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나미 스토리연구소 외관.
모나미가 지난해 12월 8일 자사 페이스북에 모나미 스토리연구소를 열었다는 소식을 올리자 한 누리꾼이 쓴 댓글이다. 그 밑에는 ‘헐 대박’ ‘펜부심이 폭발한다’ ‘이건 꼭 가야 해’ ‘용인인데 멀어도 가야 하는 부분’ 같은 댓글이 줄을 이었다.
대체 뭐가 이들의 기분을 좋게 하고, 펜부심(펜+자부심)을 폭발시켰으며, 경기 용인시까지 먼 길을 행차하고 싶게 만든 걸까. 기자는 평소 세상에 같은 펜은 없고 검은색 펜도 다 필기감이 다르다며 사 모으기에 바쁜 ‘펜팬’. 그런 기자의 눈을 번쩍이게 한 것은 ‘모나미 스토리연구소에서는 다양한 컬러를 조합해 세상에 하나뿐인 나만의 잉크를 만들 수 있다’는 대목이었다. ‘펜 덕후’나 ‘문구 덕후’라면 몸이 들썩일 만한 소식이었을 것이다.
물감으로 시작해 만년필까지

모나미가 출시한 다양한 제품을 만날 수 있는 모나미 스토리연구소.
1960년 창립 이래 지금까지 국내 문구업계를 주름잡아온 모나미는 최근 볼펜의 고급화 전략과 마커의 다양화 전략을 수립하고 공격적인 마케팅을 하고 있다. 지난해에만 전 세계에 마커를 1억 개 이상 팔았다. 도자기에 그릴 수 있는 것부터 타일과 패브릭에 그릴 수 있는 것까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물체 표면에 사용 가능한 다양한 종류의 마커를 생산한다. 2만 원 가까이 하는 볼펜을 내놓으며 ‘럭셔리한 볼펜’ 라인업도 세웠다.
모나미는 조만간 만년필도 출시할 계획이다. 모나미 스토리연구소 ‘잉크랩(ink Lab)’에서 잉크 DIY(Do It Yourself) 클래스를 여는 것도 이후 만년필 판매를 위한 포석은 아닐까. 나만의 잉크 컬러를 만드는 비용은 2만5000원. 과연 누가 저 돈을 주고 용인까지 가서 잉크를 만들까 궁금해졌다.

잉크랩에서는 여러 컬러를 조합해 나만의 잉크를 만들 수 있다.

직원이 잉크를 만들 때 주의사항을 설명하고 있다.(왼쪽) 직접 만든 잉크 컬러를 테스트해보고 있다.
평생 쓰는 나만의 컬러

완성된 잉크 컬러는 잉크랩에 등록돼 언제든 재구매할 수 있다.(왼쪽) 잉크를 포장하는 동안 둘러본 제품존과 DIY로 만드는 153 볼펜.
이리저리 조합해보다 처음 만든 색이 마음에 들어 곧바로 결정했다. 홍보팀 관계자는 “보통 45분 동안 색을 조합하다가도 시간이 부족하다며 아쉬워하는 사람이 많다. 그에 비하면 정말 빨리 만든 편”이라고 했다. 이곳에서 완성한 잉크에는 고유한 이름을 붙일 수 있다. 친구가 즐겨 쓰는 닉네임을 잉크 이름으로 정했다. 이날 만든 컬러 레시피는 잉크랩에 등록돼 언제든지 같은 색을 재구매할 수 있다. 재구매 비용은 택배비를 포함해 1만2000원. 직원이 “필기체로 잉크 이름을 쓸 건데 영어가 더 예쁘다”고 권유해 ‘Green herb’라고 지었다. 이렇게 이 세상에 처음으로 ‘Green herb’ 잉크가 탄생했다.

완성된 잉크.
잉크를 포장하는 동안 매장을 둘러봤다. 제품존을 구경하다 보니 무언가 사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모나미의 고급 펜부터 라이프스타일 소품, 디자인 팬시까지 이색적이고 독특한 상품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출시 당시 선풍적 인기를 끈 DIY 펜 키트 외에도 2018년 개의 해를 맞아 새롭게 나온 퍼피 153 시리즈를 팔고 있었다. 볼펜을 구매하고 즉석에서 레이저 각인을 받을 수도 있었다. 볼펜에 이름이 새겨지는 장면을 스마트폰 영상으로 찍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잉크와 함께 선물할 요량으로 만년필은 없는지 물었다. 매장에 있는 만년필은 2016년 출시한 3000원대의 올리카(OLIKA)뿐이었다. 모나미 관계자는 “새로운 만년필은 2월 출시될 예정이다. 많은 분이 라미 만년필과 비교하는데, 그 제품을 염두에 두고 만들지는 않았다. 가격대는 비싸지 않을 것이고 모나미의 시그니처인 육각형 보디 디자인을 차용한 제품”이라고 말했다.
커플이 서로 잉크 만들어주기도

모나미 스토리연구소 잉크랩에서는 제품을 활용한 수업도 진행된다.
일본 여행을 자주 가는 지인은 모나미 잉크랩이 도쿄 구라마에의 문구점 가키모리 별관에 위치한 ‘잉크 스탠드(Ink stand)’와 비슷한 느낌이라고 했다. 잉크 스탠드도 잉크를 섞어 나만의 잉크 컬러를 만드는 ‘잉금술’(잉크+연금술)을 즐길 수 있는 곳이라 문구 마니아의 성지로 불린다. 이곳의 체험 가격은 병당 2500엔으로 잉크랩과 비슷한 수준이다. 빨, 파, 검이라는 기본 컬러의 잉크에 질렸거나 이 컬러 하면 내가 떠오르는 시그니처 컬러를 갖고 싶다면 해볼 만한 체험이다. 흰색이나 금색, 은색 빼고는 다 만들 수 있다. 캘리그래피를 좋아하거나 다양한 컬러의 잉크를 모으는 사람이라면 만족도가 높겠다. 그러나 펜은 그저 글씨를 종이에 적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면 153 볼펜이나 플러스펜을 쓰는 게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비)가 더 낫다고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진성 펜 덕후라면 알겠지. 펜과 잉크는 쓰는 재미도 있지만 모으는 재미도 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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