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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낙관론이 경제를 망친다

반복되는 전망과 실제의 불일치…일본·유럽 함정 피해 현실 직시해야

낙관론이 경제를 망친다

낙관론이 경제를 망친다

7월 9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기자실에서 열린 ‘한국은행 수정경제전망 발표‘에 참석한 장민 한국은행 조사국장(왼쪽에서 두 번째)이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스톡데일 패러독스’라는 용어가 있다. 베트남 포로수용소에서 생존한 미국 제임스 스톡데일 장군의 증언에 따르면 수용소에서 장기간 수감생활을 견뎌내지 못한 사람은 오히려 낙관주의자들이었다. ‘올해는 풀려나겠지’ 하고 낙관적으로 생각하던 사람은 이러한 기대가 실현되지 못하는 상황이 매년 반복되자 좌절해 수용소에서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막연한 낙관주의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메시지다.
최근 수년 사이 주목할 만한 경향 하나는 국내외적으로 향후 경제를 실제 상황보다 낙관하는 분위기가 강하다는 점이다. 경제에 대한 예상을 나타내는 대표적 지표로 경제성장률 전망을 들 수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세계은행 등 국제기구가 주요 국가와 세계 경제 전체의 성장률을 예측해 주기적으로 발표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경제연구기관이 성장률 전망치를 제시한다.
그러나 경제성장률에 대한 각 기관의 전망치와 1년 후 실제로 집계된 경제성장률을 비교해보면 2011년 이후 전망치가 실제치보다 계속 높게 나타났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연구기관들이 다음 해 경제 상황을 실제보다 낙관했다는 뜻이다. 결국 전망했던 시점이 다가올수록 전망치를 계속 하향 조정하는 현상이 반복됐다. 예를 들어 지난해 주요 국제기구들이 예상한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은 3.8%였으나, 올해 상반기 수정 전망에서는 3.3%로 낮아졌으며 하반기에 새로 발표한 전망치는 3.0%까지 떨어졌다. 국내 경제 역시 지난해에 올해 경제성장률이 3.6%에 달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이제는 2%대 후반까지 낮아졌다.
전망이 이처럼 지속적으로 실제보다 높은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일반적으로 전망이 실제보다 낙관적인 것으로 나타나면 다음번에는 상향오차를 줄이고자 가급적 낮은 수치를 제시하곤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1990년대 이래 IMF의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와 실제치를 비교한 결과 3번 이상 같은 방향의 오차가 발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11년 이후 낙관론이 현실 호도

낙관론이 경제를 망친다
이처럼 전망이 같은 방향으로 계속 틀리는 데 대해 전망을 내놓은 기관은 예측하기 어려운 외부 충격 탓으로 그 원인을 돌리고 싶을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2010년대 들어 일본 대지진, 유럽 재정위기, 미국 재정절벽 우려, 글로벌 디플레이션 리스크, 중국 경제성장 저하 등 굵직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경제 흐름을 꺾는 구실을 했다. 국내적으로는 지난해 세월호 사태, 올해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확산이 소비 충격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이런 사건으로 전망 오류를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외부 충격의 영향은 일반적으로 단기에 그치며, 시간이 지나면 성장세가 더 높아지는 반등효과도 나타난다. 또 재정위기, 디플레이션, 중국 경제성장 저하 등은 경제 내적인 현상으로 전망기관들이 그 영향을 예측해 전망치에 미리 반영했어야 하는 부분이다.
전망이 계속 틀리는 중요한 이유는 각 전망기관이 경제의 구조적 변화를 인식하지 못했거나, 방향은 인식했더라도 변화 속도를 충분히 숙고하지 못했기 때문일 개연성이 높다. 세계 경제가 2000년대 중반 고성장을 이룬 것은 선진국 소비자들이 부채를 늘려 자신의 능력 이상으로 소비했고, 이 소비품을 중국 같은 개발도상국(개도국)들이 공급하는 과정에서 세계 교역과 제조업 생산이 크게 늘어난 덕분이었다. 그동안 충분히 활용되지 못했던 개도국의 노동인력이 교역을 통해 본격적으로 글로벌 생산에 참여했으며, 이 과정에서 생산성이 크게 높아지고 자본투자가 확대되면서 고성장이 가능했던 것이다.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불균형이 지속되기 어려워지면서 교역을 통한 제조업 성장은 멈췄고 세계 경제는 과거 같은 높은 생산성 증대와 자본 확충을 기록할 수 없게 됐다. 수출과 제조업을 중심으로 성장해온 우리 경제는 더 큰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경제 전망기관들에게는 아직도 세계 경제가 고성장 시기로 돌아갈 것이라는 기대가 남아 있는 듯하다. 최근 경제성장률 전망의 특징을 보면 장기 전망일수록 예상 성장률이 더 높다. 현재의 경기 부진을 경기순환적인 현상, 일시적 충격에 따른 현상으로 판단해 충격이 사라지면 과거의 높은 성장으로 돌아가리라 보는 것이다. 하지만 구조적 변화로 성장의 힘이 떨어졌다면 향후 국내외 경제는 2000년대 고성장기로 다시 돌아가지 못할 개연성이 높다.
낙관적 전망은 분명 장점도 지닌다. 일단 가계의 소비심리를 높여 수요를 확대하는 자기실현적 효과가 있다. 현재처럼 불안감이 큰 상황에서 부정적 전망은 소비를 더욱 위축해 경제를 어렵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전망이 계속 실제 경제와 어긋난다면 전망에 대한 믿음이 줄어든다. 이는 결국 경제정책에 대한 신뢰도와 약효를 떨어뜨린다.

단기 경기부양책에 매달린 일본의 착각

더욱 위험한 것은 낙관적 전망이 정책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는 점이다. 경기 부진이 일시적 현상이라면 확장정책을 써서 경기를 본궤도로 돌려놓는 대응이 필요하다. 그러나 부진이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현상이라면 단기 확장정책의 효과는 떨어지게 되고, 오히려 재정악화 같은 부작용을 키울 수 있다. 일본 장기 침체, 유로존 재정위기가 바로 낙관적 전망에 함정이 숨어 있던 대표적인 경우였다.
일본은 1990년 이후 장기 침체에 빠졌지만 이처럼 침체가 길어지리란 것을 오랜 기간 인식하지 못했다. 90년대 말까지도 일본 경제가 곧 회복될 것이라는 주요 경제수장의 발언이 계속됐다. 일본 정부가 매년 말 발표하는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실제보다 평균 1%p 이상 높았다(그래프 참조). 이러한 전망 속에서 일본 정부는 구조개혁을 통해 경제 체질을 개선하기보다 단기 경기부양책을 계속 사용해 성장세를 높임으로써 부실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되기를 기대했다. 결과는 금융 부실이 계속 일본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는 악순환이었다. 이로써 누적된 국가부채는 지금까지도 일본의 고질적인 병폐가 되고 있다.
유로존은 성장과 재정수지에 대한 낙관적 전망이 국가부채 누적으로 이어진 경우다. 경제학자들의 분석에 따르면 2000년대 이후 재정수지 전망치를 가장 높게 잡았던 국가는 그리스였고 포르투갈, 스페인 등 남유럽국가가 뒤를 이었다. 고성장에 대한 기대로 저축이 줄고 소비가 늘면서 경상수지가 악화됐으며 부동산 경기 상승으로 자본이 비생산적 부문에 집중돼 국가의 성장잠재력을 떨어뜨렸다는 것이다.  
우리 경제 역시 향후 장기적인 성장 활력이 저하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수출 부진으로 제조업 주도 성장이 멈추면서 과거처럼 빠른 생산성 상승을 이끌어내기가 어려워졌다. 중국의 추월, 유럽과 일본의 역습 등 세계 시장에서 경쟁 압력은 더욱 커질 것이다. 더욱이 내년을 정점으로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면서 노동 투입의 성장기여도도 빠르게 줄어들 전망이다. 우리 경제가 이미 2%대 성장기에 접어들었을 가능성이 커 보이는 이유다.
결국 한국 경제 역시 단기적 경기부양보다 장기적으로 성장능력을 높이는 처방전이 바람직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막연한 낙관주의보다 현실을 직시하고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는 작업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스톡데일 패러독스가 오늘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이다. 




주간동아 2015.12.02 1015호 (p52~53)

  •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gtlee@lger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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