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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나쁜 소주는 없다

[명욱의 술기로운 생활] 무(無)맛 소주…고급 소주로 인식 바꿔야

  • 주류 문화 칼럼니스트 blog.naver.com/vegan_life

세상에 나쁜 소주는 없다

외국인이 가장 싫어하는 
한식 중 하나로 꼽힌 ‘소주’. [GettyImages]

외국인이 가장 싫어하는 한식 중 하나로 꼽힌 ‘소주’. [GettyImages]

농림축산식품부는 1월 ‘2020 해외 한식 소비자 조사’를 발표했다. 흥미로운 것은 외국인이 가장 싫어하는 한식 가운데 하나로 소주(14.1%)를 꼽았다는 점이다. 해외에서 소주는 한국을 대표하는 술로 인식된다. 하지만 가장 많이 팔리는 술은 아니다. 관세청에 따르면 2018년 기준으로 맥주 1억5000만 달러(약 1700억 원), 소주 1억1000만 달러(약 1256억 원), 막걸리 1200만 달러(약 137억 원)가 수출됐다. 수치만 보면 외국인이 싫어하는 술은 소주가 아닌 맥주여야 한다. 그런데 왜 한국 소주를 가장 싫어할까. 

우선 한국 맥주는 외국에서 ‘가성비’가 좋다는 이미지만 갖고 있다. 즉 자사 브랜드를 지우고 PB(자체 브랜드) 상품으로 수출되는 경우가 많다. 앞서 언급한 조사에서 외국인이 꼽은 최고 음식이 ‘치킨’이었다는 걸 감안하면 외국인이 한국의 대표 식문화인 ‘치맥(치킨+맥주)’을 즐길 때 정작 한국 맥주는 많이 마시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된다. 일본에서 활동하는 약선 요리 전문가 신카이 미야코 씨는 “마트에 가면 한국산 맥주는 종종 보이지만 한국 이미지를 내세운 맥주는 보기 어렵다. 한국의 국가 브랜드 대비 아쉬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대표 술이 비호감 1위?

소주는 다르다. 병 색깔도 동일하게 초록색이고, 술잔과 디자인 역시 전 세계 많은 술과 차별화된다. 다양한 병이나 캔에 담긴 맥주와 달리 개성 있는 모습이다. 소주가 한국의 대표 술로 인식된 이유다. 그런데 어쩌다 ‘비호감’ 1위가 됐을까. 

이 상황을 이해하려면 미디어의 영향을 논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 드라마와 영화, 뮤직비디오 등에 나오는 소주는 ‘힘든 상황에서 마시는 술’이다. 그것도 대부분 포장마차나 저렴한 주점 또는 방구석에서 마시는 술로 묘사된다. 주인공은 늘 홀로 소주를 마시거나, 소주를 마시다 신세 한탄을 하고 친구나 동료와 싸우기도 한다. 이런 모습이 외국인 눈에 너무 강하게 들어오면서 한국 소주는 ‘서민적인 술’ 혹은 ‘거친 술’이라는 이미지가 만들어졌다. 와인이나 위스키는 언제나 최고급 레스토랑, 바에서 재벌 또는 실장님이 즐기는 술로 나오는 데 반해, 소주는 그 반대 모습으로만 비치니 이미지가 개선될 턱이 없다.


와인처럼 소주 마시는 한국 술 문화

우리 농산물로 만든 전통 소주들. [사진 제공 · 명욱]

우리 농산물로 만든 전통 소주들. [사진 제공 · 명욱]

한국은 전 세계 증류주 소비 1위 국가다. 소주는 증류주다. 소주를 세계에서 제일 많이 마시는 나라다. 해외에서 증류주는 대부분 식후주로 마신다. 한국은 다르다. 식중주로 마시는 경우가 많다. 삼겹살을 굽거나 감자탕, 찌개 등을 먹으면서 반주로 즐긴다. 



이렇게 된 이유는 뭘까. 외국 증류주는 대부분 도수가 40도 전후다. 반면 한국 소주는 도수가 17도 전후로 13~14도짜리 와인과 별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한국인은 소주를 와인 마시듯 즐긴다. 그래서 과음하는 사람도 많다. 

소주를 마시는 문화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보기도 한다. ‘강압적인 술’이라는 이미지가 박힌 것도 이 때문이다. 소주는 회식 자리에서 잔에 따르면 무조건 비워야 하는 술로 통하고, 조금이라도 남기면 “꺾어 마신다” “술자리 분위기 망친다”는 질책까지 받아야 한다. 필자도 늘 이런 자리를 피해 도망을 다녔다. 술=곤욕이요, 술=나쁜 것으로 생각하던 젊은 날의 초상이기도 하다. 

한국 소주는 그동안 선택권이 적었다. 일반 소주는 주정에 물과 감미료를 넣어 만드는데, 감미료 맛을 제외하면 차별화가 되지 않는다. 이렇게 선택권이 적으면 맛 자체보다 취하는 게 목적이 된다. 돼지고기만 해도 필요에 따라 다른 부위를 먹는데, 한국 소주에는 이런 선택지가 적었다. 

소주의 주원료인 주정은 농산물로 만들어진다. ‘남미의 감자’로 불리는 타피오카 또는 쌀, 감자, 고구마, 밀가루 등 다양한 잉여 농산물이 주원료다. 모든 주정 맛이 같아야 정형화된 제품을 만들 수 있기에 ‘무(無)맛 소주’가 한국 소주의 이미지가 됐다.


한국 소주업계의 숙제

다양한 전통주를 시음하는 필자.  [사진 제공 · 명욱]

다양한 전통주를 시음하는 필자. [사진 제공 · 명욱]

업계에서는 이런 상황을 개선하려면 먼저 세금 체계가 개편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현재 소주의 주세 체계는 가격과 연동되는 종가세다. 이 가격에 세율을 곱하니 주세만 원가의 72%이다. 여기에 교육세, 부가세가 추가되면 소주 값의 반 이상은 세금이다. 이 때문에 원재료가 싸면 세금을 적게 내고 가격 경쟁력이 좋아지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좋은 농산물로 술을 빚으면 원재료 값이 상승하니 부과되는 세금도 늘어난다. 그래서 저가 소주만 시장에 유통되고, 그 결과 저렴한 소주가 전체 시장의 99%를 차지하는 상황이 됐다. 이렇게 다양성이 부족하고 농업에 기반을 두지 않은 한국 소주에 외국인들이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측면도 있다. 

이런 주세 체계를 가격이 아닌 용량에 세금을 부과하는 종량제로 바꾸면 어떨까. 비싼 소주는 저렴해지지만 기존 저렴한 소주 가격이 올라가는 게 단점이다. 그렇다면 희석식 소주는 기존처럼 과세하고, 우리 농산물로 만드는 증류식 소주와 전통 소주는 용량에 따라 과세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우리 쌀, 밀, 보리, 감자, 고구마 등으로 만든 수많은 전통 소주가 탄생할 테고, 각 지역 소주를 그 지역 향토 음식과 즐기는 문화도 만들 수 있다. 또한 안동소주, 문배주, 화요, 대장부 등 고급 소주의 가격도 내릴 수 있다. 늘 위스키와 와인 차지였던 ‘고급스러움’ 이미지도 가져올 수 있다. 우리 술에 대한 세계적 인식을 바꿀 수 있다. 

세상에 나쁜 소주는 없다. 나쁜 것은 마시는 자의 태도나 제도일 터. 이런 것이 개선되면 전 세계인으로부터 농업의 가치, 한국 술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지금까지 함께한 독자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2년간에 걸친 ‘명욱의 술기로운 생활’을 여기서 마무리 짓는다.





주간동아 1282호 (p6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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