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광의 빅데이터 부동산

전세가율로 보는 2020년 집값 전망

  • 하우스노미스트

    johns15@hanmail.net

    입력2019-12-23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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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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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값 향방을 알려주는 지표로 많이 회자되는 것이 전세가율(매매 가격 대비 전세 가격의 비율)이다. 필자 역시 매년 초 전국 250여 개 시군구 집값의 미래를 전망할 때 전세가율 수준과 추이를 가장 먼저 살펴본다. 그 이유는 ‘실제 거주 가치’가 전세 가격에 반영돼 있기 때문이다. 전세 가격이 계속 상승한다는 건 실제 거주하고픈 수요가 증가한다는 뜻이다. 매매 가격의 견고한 상승을 위해서는 단기 투자 수요가 아닌, 실수요의 매수세가 꾸준히 이어져야 한다. 지금 당장 매매 가격 흐름이 미지근해도 실수요의 바로미터인 전세 가격이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면 실수요에 의한 대세 상승을 점쳐볼 수 있다. 


    전국 평균값으로 따져보면 전세가율이 70%에 도달했을 때 주택시장이 ‘끓기’ 시작했다. 한때 70%까지 가능했던 LTV(주택담보대출비율)가 현재는 30~40%로 축소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세 가격이 매매 가격의 70% 수준이라면 무주택 전세 거주자는 주택담보대출금에 전세보증금을 보태 내 집 마련이 가능하다. LTV 한도는 중산층의 유동성 곳간으로도 불린다. 그 비율이 70%였을 때 전국 주택시장의 ‘평균 끓는점’이 됐다. 물이 끓으면 수증기로 증발하듯이 전세 수요가 끓기 시작하면 매매 수요로 전환돼 ‘증발’한다(그림1 참조). 전세 수요가 잠잠해지면 다시 이후의 끓는점을 기다리며 주택시장 사이클이 만들어진다. 

    다만 전세가율 70%가 전국의 ‘평균 끓는점’이지만, 갈수록 주택시장이 다극화하면서 지역별 끓는점은 천차만별이 될 것으로 보인다. 더 나아가 지역 특수성 혹은 시장 맥락에 따라 전세가율 메커니즘(전세가율 상승  →  2~3년 후 집값 상승)이 반대로 작동하는 예외적인 상황도 있다. 전세가율 메커니즘을 쉽게 봐서는 안 되는 이유다. 빅데이터가 알려주는 전세가율의 완벽 사용법을 통해 2020년 끓는점에 도달할 곳과 우리가 속지 말아야 할 전세가율 미신에 대해 살펴보자.

    전세가율로 보는 대한민국 주택시장 20년

    1990년 경기 분당신도시 개발로 시작된 ‘신도시 열풍’은 고양시와 파주시부터 용인시, 안산시까지 수도권 남북을 관통해 번졌다. 부산시는 해운대의 본격적인 개발이 이뤄지는 등 2000년 초반까지 전국적으로 ‘집은 당연히 사는 것’이라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그래프1 참조). 전국적으로 연평균 10% 이상 폭등세가 수년간 이어지는 상황에서 굳이 ‘전세보증금’으로 내 돈을 묶어놓을 이유가 없었다. 10% 이상의 미래가치가 보장된 부동산은 자산 증식을 위해 어렵지 않게 결정할 수 있는 1순위 옵션이었다. 전국의 유동성이 주택 매수에 쏠리면서 전셋값은 제자리걸음을 했고, 결과적으로 전세가율 하락에도 집값은 천정부지로 솟았다. 2001년 62%였던 전국 전세가율은 금융위기 직전 42%까지 추락하고 있었다. 

    2008년 미국에서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는 ‘주택시장’의 붕괴로 촉발됐기에 우리나라 주택시장 역시 충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집은 당연히 사는 것(Just buying property)’에서 ‘집은 단지 사는 곳(Just living place)’으로 패러다임 전환이 이뤄졌다. 자산을 지키는 최적의 대안으로 ‘전세 거래’가 매력을 더했고, 충격의 간극기에 전세시장이 매매 못지않게 주택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살기 좋은 곳’으로 전세 수요가 몰리면서 ‘실종된 매매 가격’ 대신 전세 가격이 주택 가치를 대변하기 시작했다. 전국적으로 전세 트렌드가 확산됐고, 어느덧 전세가율은 2013년 60% 선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마침 2014년 8월 주택규제 합리화 방안이 실시돼 전 금융권의 LTV 한도가 70%로 완화됐다. 중산층의 유동성 곳간은 넉넉해졌으며, 살기 좋은 곳의 전세 가격은 매매 가격의 70%가 돼 ‘끓는점’에 도달했음을 알렸다. 드디어 방아쇠가 당겨졌다. 그러나 이번 방아쇠는 2000년 초 무작위 난사와는 다르다. 충격의 간극기를 거치며 전세가율이 실거주 가치의 ‘바로미터’가 돼 정조준(正照準)을 도왔기 때문이다. 내가 살아보고 검증된 곳을 매수하는 ‘가치 매수’가 주를 이룬 덕분에 수도권 주택시장은 최근 5년간 20% 넘는 성장세를 보이고도 2019년 한 해 동안 연착륙할 수 있었다. 경기도 주택 가격은 지난 5년간의 상승기를 마무리하고도 2019년 1.5% 상승을 기록했다. 



    2016년 전세가율은 2018년이 정점이 될 것이라는 예언자로서 역할을 충분히 해냈다. 2016년부터 전세가율이 하락하자 2년 후인 2018년을 정점으로 가격 상승폭이 둔화됐다. 유례없는 장기간의 상승기를 겪었음에도 전국 전세가율은 2019년 현재 62%로, 과거 폭락기의 42%보다 높은 수준이다. 금융위기 이후 ‘충격의 간극기’에 전세시장이 단단히 다져졌기 때문이다. 전세가율 하락이 2018년의 변곡점을 짚어줬지만 2020년 전국적으로 60% 선을 꾸준히 유지한다면 2008년 같은 급락 걱정은 접어도 된다.

    끓는점으로 보는 서울의 흐름

    서울 강남의 끓는점은 전국 평균 대비 유난히 낮다. 2013년 강남 4구 전세가율은 56%에 불과했으나 2014년부터 대세 상승기가 전개됐다(그래프2 참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강남 4구 전세가율이 60%를 넘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 강남 전세가율이 2015년 64%에 도달했으니 2~3년 내 단순 상승이 아닌 폭등이 오리라는 것을 전세가율이 미리 점쳐준 셈이다. 

    왜 강남은 낮은 전세가율에도 시장이 끓을 수 있을까. 전국보다 3배 높고, 서울보다 1.5배 높은 ‘매매 가격’ 때문이다. 상승 국면에서는 매매 가격뿐 아니라 전세 가격도 오르기 마련이다. 그러나 전세보증금은 미래의 ‘가치투자’가 아닌 묻어두는 ‘거주비용’이므로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대체지가 나타나면 상승 한계점에 도달한다. 좋은 입지를 넘어 ‘정말 소유하고 싶은 아파트’라면 전세 수요는 한계점인 끓는점에 다다른 후 매매 수요로 증발해버린다. 결국 대체비용과 증발의 원리에 따라 전셋값 상승폭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처럼 상승에 한계가 있는 전세 가격 대비 ‘넘사벽’인 강남의 매매 가격 덕분에 강남 전세가율은 낮을 수밖에 없다. 마치 산의 고도가 높을수록 끓는점이 낮듯이, 매매 가격이 높은 도시일수록 끓는 전세가율이 낮은 것이다. 


    매매 가격으로 대변되는 입지고도(高度)의 격차로 강남과 강남 외 서울, 그리고 기타 도시의 끓는점은 각기 다르다(그림2 참조). 입지고도에 따른 전세가율의 원리를 안다면 강남 전세가율 40% 공포론에 휘둘릴 필요가 없다. 물론 강남 전세가율 하락 후 2019년 매매가 상승폭은 2018년의 5분의 1로 축소됐으나, 과거 폭락기였던 30%의 전세가율 대비 높은 수준(2019년 44%)이다. 또한 분양가상한제로 최근 전세값이 상승 반전하면서 전세가율은 40%의 마지노선을 유지할 것이다. 혹여 강남 전세가율이 30%대로 추락한다면 강남의 다음 사이클을 기다리며 ‘끓는점 50%’ 도달 여부를 확인하면 된다.

    수도권과 지방의 집값 추이

    경기도는 역대급 입주 물량에 따른 전세가율 하락을 더욱 유심히 살펴봐야 한다. 통계에 따르면 전세가율에 민감한 지역으로 과천축인 안양시와 의왕시, 서울 강서 진입축인 부천시, 김포시가 꼽힌다(표1 참조). 해당 지역 전세가율은 2019년 말 현재 평균 끓는점 70%를 유지하며 여전히 매수 기회가 열려 있음을 알려준다. 이와 반대로 평택시와 오산시, 안성시는 전세가율이 70%를 넘거나 상승 중이지만 ‘입주 과잉으로 인한 매매 가격 하락’이 원인으로 갭투자 위험지역이라 할 수 있다. 


    인천의 경우 전세가율이 가장 높은 계양구의 아파트가 연식을 가리지 않고 많이 올랐으나, 송도신도시가 있는 연수구의 신축 아파트에 가격 상승률 1위 자리를 내줬다(표2 참조). 입지고도의 원리에 따라 인천 평균 대비 ‘넘사벽’인 송도의 집값을 고려했을 때 70%에 달하는 연수구의 전세가율은 이미 끓는점을 넘어섰음을 의미한다. 게다가 귀한 새 아파트다. 펄펄 끓는 송도신도시는 신축 아파트뿐 아니라 6~10년 차 아파트도 조만간 끓는점에 도달할 것으로 보인다. 


    수도권에서 눈을 돌려 지방의 전세가율을 살펴보자. 최근 회복세가 두드러진 부산은 이미 전세가율이 1년 전부터 상승해 회복세를 예견했다(표3 참조). 울산은 전세가율이 최근 상승 반전하며 2020년 본격적인 회복세를 암시하고 있다. 반면 활황을 보였던 대구시와 광주시, 대전시의 전세가율은 지난해부터 꾸준히 하락하며 2020년 입지별 온도차가 극심하리라는 것을 예고한다. 


    지방임에도 강남만큼 전세가율이 낮은 도시가 2곳 있다. 바로 세종과 제주다. 이들 도시는 오랫동안 켜켜이 쌓아올린 강남의 입지고도와 달리 5년 전 서울/준서울지역의 매수세로 탄생한 ‘신생 입지고도’다. 두 도시 모두 서울 및 다른 지역의 외지 매수가 급증했을 때 세종은 연 7%, 제주는 연 22% 상승률을 기록했다(그래프 3 · 4 참조). 두 도시는 지방이지만 서울의 ‘넘사벽’ 유동성이 매매 가격에 반영됐다. 따라서 ‘비용과 증발’이라는 중력(重力)을 거스르지 못하는 전세 가격과 비교했을 때 ‘낮은 전세가율’을 보이는 것이다. 물론 두 곳 모두 전세가율 하락 후 집값이 하락 혹은 안정세로 전환됐다. 연 22%의 투기적 상승을 나타내던 제주는 다음 끓는점이 요원해 보인다. 그러나 ‘일자리 모멘텀’이 든든한 세종은 3생활권의 보람동, 소담동의 전세가율이 하반기 상승 반전하며 이미 안정세로 접어든 2생활권을 제치고 2020년의 끓는점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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