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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화장품은 무조건 안전? “비전문가 평가 맹신” 비판 일어

EWG의 스킨딥(화장품 성분 분석표), 천연재료에 독성 있어도 안전 등급 부여… “믿기 어렵다”는 주장 확산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노도일 인턴기자 ·연세대 경제사회계열 4학년

천연화장품은 무조건 안전? “비전문가 평가 맹신” 비판 일어

[GettyImages]

[GettyImages]

화해 애플리케이션 화면. [BIRDVIEW]

화해 애플리케이션 화면. [BIRDVIEW]

직장인 주해인(25·여) 씨는 화장품 정보 애플리케이션(앱)인 ‘화해’를 즐겨 쓴다. 그는 최근 화해를 보다 사용하던 화장품을 버렸다. 기존에 쓰던 화장품에 ‘레드’ 등급의 성분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화해는 이용자들에게 화장품 성분 분석표를 제공한다. 화장품 성분은 유해도에 따라 총 10등급의 숫자와 색으로 표시된다. 안전한 1~2등급은 초록색, 보통 수준인 3~6등급은 노란색, 위험한 수준인 7~10등급은 붉은색으로 표시된다. 주씨는 “사용하는 화장품이 안전한 성분으로 만들어졌는지 확인하고자 화해 앱을 자주 이용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화해가 제공하는 성분 분석표의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화해의 성분 분석표는 미국 환경단체 EWG(Environmental Working Group)가 독자적으로 만든 성분사전을 기반으로 한다. EWG는 1993년 설립돼 워싱턴DC에 본사를 두고 있는 단체로, 산업 제품에서 화학물질 사용을 경고해왔다. EWG에 모이는 기금만 한 해 1000만 달러 이상. 이 자금력을 전방위적인 로비에 사용하는,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환경단체 가운데 하나다. 이들이 화장품 영역에 발을 들여 만든 화장품 성분 분석 데이터베이스가 ‘스킨딥’으로, 스킨딥은 학계, 정부기관 등의 연구자료를 종합해 만들어졌다. 


‘화해’의 서비스 화면. [화해 페이스북]

‘화해’의 서비스 화면. [화해 페이스북]

화장품 제조사들은 스킨딥 데이터베이스를 제품 홍보에 자주 사용한다. 아모레퍼시픽은 각종 매체에 자사 브랜드 ‘스테디’를 홍보하면서 전 성분 스킨딥 그린 등급임을 강조했다. 한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에서 한 달여 만에 5000만 원 이상 매출을 올린 ‘보타닉 센스’는 자사 화장품 41개의 성분이 모두 그린 등급을 받았음을 내세웠다. 평소 화해를 자주 이용한다는 취업준비생 서사랑(27·여) 씨는 “아무래도 노란색, 붉은색이 들어가 있으면 위험해 보인다”며 “1~2등급인 ‘그린’ 등급 위주로 화장품을 사는 편”이라고 말했다. 

화장품 화학자 페리 로마노스키는 저서 ‘화장품 화학 입문(Beginning Cosmetic Chemistry)’에서 EWG를 신뢰할 수 없는 단체라고 비판한다. 환경단체인 EWG의 특성상 과도하게 화학물질에 대한 공포심을 유발한다는 것. EWG는 거의 모든 백신에 들어 있는 보존제가 자폐증을 유발한다며 백신 거부 운동을 벌여 미국에서 비판받은 바 있다. 또한 자외선 차단제가 피부암을 유발한다며 아이들에게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지 말라고 주장했다 학계로부터 강도 높은 공격을 받고 있다. 10년 전 미국 조지메이슨대가 독성학협회 회원 1000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이들의 약 80%는 EWG가 화학물질의 위험을 과대평가했다고 답했다. 사실상 한국의 ‘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안아키)와 비슷한 행동을 해온 셈이다. 



화장품 안전 전문가인 모즈간 모드다레시오 박사는 EWG가 과학전문단체가 아니기 때문에 과학적 이해도가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스킨딥에서 소듐코코일설페이트와 소듐라우릴설페이트라는 성분은 각각 다른 성분으로 기재돼 다른 등급을 받았다. 하지만 학계에서 소듐코코일설페이트와 소듐라우릴설페이트는 동일한 성분으로 본다. 소듐코코일설페이트는 코코넛 유래, 소듐라우릴설페이트는 석유 유래지만 작용하는 방식은 사실상 같기 때문이다. EWG 이사회에는 과학자 등 학계 전문가가 없다. 그 대신 정치인, 로비스트, 사업가, 변호사 등 비전문가로 구성돼 있다.


화장품과 무관한 아전인수 식 기준

EWG 인증로고(왼쪽)와
EWG의 스킨딥 등급표. [Environmental Working Group]

EWG 인증로고(왼쪽)와 EWG의 스킨딥 등급표. [Environmental Working Group]

스킨딥은 참고한 논문과 자료를 근거로 암 유발, 내분비 교란, 신경 독성 등 인체에 미칠 수 있는 악영향을 17가지로 정리해 독자적인 계수를 상정한다. 그 후 각 성분이 인체에 미칠 수 있는 악영향에 따라 점수와 등급을 매긴다. 

문제는 스킨딥의 참고자료가 대부분 섭취 및 장기간 고농도 노출 시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는 점. 화장품처럼 소량 사용했을 때와 상황이 다르다. 실제로 스킨딥 참고자료 가운데 하나인 미국 환경보호국(EPA)의 통합위험정보시스템은 물질이 인체에 끼칠 수 있는 유해성을 평가했을 뿐, 화장품으로 사용했을 때 문제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최경호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화장품을 통해 피부로 노출되는 성분의 유해성이 섭취나 호흡기를 통해 들어올 때의 유해성과 동일하다고 볼 수 없다. 가습기 살균제 성분도 피부를 통해 노출될 때는 독성이 적지만 호흡기에 노출되면 폐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단적인 예로 섭취 시 1급 발암물질인 알코올을 피부에 바른다고 암에 걸리지는 않는다. 

화장품에 들어가는 성분은 대부분 낮은 농도로 중화해 사용하기 때문에 독성이 있어도 거의 희석된다. 한국에서는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 관리하에 피부자극시험 등을 거쳐 안전하다고 입증된 원료만 사용이 허용되고 있다. 특히 화학성분은 배합 한도가 정해져 있어 규정만 지킨다면 피부에 해가 되지 않는다. 이병무 성균관대 약학대학 교수는 “어차피 이 세상의 모든 물질은 독성물질이다. 사용량을 조절해 인체에 도움이 되는 범위에서 물질을 활용한다면 인체 안전에는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반대로 스킨딥에서 그린 등급을 받았다고 안전하다는 보장도 없다. 스킨딥은 참고할 자료가 미미한 성분을 그린 등급으로 표시한다. 즉 야자커넬추출물, 람부탄껍질추출물 등은 자료가 전혀 없어 그린 등급으로 표시되는데 이처럼 자연유래추출물들의 경우 연구 결과가 적어 자극이 있을 수 있어도 주로 그린 등급을 받는다. 

실제로 아틀라스시더목부추출물은 식약처가 고시한 배합 금지 성분이지만 스킨딥에서 그린 등급을 받았다. 또한 EWG는 화학성분보다 천연성분에 우호적이다. 이 때문에 천연물질의 위험성에 둔감하다. 이를 악용해 일부 화장품 회사는 효과가 불분명한 자연유래추출물로 만든 화장품을 스킨딥 그린 등급이라며 홍보하고 있다. 식약처는 화장품법 제8조에 따라 공신력 없는 민간 환경단체 등의 기준을 근거로 광고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밝힌 바 있다.


케미포비아로 화장품업체만 배불려

1930년부터 화장품 보존제로 쓰이던 파라벤의 경우 2004년 이후 천연화장품 열풍과 더불어 암을 유발할 수 있어 위험하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이로 인해 오늘날 대다수 국내외 화장품에는 파라벤이 들어가지 않는다. 그러나 2013년 유럽연합의 소비자안전과학위원회(SCCS)가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파라벤을 화장품 성분으로 사용했을 때 암을 유발한다는 근거가 부족하다. 미국 화장품원료검토위원회(CIR) 역시 지금까지 같은 입장을 표하고 있다. 파라벤은 전 세계에서 식용으로도 첨가 가능하다. 

화장품 회사들은 값싸고 안정적인 파라벤을 포기하고 대체 보존제를 모색해야 했다. ‘명품 피부를 망치는 42가지 진실’ 저자이자 화장품 비평가인 최지현 씨는 “화장품 회사들이 파라벤처럼 화장품 성분으로 사용해도 별문제가 없는 스킨딥 7~10등급 보존제를 모두 포기하고 대체 성분을 찾느라 생산원가가 증가했다. 그럼에도 안전성은 예전보다 못하다”고 스킨딥을 비판했다. 최근 파라벤의 대체 성분으로 사용되는 천연방부제들은 엄격하게 관리되는 화학방부제와 달리 함량 기준이 없는 편이다. 천연방부제가 화학방부제보다 보존 성능이 떨어져 고농도로 넣다 보면 오히려 피부에 자극이 될 수 있다. 

대한화장품협회 관계자는 “잘 연구된 안정적인 화학성분이 연구자료가 부족한 천연성분보다 안전하다”며 “EWG 기준만 보고 무작정 화학성분을 기피하기보다 합리적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주간동아 2020.01.10 1222호 (p52~54)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노도일 인턴기자 ·연세대 경제사회계열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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