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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자연이 준 기적의 물, 식초

“제주의 대자연 품은 발효식초, 만병통치약이나 마찬가지”

  • | 임재영 동아일보 기자 jy788@donga.com

“제주의 대자연 품은 발효식초, 만병통치약이나 마찬가지”

인터뷰 | 이영란 제주자연초 대표


이영란 제주자연초 대표는 전통주를 만들려다 식초의 매력에 빠져 직접 유기농 감귤농사까지 지으며 천연발효식초를 생산하고 있다. [사진 제공·이영란]

이영란 제주자연초 대표는 전통주를 만들려다 식초의 매력에 빠져 직접 유기농 감귤농사까지 지으며 천연발효식초를 생산하고 있다. [사진 제공·이영란]

새콤, 달콤하다. 뒷맛은 깔끔하다. 농업회사법인인 제주자연초에서 생산한 ‘제주청귤초’ 음료를 먹고 난 느낌은 상쾌했다. 운동이나 등산을 하면서 생긴 갈증을 해소하기에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액 식초인 ‘제주한라봉초’를 물에 희석해 맛을 봤다. 공장에서 대량생산하는 발효식초와 달리 텁텁함이 없었다. 풍미도 상당했다. 기자 개인의 주관적인 느낌이지만 평소 알던 식초와는 차원이 달랐다.


전통주 만들려다 발효식초에 푹 빠져

제주에서 자란 신선한 재료로 천연발효식초를 만든 주인공은 이영란(50) 제주자연초 대표. 전통주를 만들려다 식초의 매력에 빠졌고, 신선한 재료를 쓰고자 직접 유기농 감귤농사를 짓는 억척 인생을 살고 있다. 그의 목소리는 5월 제주 들판에 울려 퍼지는 섬휘파람새처럼 맑고 명료했고 거침이 없었다. 제주시 아라동 제주대에 있는 제주테크노파크 바이오융합센터 제주자연초 사무실에서 천연발효식초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어떻게 천연발효식초를 만들게 됐나. 

“2004년 서울에서 제주로 이주했다. 특히 초겨울이면 섬 전체를 물들이는 감귤의 고운 자태에 매료됐다. 이 맛있는 감귤로 감귤와인을 만들어볼까 싶어 전국 와인제조장을 찾아다니다 전통주에 ‘필’이 꽂혔다. 전국 유명 전통주 명인을 찾아가 사사를 했다. 처음에는 꺼리던 명인들이 나의 끈질김에 못 이겨 비법을 전수해줬는데 이게 술이 안 되고 초(醋)가 됐다. 한창 잘되는 일을 방해하거나 잘못되도록 한다는 뜻의 ‘초 치다’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웃음) 술 만드는 일에 지쳐갈 즈음 아예 식초를 만들자는 생각이 들었다. 항아리 한두 개에 식초를 만들어 지인들에게 나눠줬다. 주변에서 ‘그러지 말고 천연발효식초를 만들어 팔아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인생의 터닝포인트였다.” 

회사를 설립하고 제품을 판매하기까지 굴곡이 많았을 텐데. 

“2014년 사단법인 한국여성벤처협회에서 선도벤처연계 창업지원사업 공모를 했다. 제주산 귤로 천연발효식초를 만들겠다는 아이디어를 냈는데 300여 개 아이디어 가운데 당당히 뽑혔다. 과제비로 1억 원을 받은 것이 사업화의 시초였다. 그해 복합발효식초 제조방법 특허출원을 했고 11월 ‘제주자연초’ 회사를 설립했다. 개인사업자로 했다 규모가 커지자 법인등록을 했다. 2015년 식초에 쓸 귤을 따러 밭떼기로 사들인 과수원에 갔는데 옆 과수원에서 마침 농약을 쳤다. 바람을 타고 농약이 날려올 수 있는 상황이었다. 농약이 묻은 귤을 쓰면 안 되기에 급히 검사를 의뢰했다. 다행히 농약은 검출되지 않았지만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귤은 노란빛이 감돌았다. 이듬해 아예 과수원 6600㎡를 임대해 무농약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비가 큰 걱정이었다. 비가 오고 나면 잡초가 무서운 속도로 자랐다. 첫해는 거름도 없이 풀만 벴다. 그래도 귤맛이 그 나름 괜찮아 맛있는 식초의 원료가 됐다. 식초를 만들면서 생긴 술지게미는 훌륭한 거름이 된다. 자원순환형 과수원이 됐다.”


엄선된 제주산 귤로 발효

[임재영 기자]

[임재영 기자]

직접 농사까지 짓기 시작하면서 네일아트로 멋을 부리던 손가락은 갈라지고 휘어졌다. 퇴행성관절염이 왔다. 몸에 좋은 식초를 만들어 주변 사람들의 건강을 챙겼지만 정작 본인은 무수리처럼 일했다.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점차 주문이 밀려들었다. 백화점은 물론이고 입소문이 나면서 서울 강남 등지 부유층의 수요가 많아졌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유명 의사 가족은 정기적으로 제주자연초 제품을 주문하고, 선물용으로 택배를 요청했다.
 
제주자연초가 생산하는 제품은 귤을 베이스로 한다. 영귤초, 청귤초, 하귤초, 한라봉초 등이 기본이고, 채취 시기가 짧아 더욱 귀한 귤꽃 꿀을 함유한 한라봉초버몬트, 영귤초버몬트도 있다. 500㎖, 120㎖ 등으로 구성한 선물용 세트도 판매한다. 영귤은 1980년대 일본에서 도입한 종으로, ‘신선이 살 만한 곳’이라는 뜻의 제주 옛 지명 ‘영주(瀛洲)’에서 이름을 따왔다. 청귤(또는 풋귤)은 익기 전 녹색을 띠는 온주밀감이다. 영귤, 청귤은 모두 신맛이 강해 식초로 담그기 제격이다. ‘제주의 자몽’이라 부르는 하귤은 여름에 익는 귤이고, 하우스에서 재배하는 한라봉은 향기와 맛이 독특한 특징을 갖고 있다. 



제주산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나. 

“제주는 화산섬으로 육지와는 다른 토양이다. 미생물의 보고(寶庫)로 불릴 만큼 눈에 보이지 않는 유익균이 많다. 자연환경이 깨끗해 발효 과정에 신선한 공기가 들어간다. 농민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에 풍작을 이룬 농산물을 먼저 쓴다. 풍년이 들면 산지 폐기를 할 만큼 판로에 어려움을 겪는다. 대량으로 구매해 농민의 시름을 다소나마 덜어주고 싶다. 풍년일 때는 당도가 높아 맛있는 식초가 된다. 2015년 냉해를 입어 폐기처분할 예정이던 한라봉을 사들여 식초를 만들기도 했다. 와인처럼 천연발효식초에도 ‘빈티지(vintage)’ 개념이 있다. 풍년이 든 과일이나 작물로 만든 천연발효식초는 다른 해에 제조한 식초와 풍미가 다를 수 있다.” 

귤 외에 어떤 농작물로 식초를 만들고 있나. 

“농산물이나 자연에서 난 재료는 모두 천연발효식초로 만들 수 있다. 제주산 블루베리와 키위로 식초 제품을 만들어 판매 중이다. 최근에는 빨간 무로 불리는 비트로 식초를 제조하고 있다. 메밀이나 울금도 훌륭한 식초 재료가 된다. 물론 제주에서 생산하는 작물을 쓴다는 것이 기본이다.”


발효할 때 자식처럼 대화하며 애정 쏟아

과일, 곡물마다 당도가 다르기 때문에 이영란 제주자연초 대표는 발효과정에서 직접 당도보정을 하고, 식초 발효 시 외부 공기를 유입하는 게르마늄 함량이 높은 항아리를 사용한다. [임재영 기자, 사진 제공·이영란]

과일, 곡물마다 당도가 다르기 때문에 이영란 제주자연초 대표는 발효과정에서 직접 당도보정을 하고, 식초 발효 시 외부 공기를 유입하는 게르마늄 함량이 높은 항아리를 사용한다. [임재영 기자, 사진 제공·이영란]

당근식초 제조기술로 특허를 신청했는데…. 

“2015년 당근이 풍년이 들면서 가격이 폭락했다. 산지에서 당근을 그대로 폐기하는 등 농민들이 고초를 겪었다. 당근으로 천연발효식초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들어 바로 행동에 옮겼다. 과정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당근을 갈아 발효시키면 겔처럼 엉겨 붙으면서 그대로 썩었다. 이러저런 시도 끝에 제주 전통주인 오메기술을 만드는 데 필요한 좁쌀 종류인 차조 맥아즙을 쓰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를 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지난해 특허를 취득했다. 이어 벌꿀을 이용한 발효식초 제조방법도 특허를 취득해 회사의 기술력은 한층 높아졌다.” 

식초는 크게 합성식초와 양조식초로 나뉘는데, 합성식초는 빙초산처럼 에틸알코올(에탄올)과 석유 정제물을 섞어 인공적으로 신맛을 내는 제품이다. 양조식초는 곡물이나 과일을 주 재료로 한다. 양조식초를 다시 주정식초와 천연발효식초로 구분하는데, 주정식초는 알코올에 초산균을 넣어 2~3일 만에 발효시켜 대량으로 생산한다. 주정식초는 조미료 및 살균 기능은 있지만 영양소는 거의 없다. 천연발효식초는 자연발효를 거쳐 오래 숙성시킨 것으로 유효성분 함량이 높고 다량의 유기산을 함유하고 있다. 

천연발효식초는 일반적으로 과일이나 곡물에 효모를 넣어 술을 만들고, 이 술이 초산발효를 일으켜 식초가 되는 것이다. 먼저 깨끗하게 씻은 재료를 썰거나 잘게 간 뒤 당을 첨가해 효모를 넣으면 술이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술을 뚜껑을 열어 벌레가 들어가지 않도록 망이나 천으로 잘 막은 뒤 상온에 놔두면 공기 중 초산균과 결합하면서 식초가 되는 원리다. 

천연발효식초를 만드는 데 발효 과정이 중요한 것으로 안다. 특유의 발효기법이 있나. 

“당연히 자연발효를 하고 있다. 메주를 띄우는 온돌처럼 25도 이상의 온도, 신선한 공기, 적당한 습도가 필요하다. 천연발효식초를 만드는 데 짧게는 100일에서 길게는 1년이 걸린다. 임대한 감귤과수원에 창고가 있다. 이곳에서 발효 과정을 거친다. 과일마다, 곡물마다 당도가 다르기 때문에 작업을 시작할 때 먼저 당도 보정을 한다. 이때 당도를 높이는 가당제가 필요하다. 재료에 따라 가당제가 다르다. 청귤초에는 설탕을 쓰고, 한라봉초에는 차조 맥아즙을 풀어놓는다. 효모가 신나게 가당제를 먹고 있을 때 어느 선에서 중단하느냐가 중요하다. 달고 시면서 톡톡 쏘는 맛을 내는 술이 됐을 때 초산발효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발효할 때 게르마늄 함량이 높은 항아리를 쓴다. 발효되면서 외부와 소통하는 ‘숨’을 쉬어야 더 좋은 식초가 되기 때문이다. 제주옹기처럼 숨을 잘 쉬는 항아리에 발효식초를 오래 저장하면 수분이 점차 사라져 ‘발사믹 식초’처럼 찐득찐득해진다. 제주옹기를 쓰고 싶은데 80ℓ, 150ℓ 등 대형 크기를 구하기가 어렵다. 자식처럼, 어린이처럼 발효하는 항아리를 자주 들여다보면서 대화해야 한다. 얼마나 자주 보고, 말하느냐에 따라 식초 모습은 달라진다. 발효할 때 ‘뽀글뽀글’하면서 기포가 올라올 때는 아이가 재잘거리는 소리처럼 즐겁다.” 

제주자연초에서 만든 천연발효식초는 어디에 좋은가. 

“청귤이나 영귤은 항산화성분이 많지만 신맛이 상당히 강하기 때문에 발효시키지 않으면 먹기 힘들다. 특히 천연발효식초의 장점은 흡수율이 높다는 것이다. 생콩 흡수율은 10% 미만이지만 삶거나 두부를 만들면 흡수율이 높아지고 된장으로 바뀌면 영양이 더욱 풍부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천연발효식초는 칼슘 흡수와 나트륨 배출을 돕는다. 야식으로 라면이나 매운 치킨을 먹고 천연발효식초를 마시면 다음 날 부기가 사라진다. 당뇨를 예방하고 혈압을 낮춘다. 소화에도 도움을 주고 운동으로 생긴 피로물질인 젖산을 분해하는 데 최고다. 천연발효식초가 다이어트식품으로도 애용되고 있는데, 노인들에게는 식욕을 촉진해준다. 골다공증이 우려되는 노인에게 칼슘을 제공하는 효과도 있다. 술 마신 다음 날 숙취 해소에 좋고, 벌꿀과 한라봉초로 만든 ‘제주한라봉초버몬트’를 술과 섞어 차게 마시면 숙취가 덜한 훌륭한 칵테일이 된다. 이야기하다 보니 천연발효식초가 거의 만병통치약처럼 됐네.(웃음)”


“천연발효식초 제조비법 전수하고 싶어”

인류사에서 식초는 가장 오래된 발효식품이다. 기원전 5000년부터 바빌론 사람들이 방부제나 조미료로 사용했으며, 식초 효능과 성분 등에 관한 연구로 4번의 노벨상이 수여된 것으로 알려졌다. 발효 과정에서 형성된 60여 종의 유기산이 항산화작용으로 활성산소를 제거해 노화 방지, 혈액순환, 면역력 증진에 도움을 준다. 필수아미노산, 비타민, 미네랄 등도 함유하고 있다. 

제주자연초의 천연발효식초는 어떻게 섭취해야 가장 효과적인가. 

“한라봉초, 청귤초, 하귤초 등을 맛있게 먹으려면 원액초 15㎖(소주잔의 3분의 1)를 시원한 물에 희석해 마시면 된다. 신맛 등으로 원액초를 그대로 먹기가 부담스럽다면 꿀 등에 타서 마셔도 좋다. 변비나 장으로 고생하는 사람은 무지방우유와 혼합한 뒤 공복에 마시면 효과를 볼 수 있고, 탄산수나 과즙주스에 섞어 음용해도 된다. 샐러드를 만들 때 발사믹 식초 대신 사용해도 맛있다. 특히 귤꽃 꿀을 함유한 버몬트 시리즈는 차갑게 마실수록 목 넘김이 좋다. 몸에 유익한 성분을 가능한 한 많이 전달하고자 거르는 작업을 최소화했기에 병 밑에 침전물이 생길 수 있는데, 잘 흔들어 섭취하면 된다. 옛말에 ‘초의 맑은 윗물은 시누님 드리고 탁한 아랫물은 내가 마신다’고 했듯이, 침전물에 유효 성분이 많다. 똑같은 성분을 함유한 주정식초와 달리 천연발효식초는 성분 구성이 다채롭고 다양한 만큼 섭취하는 사람에 따라 효과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앞으로 계획은. 

“그동안 천연발효식초 제조기술을 어느 정도 확립했다. 총산도가 4도 이상이면 상품으로 판매가 가능한데 5도 이상으로 높였다. 노동 강도가 세 직원들이 견디기 힘들어하지만 고품질로 소문나면서 매출도 높아지기 시작했다. 제품 개발도 완숙 단계에 접어들었다. 각종 박람회에서 호평을 받았다. 이제 본격적으로 소비자를 만나고 싶다. 천연발효식초를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달라는 요청이 많이 온다. 올해 가을쯤 천연발효식초를 직접 만들며 체험하는 공방을 열 계획이다. 가정마다 감귤식초를 한두 항아리 담그고, 고향을 찾은 자녀에게 참기름과 함께 감귤식초를 건네는 따뜻한 그림을 상상하고 있다. 전원주택 장독대, 아파트 베란다에서 천연발효식초를 만들며 가정마다 비법을 전수할 수도 있다. 전북 순창 고추장마을처럼 감귤이 많이 나는 마을을 감귤초마을로 조성해 관광객과 시민이 즐겨 찾는 명소로 만들고 싶다.”






주간동아 2018.05.30 1140호 (p10~13)

| 임재영 동아일보 기자 jy78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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