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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합의금 장사’로 전락한 저작권법

무심코 쓴 서체 때문에 범죄자 낙인, ‘아니면 말고’ 식 ‘저파라치’ 횡행

  •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합의금 장사’로 전락한 저작권법

지난해 말 서울과 인천지역 초중고 300여 곳이 컴퓨터 워드프로세서에 쓰이는 글꼴(폰트) ‘윤서체’의 무단 사용으로 대규모 저작권 분쟁 송사에 휘말릴 처지라는 보도가 이어져 충격을 안겼다. 윤서체 개발업체인 그룹와이를 대리하는 법무법인 우산이 해당 학교에 ‘윤서체 유료 글꼴을 무단으로 사용해 저작권법을 위반했다’며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경고문을 보냈거나 보낼 예정으로 알려진 것. 그룹와이는 경고장에 ‘원만한 해결을 위해 소송 대신 윤서체 유료 글꼴 383종이 들어 있는 프로그램을 학교당 275만 원에 구입하면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내용을 함께 담았다.
이번 일로 우리 사회에 만연한 ‘저파라치’(저작권+파파라치)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저작권 분야를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삼고 있는 이들이 늘어났기 때문인데, 그 방법도 날로 진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저작권 침해 여부를 확인하지도 않은 채 무작정 개인과 회사에 전화를 걸거나 내용증명을 보내 소송을 진행하겠다고 통보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럴 때 당사자 대부분은 소송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으로 해당 프로그램을 구매하는 선에서 소송을 마무리 짓는 것으로 알려졌다. 저작권 소송이 ‘합의금 장사’로 불리는 이유다.


‘합의금 장사’로 전락한 저작권법

저작권법이 악용되는 사례가 늘면서 저파라치로 피해 본 사람들이 뭉쳐 법적 제도 변화를 주장하며 반격에 나서고 있다. Shutterstock 동아일보 출판사진팀

폰트 프로그램에 해당하는 저작권

심지어 저작권을 침해한 것도 아닌데 ‘찔러나 보자’는 심산으로 소송을 운운하는 법무법인도 생겨나고 있다. 디자인 회사에서 근무 중인 A씨는 지난해 황당한 경험을 했다. 자신을 어느 법무법인 직원이라 소개한 한 남성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는데, 이 남성은 A씨가 사용하지도 않는 서체를 언급하며 폰트를 정식으로 구매하지 않을 경우 저작권 위반으로 소송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A씨는 “그 사람에게 ‘내가 해당 프로그램을 쓰고 있는지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느냐, 증거물을 가져와라’고 했더니 전화를 끊어버리더라. 1년 넘게까지 다시 연락이 오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화면에 출력돼 나오는 글자체(typeface)와 글자체가 출력되게 하는 폰트프로그램(font program)으로 구성된 폰트(font)는 저작권 보호를 받는 유료 폰트일 경우 무단 사용 시 민형사상 책임을 져야 한다. 2013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배포한 ‘폰트 파일에 대한 저작권 바로 알기’란 문서를 보면, 폰트 자체는 저작물로 보호하지 않으나 폰트를 표현하기 위한 폰트 파일은 컴퓨터프로그램 저작물로서 보호하고 있다. 가령 인쇄소처럼 이미지 결과물을 외부로부터 받아 현수막으로 출력한 경우에는 인쇄소가 해당 폰트 파일을 복제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저작권 침해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문제는 컴퓨터 사용자가 폰트를 불법으로 다운로드했는지를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다. 직접 폰트 파일을 다운로드하거나 설치한 바가 없는데도 한글 등을 설치하면서 다른 프로그램에서 해당 폰트가 불려 나오는 경우에는 이용자가 이를 인지하기 어려운 것. 온라인상에서 ‘일주일 무료로 써보기’ 식으로 표시된 기간 한정 무료 폰트의 경우도 기간이 지난 뒤에는 얼마를 지급해야 하는지 등의 문구가 눈에 잘 띄지 않는 위치에 작게 적힌 경우가 많다.
웹디자이너로 활동 중인 B씨는 지난해 온라인 서적 작업을 하면서 개인이 만든 유료 서체를 표지 제목에 사용했다 형사소송을 당했는데, 책 작업 당시 폰트 구매 경로를 여러 방면으로 알아봤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B씨는 “저작권을 침해한 건 잘못이지만, 다운로드는 얼마든지 자유롭게 할 수 있게 해놓고 구매 경로는 정확히 공지하지 않은 것이 화가 난다. 누군가 놓은 덫에 걸렸다는 기분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청소년을 상대로 하는 저작권 소송도 늘고 있다. 2007년 전남 담양의 한 고교생이 저작권 침해로 형사고소를 당하고 저작권자의 합의금 요구에 고민하다 목을 매 자살한 사건도 있었다. 이 일로 저작권법이 침해 정도의 경중을 가리지 않고 무조건 형사처벌이 가능하다는 점이 여론의 비난을 받자 정부는 2009년 경미한 위반 행위에 대해서는 하루 동안 저작권 교육을 받는 조건으로 기소하지 않는 ‘저작권 교육조건부 기소유예제도’와 청소년이 우발적으로 저작권을 침해한 경우 1회에 한해 조사 없이 각하 처분을 하는 ‘청소년 저작권침해 고소사건 각하제도’를 시행했다.



법사위에서 표류 중인 ‘100만 원 저작권법’

하지만 이 또한 완벽한 해결책은 되지 못했다. 저작권자 측에서 민사소송이라는 새로운 카드를 들고 나온 것. 웹디자이너 C씨는 지난해 저작권 침해로 형사소송에서 벌금 200만 원을 선고받은 뒤, 몇 개월 만에 같은 건으로 민사소송에도 휘말려 현재 거액의 합의금을 요구받은 상태다. C씨는 “어쩌다 일이 이렇게까지 됐는지 모르겠다. 변호사 선임비 330만 원에 저작권자 측에서 요구하는 합의금이 800만 원이다. 얼마 전 법원으로부터 200만 원에 합의하라는 화해권고 결정이 떨어졌지만 상대가 거부하면서 다시 소송을 하게 됐다. 주위를 보면 소송 후 이 일에 대한 회의감마저 느껴 직장을 그만두는 사람들도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저작권법 소송이 ‘합의금 장사’로 악용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이제 가만히 앉아서 당하지만은 않겠다는 이들의 움직임도 적극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저작권 소송 대처법을 공유하는 인터넷 카페가 생겨나는가 하면, 인터넷 정책 관련 시민단체인 (사)오픈넷은 ‘합의금 수단으로 전락한 저작권, 저작권법 개정 운동’의 일환으로 ‘100만 원 저작권법’을 주장하고 있다. 남희섭 오픈넷 이사는 “2014년 국회 상임위원회가 저작권 피해금액이 100만 원 이상일 때만 처벌하자는 ‘100만 원 저작권법’을 내놓았다. 다만 영리 목적의 침해에 대해서는 피해금액과 상관없이 처벌한다. 이 법이 통과되면 사진 한 장 가져다 썼다고 경찰서에 불려가거나 처벌이 두려워 합의금을 줘야 하는 일은 없어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대안은 아직까지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한 채 표류 중이다. 법제사법위원회에 묶여 있는 것. 100만 원 저작권법이 법체계상 이례적인 일이고, 균형과 형평성을 고려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저작권자들의 반발도 거센 실정. 이에 대해 남희섭 이사는 “100만 원 저작권법이 이례적인 것은 맞지만 그동안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언론의 문제 제기와 시민단체의 제도 개선 요구, 저작권 사냥꾼으로 피해를 본 개인이나 학교, 기관, 중소기업들의 사례를 보면 우리나라는 이례적인 조치가 필요한 특수한 상황에 놓여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오픈넷은 이번에 문제가 된 그룹와이의 저작권 소송과 관련해 공정거래위원회에 고소할 방침이다. 각 폰트 파일로 실제 발생한 손해액과 무관하게 합의 대가로 폰트 패키지 구매를 요구하는 것은 공정거래법이 불공정거래행위로 금지하고 있는 거래강제행위 또는 형법상 공갈죄에 해당할 여지가 크다는 것. 남 이사는 “개별 폰트 프로그램에 대한 저작권 침해를 이유로 민사 손배소를 제기한다 하더라도 275만 원이라는 폰트 패키지 가격 상당의 손해액이 인정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주간동아 2016.01.13 1021호 (p38~39)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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