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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좌파 학생들 ‘전태일 평전’ 읽어… 공산당은 ‘노학연대’ 탄압

[조경란의 21세기 중국] ‘창당 100년’ 중국공산당, ‘인민의 의지’ 강조한 리다자오 정신 망각

  • 조경란 연세대 국학연구원 연구교수

中 좌파 학생들 ‘전태일 평전’ 읽어… 공산당은 ‘노학연대’ 탄압

2018년 중국 광둥성 선전시 ‘제이식과기유한공사’ 노동자에 대한 탄압에 항의하는 대학생들. 중국 당국은 노동운동에 나선 대학생들을 체포했다. [이터]

2018년 중국 광둥성 선전시 ‘제이식과기유한공사’ 노동자에 대한 탄압에 항의하는 대학생들. 중국 당국은 노동운동에 나선 대학생들을 체포했다. [이터]

7월 1일로 중국공산당이 창당 100년을 맞는다. 중국공산당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리다자오(李大釗·1889~1927)다. 리다자오는 천두슈(陳獨秀·1879~1942)와 함께 중국공산당 창당에 기여한 중국 최초 마르크스주의자다. 천두슈가 1915년 잡지 ‘신청년’을 창간해 새로운 사상을 논의할 지적 공론장을 만들었다면, 리다자오는 사회주의라는 외래 사상을 창조적으로 해석해 중국 사회에 적용하고자 했다.

리다자오 없이 마오쩌둥 없다

리다자오와 마오쩌둥 연구 권위자인 모리스 마이스너(Maurice Meisner) 미국 위스콘신대 명예교수는 천두슈를 중국 역사의 격렬한 흐름에서 소멸된 국제주의적·서구적 마르크스주의 대변자로, 리다자오를 혁명적 자율성과 민족주의적 동기를 강조한 선구자로 평했다. 마이스너 교수의 지적처럼 천두슈는 보편성을, 리다자오는 특수성을 추구했다. 마르크스주의 실현에서 중국적 특수성에 주목한 리다자오의 접근법은 중국 혁명의 작풍이 됐다. 그가 없었다면 마오쩌둥이라는 인물도 존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만큼 중국공산당 역사에서 리다자오는 중요한 인물이다.

리다자오는 1927년 4월 28일 38세 나이로 군벌 장쭤린(張作霖)에 의해 처형됐다. 처형 4년 만에 치른 장례식에 중국뿐 아니라 해외 사회주의자들이 조의를 표했다. 야마다(山田)라는 일본인이 보낸 다음의 조전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

“프롤레타리아의 사랑하는 지도자이며 선생이신 리다자오 동지. 비록 그대의 육신은 곧 묻히겠지만 그대의 영혼은 우리와 함께 있고, 그대가 흘린 피는 우리의 운동에 힘의 근원이 됐습니다. 동지, 편히 쉬시오. 우리는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워질 때까지 결단코 투쟁할 것입니다.”

생전에 리다자오는 “인생에서 최고 성취는 항상 격렬한 자기희생 속에 있다”고 말했다. 마치 자신의 죽음을 예견이라도 한 듯하다. 여기서 리다자오가 말한 ‘자기희생’이란 중국의 초기 공산주의 운동에서 볼 수 있는 지식인의 강한 책임감과 주체적 실천을 의미한다. 리다자오는 짧은 일생 동안 사회 기층의 요구에 응답하는 지식인으로 살았다.



리다자오는 중국공산당의 문화와 이론을 정초한 인물로 평가된다. 특히 정통 마르크스주의의 경제결정론적 측면을 극복하고 인간 의지를 강조했다. 그는 마르크스주의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인민의 도덕적·주체적·능동적 역할을 강조하는 ‘볼런터리즘(voluntarism)’을 주창했다. 리다자오의 사상은 마오쩌둥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다. 마오가 ‘인민의 의지’를 강조해 추진한 대약진운동(1958~1960)으로 인민 4500만 명(프랑크 디쾨터 홍콩대 석좌교수 추산)이 희생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리다자오는 마르크스주의가 중국에서 힘을 발휘하려면 본래 모습에서 변화해야 한다고 봤다. 마르크스주의의 중국화를 위해서는 ‘오리지널’과 상당한 괴리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자가 아닌 농민을 중심으로 한 혁명 방식이었다. 리다자오는 러시아혁명의 성공을 보고 중국에서 혁명 가능성을 낙관한 듯하다. 러시아처럼 중국도 경제적 후진성을 오히려 사회주의 실현을 위한 조건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물심양면(物心兩面), 영육일치(靈肉一致) 혁명관

중국공산당 창당을 주도한 사상가 리다자오(李大釗). [위키피디아]

중국공산당 창당을 주도한 사상가 리다자오(李大釗). [위키피디아]

정통 마르크스주의에 따르면 자본주의 사회가 도래해야만 비로소 사회주의로 나아갈 가능성이 생긴다. 자본주의 사회의 문제점이 극에 달하면 프롤레타리아가 계급투쟁을 벌여 자본주의 사회를 종식시키고 사회주의를 달성한다는 도식이다. 여기서 혁명의 전제는 자본주의 발전과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형성이다. 당대 중국에서는 이 두 가지 모두 형성되지 못했다. 결국 중국 혁명가들은 인간 의지에 기대는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20세기 중국 혁명을 지배한 ‘후진성의 이점’ ‘프롤레타리아 없는 프롤레타리아’라는 아이디어가 등장했다.

설익은 중국의 사회경제적 구조에서 혁명이 성공하려면 정신과 물질을 동시에 개조해야 했다. 리다자오 특유의 ‘물심양면(物心兩面) 개조’ ‘영육일치(靈肉一致) 개조’ 혁명관이다. 그는 1910년대 이미 다음과 같이 자신만의 고유한 혁명관을 정립했다.

“우리는 인도주의로 인류 정신을 개조하고, 사회주의로 경제조직의 개조를 주장한다. 경제조직을 개조하지 않고 단순히 인류 정신을 개조하려 한다면 반드시 효과가 없을 것이고, 인류 정신을 개조하지 않고 단순히 경제조직을 개조하려 한다면 성공하기 힘들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물심양면의 개조, 영육일치의 개조를 주장한다.”

인민의 의지를 혁명 원동력으로 강조한 리다자오. 그가 주창한 ‘중국적 마르크스주의’ 덕분에 중국공산당은 혁명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중국 당국은 리다자오의 정신을 박물관에 박제한 채 오히려 경계하고 있는 듯하다. 리다자오가 1918년에 만든 베이징대의 ‘마르크스주의 연구회’가 최근 존폐 위기를 맞았다고 한다. 인민대, 우한대 등 마르크스주의 연구회가 있는 다른 대학도 사정은 비슷하다. 대학에서 ‘좌파’ 대학생을 중심으로 이뤄진 노동자-학생 연대도 당국의 탄압에 시달리고 있다. 중국 내 좌파 대학생들 사이에서 ‘전태일 평전’이 널리 읽히는데, 이들은 1980년대 한국 대학생처럼 ‘학출 노동자’(학생운동가 출신 노동자)로 노동 현장에 투신하기도 한다. 중국공산당은 아래로부터의 학생·노동운동을 철저히 탄압하고 있다. 리다자오는 지금의 중국공산당을 어떻게 바라볼까.

조경란은… 연세대 국학연구원 연구교수, 국무총리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인문정책특별위원회 위원. 중국현대사상 · 동아시아 사상 전공. 홍콩중문대 방문학자 · 베이징대 인문사회과학연구원 초빙교수 역임. 저서로는 ‘현대 중국 지식인 지도 : 신좌파·자유주의 · 신유가’ ‘20세기 중국 지식의 탄생 : 전통 · 근대 · 혁명으로 본 라이벌 사상가’ ‘국가, 유학, 지식인 : 현대 중국의 보수주의와 민족주의’ 등이 있다.





주간동아 1295호 (p48~49)

조경란 연세대 국학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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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99호

2021.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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