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29

2016.03.16

사진으로 보는 우리 역사

고구려 장수 고돌발의 결사항전

  • 전성영 사진작가 alisoo21@naver.com

    입력2016-03-14 11: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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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대륙을 장악한 당나라와 동방의 패자인 고구려 간 충돌은 숙명이었다. 645년 당 태종 이세민이 직접 군대를 이끌고 고구려를 침공하면서 천리장성의 주요 거점들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중국 랴오닝성 덩타((燈塔)현에 위치한 연주성(燕州城)은 고구려 천리장성 방어망의 주요 거점성 중 하나인 백암성으로 추정되고 있다. 1차 고당전쟁 당시 이곳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는데 당시 고구려 장수 고돌발의 무용담이 전해진다.   
    당 태종은 고구려 현도성, 개모성, 요동성을 차례로 함락하고 그 여세를 몰아 백암성을 공격했다. 고구려 관문이던 요동성이 함락되자 연개소문은 급히 지시를 내려 요동방어망의 후방 지원기지인 오골성의 병력 가운데 1만 명을 요동성 동북쪽 약 20km에 위치한 백암성으로 이동시켰다. 당시 지원군을 이끌고 간 고구려 장수 고돌발은 당나라 사령관 계필하력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러 위기에 빠뜨린 뒤 백암성 입성에 성공했다. 하지만 백암성 성주 손대음이 당나라 지휘부와 내통해 성문을 열어주는 바람에 백암성은 함락됐고 자결하려던 고돌발은 당나라 군에 의해 저지당한 뒤 계필하력 앞으로 끌려갔다. 계필하력은 고돌발의 용맹함과 충성심을 높게 평가해 그를 풀어주었다고 한다.
    중국 역사서들은 백암성이 당 태종의 군대에게 함락됐다는 점을 부각해서 기록했다. 그러나 고구려 쪽에서 보면 백암성은 천리장성 방어망의 주요 거점성이었고 수, 당과의 전쟁에서 침략군에게 큰 타격을 입은 거대한 방어라인의 한 부분이었다. 당나라 군대가 안시성 전투에서 패배해 급히 후퇴할 때 백암성을 비롯해 거점성들을 고구려가 재탈환했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그로 인해 당 태종의 군대는 쉬운 길을 두고 랴오허강 하구의 늪지대인 요택을 통과하려다 온갖 고초를 겪는다. 당 태종이 수레에서 내려 손수 나뭇단을 묶어 진창을 메워가며 늪지대를 헤쳐나갔다고 한다.
    고구려 축성법의 특징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백암성은 천수백 년을 버텨 왔으나 최근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웅장한 자태를 간직한 데다 일반인이 접근하기 쉬워 관광지화되면서 날이 갈수록 훼손되고 있는 것. 결국 지난해 점장대 윗부분이 무너져내렸다.  
    동북공정이란 역사 침략을 받고 있는 지금 고구려 유적마저 보호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고돌발과 고구려를 생각하며 해마다 이 성을 찾아간다. 부디 잘 보존돼 우리 후손들도 아름다운 건축미를 간직한 백암성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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