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한석 서울대병원 신생아중환자실장.
‘주간동아’ 1119호에 실린 김한석 서울대병원 어린이병원 신생아중환자실장(소아청소년과 교수)의 인터뷰 기사 아래 달린 한 댓글이다. 읽는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김 교수가 우려했던 일이다. 그는 ‘신생아중환자실(NICU·Neonatal Intensive Care Unit)의 기적’에 대해 묻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예전 같으면 목숨을 잃었을 미숙아와 신생아중환자 중 상당수가 NICU에서 새로운 삶을 얻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서울대병원 NICU의 경우 임신 24주 안팎에 태어난 미숙아 생존율이 80%가 넘습니다. 출생 당시 체중이 370g에 불과하던 아기가 건강을 회복해 퇴원한 사례도 있죠. 의료기술 면에서 볼 때 우리나라는 이제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수준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이런 성공 사례를 알리는 게 과연 잘하는 일 일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해요. NICU 이야기가 늘 ‘해피엔딩’은 아니니까요.”
김 교수와 인터뷰를 2회에 걸쳐 소개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가 여기 있다. ‘주간동아’는 1119호에서 김 교수의 입을 통해 우리나라 NICU 운영 시스템의 문제를 지적했다. 이번엔 아이가 NICU를 벗어난 뒤 맞이하게 되는 현실을 살펴본다.
미숙아 부모가 24시간 당직 간호사 되는 현실
![미숙아를 살려내는 데는 많은 의료진의 헌신적 노력이 필요하다. [조영철 기자]](https://dimg.donga.com/ugc/CDB/WEEKLY/Article/5a/4a/ef/85/5a4aef8520d9d2738de6.jpg)
미숙아를 살려내는 데는 많은 의료진의 헌신적 노력이 필요하다. [조영철 기자]
예를 들어 폐는 보통 임신 말기에 완성된다. 임신 37주 전 태어나는 미숙아는 자가 호흡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계면활성제를 이용해 신생아의 폐포(공기주머니)를 확장하는 기술이 개발되면서 생존 확률이 크게 높아졌지만 이 역시 완전한 건 아니다. 아이의 기도를 뚫은 뒤 관을 넣고 인공호흡기를 달아 숨 쉬도록 하는 치료 방법도 널리 쓰인다. 이렇게 생명을 얻은 아이 중 일부는 영원히 인공호흡기를 떼지 못한다.
“1년에 500명이 NICU에 입원한다면 그중 2명 정도는 인공호흡기를 단 채 퇴원합니다. 이후 더 성장해 자가 호흡을 하는 사례가 없지 않지만, 평생 인공호흡기를 통해 숨 쉬는 경우도 분명히 있죠.”
그러니 댓글의 뒷부분 ‘억지로 살려 장애인 자꾸 만든다’는 얘기도 어느 정도 사실일 수 있다. 바로 여기에 김 교수의 고민이 있다. 2017년 NICU 밖의 대한민국은 장애를 가진 아이와 그 가족이 살아가기엔 결코 아름답지 않기 때문이다.
“인공호흡기 관련 비용이 국민건강보험 적용을 받게 된 게 얼마 전부터예요. 그동안은 미숙아 가족이 막대한 비용을 전액 부담해야 했죠. 지금도 미숙아가 건강하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각종 영양제 투여비, 재활치료비 등은 부모 몫으로 남아 있습니다.”
아픈 아이를 돌보는 일도 가족이 도맡는다. 김 교수에 따르면 인공호흡기를 단 아이는 집중적인 돌봄 대상이다. 외부에서 주입되는 공기와 아이의 호흡 주기가 엇갈리면 위험해질 수 있어 말 그대로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다. 이런 아이가 퇴원하면 대개는 아이 엄마가 24시간 365일 ‘당직 간호사’가 된다. 마음 편히 밥을 먹지도, 잠을 자지도 못 한 채 아이 곁을 지킨다는 뜻이다. 그 시간이 몇 주, 몇 달, 몇 년간 이어진다. 아픈 아이를 낳은 슬픔에 고된 일상과 경제적 부담까지 짊어진 가족은 그만 지치고 만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는 주위 사람들은 ‘왜 굳이 미숙아를 살려 저렇게 고생하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 인식을 가진 분이 적잖은 것 같아요. NICU 환자 보호자 중에는 ‘아이가 장애인이 될 확률이 10%라도 있으면 살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하는 분도 있죠. 보호자가 그런 말씀을 하는 게 쉽지 않으리라는 걸 아니까, 의료진도 참 고통스럽습니다. 우리가 아이를 살리려고 노력하는 건 그저 살게만 하려는 게 아니잖아요. 아이도, 그 가족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어야 하는데 우리 사회에는 그걸 도와줄 시스템이 전혀 없어요.”
심지어 김 교수는 “의료진이 평생 치료받으며 살게 될 아이를 살리는 바람에 가족뿐 아니라 국민건강보험 재정에도 부담을 준 것 아니냐”는 얘기도 들었다고 했다. 한쪽에서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살릴 가치 있는 아이’와 ‘살리지 말아야 할 아이’를 구별하는 게 현실이다. 20여 년 동안 줄곧 신생아중환자만 치료해온, 갓 태어난 아기들의 가녀린 생명 끈을 수없이 붙들었고, 그렇게 살려낸 아이의 성장기 또한 묵묵히 지켜봐 온 의사는 그 이야기를 하다 긴 한숨을 내쉬었다.
‘생존’을 넘어 ‘삶’으로
![미숙아와 신생아중환자가 집중치료를 받는 서울대병원 NICU. [조영철 기자]](https://dimg.donga.com/ugc/CDB/WEEKLY/Article/5a/4a/ef/ba/5a4aefba0904d2738de6.jpg)
미숙아와 신생아중환자가 집중치료를 받는 서울대병원 NICU. [조영철 기자]
“최근 신생아 수는 급격히 줄어드는 반면, 미숙아는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엄마 아빠 나이가 많을수록 미숙아 출생률이 높은데, 최근 부모의 고령화 현상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거든요.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지난 몇 년 동안 NICU 시설을 늘리고 관련 지원을 확대했습니다. 이것도 필요하죠.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에요. 신생아 치료의 패러다임을 바꿔 귀한 생명을 살려낼 뿐 아니라 잘 돌보고, 그들이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까지 책임지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합니다.”
김 교수는 이것을 우리나라가 반드시 갖춰야 할 기본 사회안전망이라고 봤다. 그는 “NICU에서 퇴원한 아이와 그 가족이 좀 더 행복해질 수 있도록 돕는 건 의사로서 내가 해야 할 ‘애프터서비스’이기도 하다”며 “서울대병원 어린이병원에서부터 이들을 위한 지원 프로그램을 마련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주간동아 1120호 (p31~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