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25

2016.02.17

김작가의 음담악담(音談樂談)

모든 순간이 뜨거웠던 시절의 추억

‘영웅본색’을 다시 보다

  •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입력2016-02-16 16: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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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고가 대세다. ‘응답하라 1988’이 이런 트렌드를 현대적으로 소화해 대성공을 거둔 사례라면, 1980~90년대 가요를 트는 술집이 문전성시를 이뤘던 근래 몇 년의 흐름은 그 징후였을 것이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오랜 시차를 두고 재개봉하는 영화가 부쩍 늘었다. 얼마 전 ‘이터널 선샤인’이 10년 만의 재개봉임에도 10만 관객을 넘기더니, ‘영웅본색’도 2008년에 이어 한 번 더 재개봉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19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 사이 10대 시절을 보낸 남자 가운데 ‘영웅본색’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있을까. 아버지의 ‘바바리코트’에 구멍을 뚫었다 신나게 두들겨 맞거나, 엄마의 ‘라이방 선글라스’를 끼고 거울 앞에서 폼을 잡거나, 하다못해 입에 성냥개비를 물고 친구들에게 허세를 부리거나 했던 기억들 말이다. 직접 하지 않았어도 주변에 그런 친구 하나쯤은 반드시 있었다. 김용의 소설 ‘영웅문’과 함께 ‘영웅본색’은 그때의 남자들에겐 반드시 통과해야 할 인생의 포인트와 같았다. 우리 시대 무협이었다는 이야기다. 모든 순간이 뜨거웠으며 뜨겁지 않은 순간은 좀 더 뜨거운 순간으로 달려가는 예비동작과 다름없었다.
    많은 뜨거운 이야기는 그에 걸맞은 음악을 가지는 법. ‘영웅본색’ 또한 예외는 아니다. 뜨겁되 냉혈하지 않았던 주윤발(저우룬파), 장국영(장궈룽), 적룡(티렁)의 마음과 애수를 그려낸 음악들이 있다. 이 영화의 음악을 이야기하면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곡은 역시 ‘당년정(當年情)’일 것이다. 영화가 홍콩을 넘어 한국, 대만 등에서도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배우들은 모두 아시아를 대표하는 스타가 됐고, 그중 장국영은 가수로서도 웬만한 국내 가수를 상회하는 자리에 올랐다. ‘스크린’ ‘로드쇼’ 같은 영화잡지뿐 아니라 ‘월간팝송’ ‘뮤직시티’ 같은 음악지에서도 장국영의 일거수일투족을 다룰 정도였다.
    ‘당년정’은 ‘영웅본색2’의 주제가였던 ‘분향미래일자(奔向未來日子)’와 더불어 장국영의 솔로 앨범에 실렸고, 이 앨범은 당연히 국내에서도 발매돼 당시 기준으로 폭발적인 판매량을 기록했다. 아직까지 ‘한국인이 좋아하는 영화음악’ 같은 조사에서 이 노래는 늘 순위 안에 있다. 송자호(적룡)와 자걸(장국영), 그리고 마크(주윤발) 3인이 벌이는 마지막 검무, 아니 총무가 끝난 후 울려 퍼지는 ‘당년정’은 무릇 관객의 호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영웅본색’을 동시대에 본 사람이라면 중간에 흘러나오는 익숙한 멜로디에 놀랐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송자호와 마크, 아성(이자웅·리쯔슝)이 모여 옛날 일을 회고하는 장면에서 깔리던 곡 말이다. ‘어? ‘희나리’네?’ 하면서. 그렇다. 1985년 구창모 솔로 1집에 담겼던 이 노래는 그해를 대표하는 히트곡이었고 ‘영웅본색’을 통해 중국어 가사로 다시 한국에 돌아왔다.
    ‘기허풍우(幾許風雨)’(몇 차례의 비바람)란 제목으로 번안된 이 곡은 원곡과 달리 심오한 내용을 담아내 현지에서도 좋은 가사의 예로 전해진다. 외국에 대한 동경과 신비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컸던 시절, 홍콩 영화에서 들려오는 한국 인기가요의 멜로디는 그저 신기하기만 한 게 아니었다. ‘강남스타일’의 빌보드 흥행을 실시간으로 중계하며 자랑스러워하던 몇 년 전 풍경과 비슷하달까.
    또 한 번의 재개봉을 앞둔 영화 ‘영웅본색’을 다시 봤다. 21세기 들어 처음이었다. 오랜만에 듣는 1980년대 사운드였다. 영화음악이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인기를 누렸던 시대의 직관적 비장미가 그 안에 있었다. ‘기허풍우’가 흐를 때 더는 신기하진 않았지만, 신기해했던 추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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