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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 세렝게티에서 보낸 4박 5일 신혼여행기 ②

눈만 돌리면 자연이 만든 드라마가…

  • 글 · 사진  =  조진혁 아레나 옴므 플러스 피처 에디터 radioplayer@naver.com

눈만 돌리면 자연이 만든 드라마가…

 게임 드라이브 도중 차를 세우고 초원을 밟고 있다.

게임 드라이브 도중 차를 세우고 초원을 밟고 있다.

동아프리카 탄자니아에 위치한 세렝게티로 신혼여행을 다녀왔다. 이색적인 신혼여행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세렝게티에서 허니문을 즐기는 한국인 부부도 점차 늘고 있다. 아프리카 야생 초원이라 고생할 것이라고 짐작하기 쉬우나, 세렝게티에는 로맨틱한 허니문을 위한 시설과 프로그램이 가득하다. 숙박시설과 음식의 수준은 유럽 특급 호텔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와이파이도 시원하게 터진다. 많이 걷거나 짐을 옮기느라 고생할 일도 없다. 여행객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될 만큼 편의시설이 완비돼 있다. 우리 부부는 세렝게티 서쪽에 자리한 싱기타 그루메티 리저브즈 사사콰 리조트에서 4박 5일간 머물렀다. 

세렝게티 초원은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에 나오는 영상과 똑같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편하다. 야생동물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고 다양하다. 1년 내내 먼지가 없고 지평선을 볼 수 있는 초원이라 아무리 먼 곳이라도 망원경만 있으면 어떤 동물인지 알아볼 정도다. 

세렝게티는 바다 곳곳에 솟아난 작은 섬처럼 언덕이 몇 개 있을 뿐, 산이라고 할 만한 흔적이 없다. 산으로 둘러싸인 대한민국에서 살다 끝없이 펼쳐진 대초원을 마주하면 경이로움을 느끼게 된다. 설악산 대청봉 정상에서 느끼는 후련함과는 다르다. 객실 테라스에 망원경이 설치돼 있어 여기저기 돌려가며 사자 등 야생동물을 찾는 것도 쏠쏠한 재미를 보장한다.  


세렝게티가 가장 아름다운 시간은

레인저가 게임 드라이브 차량을 몰며 동물에 대해 설명을 해 준다.

레인저가 게임 드라이브 차량을 몰며 동물에 대해 설명을 해 준다.

세렝게티는 도로가 따로 없고 초원 어디든 자유롭게 차로 달릴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없는 것처럼 보일 뿐 차량은 정해진 도로를 달려야 한다. 세렝게티에서 자동차는 왕복 2차선의 메인도로만 주행할 수 있다.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자 아스팔트가 아닌 흙길이며, 도로 양옆에 가드레일 대신 흙으로 둔덕을 만들어놓았다. 이곳의 차량은 주로 흙길에서도 거침없이 달리는 사륜구동이고, 이따금 오토바이도 눈에 띈다. 

세렝게티국립공원의 교통규칙은 도로 밖 초원을 침범하지 않는 것이지만, 우리 부부가 묵은 리조트는 사유지라 초원을 헤치며 달렸다. 길이 아닌 곳을 사파리용으로 개조한 도요타 랜드크루저가 휘젓고 다녔다. 



세렝게티 방문 전 알아둬야 할 것은 기후다. 연중 기후는 건기와 우기로 나뉘는데, 11월부터 2월까지는 건기에 해당한다. 건기에는 초원의 채도가 낮다. 우기 이후 푸릇푸릇하게 자란 풀들이 건기에는 희멀건 한 색으로 바뀐다. 세렝게티의 동물들은 싱싱한 풀과 함께 이동하기 때문에 푸른 초원은 항상 붐빈다. 반면 희멀건 한 초원에는 길 잃은 동물이나 먹잇감이 된 동물들의 흔적만 남아 있다. 맹수들 역시 먹잇감을 따라 이동한다. 누, 얼룩말, 기린 등 개체수가 많은 초식동물은 푸른 초원을 찾아 이동하고, 맹수들은 초식동물들을 쫓는다. 

건기가 절정에 달하는 11~12월은 세렝게티 역시 비수기다. 갈 곳 없는 동물들만 남아 있다. 가장 활력 넘치는 시기는 우기와 우기가 끝난 직후다. 빗속을 뛰어다니는 동물들과 물웅덩이에서 발버둥치는 누 떼의 드라마틱한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싱싱한 풀을 뜯으려는 누 떼의 대이동은 이 시기에 이뤄진다. 

3만 마리가량의 누 떼가 한 줄로 늘어서 이동하는데, 이 행렬에 얼룩말 등 세렝게티의 모든 동물이 묻어간다. 건기의 낮은 작열하는 태양으로 뜨겁고, 해가 없는 밤은 서늘하다. 우리나라 9월 말 날씨와 비슷해 긴팔 셔츠면 견딜 만하다. 우리 부부가 세렝게티를 방문한 것은 11월 말, 건기가 한창인 시기였다.


세렝게티를 즐기는 방법

세렝게티를 즐기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대표적으로 동틀 무렵 열기구를 타고 올라가 동물들을 내려다보는 프로그램이 있다. 새벽에 출발해 열기구에 탑승해야 하기에 아침잠이 많은 우리 부부에게 적합한 프로그램은 아니었다. ‘세렝게티 초원에 언제 또 와보겠나’ 하는 생각에 도전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허니문을 즐기러 온 신혼부부지, 내셔널지오그래픽 촬영팀이 아니었다. 그리고 경비행기를 타고 다니다 보면 세렝게티 초원을 지겹도록 내려다보게 된다. 과감히 열기구 프로그램은 패스했다. 

또 다른 이색 프로그램은 부시워킹이다. 초원을 걸어서 이동하는 프로그램으로, 야생동물이 언제 공격할지 모를 곳을 걷는 것만으로도 긴장되고 자연의 일부가 된 듯하다. 부시워킹 프로그램의 경우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총을 소지한 레인저가 함께한다. 하지만 객실 문 앞을 서성거리기만 해도 야생동물들을 충분히 만날 수 있다. 더 깊은 초원을 걷는 것은 당연히 좋은 경험이겠지만 요금이 발생하기에 또다시 과감히 포기했다. 우리가 선택한 것은 게임 드라이브였다. 세렝게티 리조트를 예약하면 기본으로 제공되는 프로그램이다. 

우리 부부를 전담한 11년 차 레인저 피터의 설명에 따르면 게임 드라이브는 사냥에서 비롯됐다.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사륜구동차량을 타고 초원을 돌아다니며 야생동물을 사냥했다. 영국 식민지였던 탄자니아는 영국 상류층의 고급 휴양지였고, 세렝게티는 사냥터였다. 그래서 영국식 문화와 사냥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다. 물론 현재는 야생동물 사냥과 포획은 불법이며, 게임 드라이브에는 총 대신 카메라를 들고 나간다. 

게임 드라이브는 3시간가량 진행되며 아침 6시 반부터 9시 반까지, 그리고 오후 4시 반부터 8시까지 하루 두 번 이뤄진다. 일출과 일몰 시간에 야생동물들이 활발하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동물들은 뜨거운 낮에는 그늘에 머물거나 잠만 잔다. 동물원에서 잠든 사자를 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반면 공기가 선선한 아침과 저녁시간에는 역동적인 야생동물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세렝게티 초원에서 맞이하는 일출과 일몰은 평생 잊지 못할 장관이기에 놓치지 말아야 한다.  


본격적인 사파리 체험

리조트에서 마련해준 식사. 항상 새로운 곳에 식사를 차려 세렝게티의 다양한 부분을 볼 수 있다.

리조트에서 마련해준 식사. 항상 새로운 곳에 식사를 차려 세렝게티의 다양한 부분을 볼 수 있다.

오전 게임 드라이브를 마치고 리조트에 복귀하면 근사한 아침식사가 기다리고 있다. 조식 테이블은 날마다 바뀐다. 새로운 장소에서 어제와 다른 메뉴를 먹으며 세렝게티의 풍광을 감상한다. 집사가 차려준 조식을 먹고 나면 점심식사를 언제 할지 예약한다. 프로그램이 없는 낮시간에는 리조트 내 기념품 숍에서 간단하게 쇼핑을 하거나 스파, 수영, 춤 등을 즐길 수 있다. 무엇을 하든 자유인데, 조심할 것은 원숭이와 숲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가젤이다. 쇼핑을 하고 나오는데 가젤이 숲에서 갑자기 튀어나와 깜짝 놀랐다. 이 또한 세렝게티이기에 가능한 경험이었다. 

우리의 첫 번째 사파리는 오후에 한 게임 드라이브였다. 카메라를 챙겨 사파리 차량에 탑승했다. 피터는 리조트를 빠져나가면서 게임 드라이브 도중에 유의해야 할 사항을 알려줬다. 사자 같은 맹수를 만나면 차에서 갑자기 일어나지 말라는 것이었다. 사자는 귀찮은 표정을 짓고 있지만 사실은 긴장된 상태라고 한다. 갑자기 일어나면 사자가 놀랄 수 있고, 그로 인해 차에 덤벼들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세렝게티는 포장도로가 없어 차량이 심하게 흔들린다. 차의 사방이 개방돼 있고, 심지어 앞 유리도 개방된 상태라 멀미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우리가 어린아이처럼 동물을 보면서 이름을 부르거나 감탄할 때마다 피터는 차를 세우고 시동을 껐다. 동물이 놀라 도망가지 않게 하려는 것. 마음껏 촬영할 때까지 기다려준다. 처음 본 동물은 기린. 리조트가 있는 언덕을 내려와 초원에 들어서니 기린이 나무 꼭대기의 잎사귀를 뜯고 있었다. 


세렝게티에서 가장 처음 만난 동물인 기린.

세렝게티에서 가장 처음 만난 동물인 기린.

동물원에서 본 기린과 야생의 기린은 달랐다. 기린은 무리를 지어 다녔고 높이 자란 나무를 먹어치우며 정원사 구실을 톡톡히 했다. 기린이 무리 지어 다니는 이유는 어린 새끼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 커다란 기린 사이에서 장난치는 새끼 기린들이 귀여웠다. 기린 무리는 보통 15마리 내외로 구성된다고 한다. 기린은 셔터를 눌러대는 우리를 멀뚱히 보더니 이내 자리를 옮겼다. 


가장 자주 보게 되는 동물인 누 떼.

가장 자주 보게 되는 동물인 누 떼.

넓은 초원에 도착하자 누 떼와 마주쳤다. 초원에서 누를 보는 것은 서울 탑골공원에서 비둘기를 발견하는 것보다 쉽다. 누 떼가 있는 곳에는 항상 얼룩말들이 있다. 얼룩말은 노래로 가족을 불러 모으는데, 그 소리가 꽤나 경박해 우스웠다. 

사파리의 백미는 사냥 모습과 사냥에 성공한 동물들이 벌이는 드라마였다. 광활한 초원에서 사냥 현장을 포착하려면 기술이 필요하다. 먼저 망원경을 들어 대머리 독수리가 선회하는 곳을 찾는다. 독수리는 사체를 먹는 습성을 지녀 이들이 있는 곳이 곧 사냥 현장이다. 대머리 독수리가 몰려 있는 곳에 도착하면 사체를 먹는 하이에나 무리를 발견하게 된다. 


사냥감을 놓치고 망연자실한 표정의 치타.

사냥감을 놓치고 망연자실한 표정의 치타.

운이 좋다면 식사 중인 사자 가족도 만날 수 있다. 엄마 사자가 사냥한 누를 어린 사자들이 먹는 광경을 봤는데, 아직도 뼈를 씹는 소리가 생생하게 귓가에 남아 있다. 혹은 나무 위에 식사를 걸어두고 배고플 때마다 조금씩 먹는 표범을 발견하기도 한다. 나무 위에 걸쳐진 얼룩말 머리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사냥에 실패한 치타의 우울한 뒷모습을 보는 것도 어렵지 않다.


생경하고 낯설지만 편안한

게임 드라이브 차량 쪽으로 다가온 코끼리.

게임 드라이브 차량 쪽으로 다가온 코끼리.

가장 인상 깊은 동물은 코끼리였다. 코끼리 20여 마리가 초원을 이동했다. 가장 나이 든 코끼리가 선두에 서고 가장 큰 코끼리가 후미에 서서 가족을 보호했다. 새끼 코끼리는 장난을 치면서도 어미 곁에 꼭 붙어 있었다. 거대한 덩치에도 코끼리들이 이동할 때는 쿵쿵 울리지 않았다. 발바닥이 부드럽기 때문이라고 한다. 코끼리들 앞에 차량을 세우자 수컷 코끼리 한 마리가 우리를 응시했다. 코끼리의 시선에 숨이 멎을 것 같았다. 코끼리는 우리를 한참 동안 쳐다보더니 이내 방향을 틀어 이동했다. 동물원에서 관찰자 입장에 있던 우리가 관찰 대상이 된 순간이었다. 

한창 초원을 휘젓고 다니는데 무전이 도착했다. 피터가 무전에 응답하고는 지금 표범을 보러 갈 것이라고 했다. 표범은 세렝게티의 빅5 가운데 하나다. 나머지는 코끼리, 코뿔소, 사자, 물소다. 표범은 혼자 활동하는 데다, 나무 위에 숨어 있는 경우가 많아 만나기 무척 어려운 동물이다. 

표범이 놀라지 않도록 천천히 소리를 줄이며 다가갔다. 큰 가지에 몸을 걸친 채 다리를 축 늘어뜨린 표범이 보였다. 한참을 쉬던 표범은 무언가를 발견한 듯 몸을 일으켜 세웠고 순식간에 나무에서 뛰어내렸다. 그 순간 인근 풀밭에서 애니메이션 영화 ‘라이온 킹’의 ‘품바’로 잘 알려진 아프리카 흑멧돼지가 도망갔다. 흑멧돼지는 품바처럼 짧은 다리를 총총 움직이며 달렸고 엉덩이가 씰룩거리는 모습이 무척 유쾌했다. 하지만 속도가 굉장히 빠르고 입 주변에 커다란 이빨이 솟아 있어 무척 위험한 동물이라고 한다. 마른 풀만 남은 초원에서는 아프리카 흑멧돼지가 자주 눈에 띈다. 

표범이 사라지자 해가 저물기 시작했다. 피터는 운전대를 꺾어 푸른 풀이 펼쳐진 드넓은 곳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누 떼와 얼룩말들이 무리로 이동하는 곳이었다. 오래된 나무 아래 차를 세웠다. 우리는 그제야 세렝게티 초원에 두 발을 딛고 설 수 있었다. 해는 초원 너머를 붉게 물들였고, 일렬로 이동하는 누 떼가 초원과 태양을 경계 지었다. 피터는 차량 보닛에 테이블보를 펴고 샴페인을 터뜨렸다. 해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샴페인을 마시며 노을을 감상했다. 피터는 세렝게티에선 매일 다른 모습의 노을을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노을에 반해 레인저가 됐다고 한다. 

4박 5일간 세렝게티에 머물면서 우리는 총 8번 게임 드라이브에 나섰다. 세렝게티는 매번 다른 모습을 연출했으며, 희귀한 동물을 발견하고 그들과 가까이에서 호흡하는 것은 경이로운 경험이었다. 사진에 다 담을 수 없는 광활한 대자연이 신비롭게만 느껴졌다. 우리가 맞닥뜨린 결혼만큼이나 생경하고 낯설지만, 이상한 편안함이 느껴졌다. 앞으로 우리의 결혼 생활도 이처럼 아름답고 편안할까. 세렝게티의 하늘은 신혼부부의 기대감으로 붉게 물들었다.






주간동아 2018.12.21 1169호 (p68~71)

글 · 사진  =  조진혁 아레나 옴므 플러스 피처 에디터 radioplay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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