비가 좋은 자동차는 GEO 메트로로, 수동변속기 1000cc 엔진의 연비가 1ℓ당 20.3km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티코 수동변속기 800cc 엔진의 연비가 24.1km다.

이런 결과를 두고 국내 완성차 업체들의 연비 관련 기술이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해석해도 좋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업계 관계자들은 국내 완성차 업체들의 공인 연비가 높은 데에는 비밀이 있다고 실토한다. 그 비밀은 무엇일까.

우선 앞에서 말한 대로 국내 연비시험 규정은 미국 모드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즉, 시험조건, 시험시 자동차 주행조건, 연료소비율 등의 표시방법이 미국과 동일하다는 얘기다. 따라서 같은 국산차를 두고 국내 공인기관이 측정할 때나 미국에서 측정할 때는 비슷한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미국 환경청이 고시한 국산차의 연비와 국내의 공인 연비를 비교해보면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가령 기아자동차 세피아 1.8의 경우 국내 연비는 1ℓ당 13.6km인데 반해 미국의 공인 연비는 11.6km에 불과하다. 이에 대해 기아자동차 관계자는 “미국과 국내의 무게 조건이 조금 다르기 때문”이라고 해명한다.

그러나 아래 그림을 보면 그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약간은 짐작할 수 있다. 그림을 보면 동급 차종 중 가장 최근에 나온 자동차가 가장 좋은 연비를 기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만큼 기술 개발이 더 많이 이뤄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99년식 동급 차종의 미국에서의 연비가 평균 11.2km/ℓ인 것과 비교하면 기술의 발전으로만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너무 많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들은 이는 현재의 국내 연비 표시 제도의 맹점 때문이라고 말한다. 국내 연비제도는 연비 및 등급을 표시하도록 돼 있기 때문에 자연히 경쟁 차종보다 더 높은 연비를 인증받는 데만 온갖 ‘노력’을 기울인 결과 미국에서 공인 연비를 측정할 때보다 더 높게 나오게 됐다는 설명이다.

이 과정에서 국내 업체들은 온갖 편법을 동원하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내 업체들은 한때 인증시험 직전에 목표 연비가 나오지 않으면 배기가스 머플러에 구멍을 뚫거나 ECU의 데이터를 변경해 배기량을 조절함으로써 높은 연비가 나오도록 했다”고 귀띔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지금은 이런 방법을 쓰지 못하지만 어쨌든 연비를 높이기 위한 편법적인 노력을 현재도 계속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또 “현재 4개의 공인 연비 시험 기관 중 상대적으로 좋은 연비가 나오는 곳이 어디인지를 업계 관계자들은 모두 알고 있다”면서 “거리가 멀고 불편해도 자동차메이커들이 그곳으로 몰리는 것은 조금이라도 더 좋은 연비를 인증받기 위한 노력 가운데 하나”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런 자세는 세계시장에서 더 이상 통용될 수 없다. 이미 유럽 등 선진국이 자동차 배출 CO2(연비는 CO2 배출량과 반비례 관계) 규제를 시작했기 때문.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한국산 승용차에 대해 2009년까지 주행거리 1km당 CO2 배출량을 140g으로 줄이도록 한 규정을 4월14일 채택했다. 유럽연합은 또 2004년까지 1km당 CO2 배출량을 165~170g으로 줄이도록 했다. 이에 따라 국내 완성차 업체들은 고연비 자동차를 개발하지 못하면 자동차 수출길이 막힐 수 있어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태.

업계의 한 관계자는 “개발기간 등을 감안할 때 적어도 올 하반기부터는 유럽연합의 2004년 규제에 맞는 자동차 개발에 들어가야 하지만 국내 자동차 업체들이 제대로 해낼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현대차가 미국 업체와 공동으로 2004년 규제를 만족시키는 엔진 개발을 하고 있지만 결과는 더 구고봐야 알 수 있다는 것. 결국 국내 업체들은 유럽 자동차업체에서 기술을 도입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 김성준차장은 “현대는 1년 전부터 나름대로 준비해왔기 때문에 유럽연합의 CO2 규제를 충분히 충족시킬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는 이어 “유럽연합의 규제는 유럽에 수출하는 한국산 자동차 전체의 평균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다른 업체도 함께 노력해야 한다”면서 대우자동차의 기술력이 문제임을 시사했다.

그러나 대우자동차 한상명팀장은 “현대나 대우 모두 50보 100보”라고 주장했다. “유럽연합의 규제를 만족시키려면 결국 디젤엔진(디젤엔진은 가솔린 엔진에 비해 연비면에서 훨씬 유리하다) 승용차를 생산해야 하는데 현대자동차가 디젤엔진 승용차를 빨리 허용해달라고 정부에 요청하는 것을 보면 현대차가 어느 정도 절박함을 느끼고 있는지 알 수 있다”는 것.

그러나 국내에서는 매연 때문에 디젤엔진에 대한 거부감이 강해 정부도 섣불리 자동차 업계의 손을 들어줄 수는 없는 상태. 정부는 자동차 업계에 환경단체 등을 설득할 수 있는 디젤 엔진 기술을 개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 문제는 2002년에 가서 다시 논의하자고 잠정 결론이 난 상태.

자동차 전문가들은 “연비 개선 기술의 세계적인 추세는 차체 경량화를 우선하면서 엔진이나 변속기의 효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말한다. 차체 경량화의 경우 현재의 자동차 개념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자동차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것.

현재 연비 개선 가솔린 엔진의 경우 일본에서 개발된 린번(lean burn, 희박연소) GDI(극소희박연소) 엔진 등이 실용화돼 있는 상태. 린번 엔진이란 이론 공연비보다 더 많은 공기를 주입해(연료를 더 적게) 연소시키는 방식이고, GDI는 린번보다 더 많은 공기를 주입해 연소시키는 방식. 또 소형 자동차에만 장착할 수 있는 무단변속기(CVT)도 실용화돼 있다.

그러나 현대자동차가 아반떼와 에쿠스에 각각 장착하고 있는 린번 엔진과 GDI 엔진의 치명적인 결점은 미국의 배기가스 규제를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배기가스 규제가 미국보다 덜한 일본 한국 등에서 사용되고 있다. 현대자동차 김성준차장은 “배기가스 규제 기준이 미국과 일본의 중간 수준인 유럽에서도 린번과 GDI 엔진이 실용 가능하긴 하지만 앞으로의 기술 발전 방향이 GDI인지에 대해서는 찬반 양론이 있다”고 소개했다.

현대자동차가 한때 서울-부산을 왕복할 수 있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했던 린번 엔진의 경우 대우자동차나 기아자동차도 개발이 가능한 수준. 그러나 GDI 엔진은 일본에서 직수입해 장착하고 있다. 그나마 처음에는 에쿠스에 제대로 장착하지도 못해 에쿠스가 갑자기 멈춰서버려 애를 먹기도 했다.

대우자동차 한상명팀장은 “대우차는 린번 엔진의 상품화 가능성을 회의적인 시각으로 봤기 때문에 실용화하지 않았을 뿐”이라면서 현대차가 IMF 사태 이후 휘발유값이 오르자 이를 대대적으로 선전하는 것을 못마땅해했다. 기아자동차 관계자도 “린번 엔진은 고속도로에서 정속주행을 하는 경우에 한해 그 효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현대차가 광고하는 것만큼 효율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면서 “동력 성능이 떨어지고 배기가스 때문에 상품화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세계 자동차업계는 하루가 다르게 첨단 기술을 선보이고 있다. 따라서 기술력과 자금력, 마케팅 능력이 없는 업체는 21세기에 독자 생존이 어렵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애석하게도 우리나라는 연비 개선 기술 등을 포함, 자동차 첨단 기술에서 세계적인 기술 흐름에 한참 뒤처져 있는 상태다. 그런데도 한국을 대표하는 자동차회사에서 오너들간에 재산싸움이나 하고 있으니 한국 자동차 산업의 미래가 암울할 뿐이다.







주간동아 2000.05.04 232호 (p3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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