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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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1400년 ‘피의 역사’ 재현되나

수니파 맹주 사우디의 예멘 내전 개입 … 시아파 반군 지원하는 이란과 격돌 불가피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15-04-03 17: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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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슬람 수니파 맹주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신앙과 안보를 위해 칼을 빼들고 예멘 내전사태에 개입하고자 본격적으로 나섰다. 예멘 내전사태는 시아파인 후티 반군의 봉기에서 비롯됐다. 예멘 북부 지역에서 활동해온 후티 반군은 1월 수도 사나를 장악한 데 이어, 2월 수니파 출신 압드라보 만수르 하디 대통령을 축출하고 혁명위원회를 설치한 뒤 예멘을 통치한다고 선언했다. 정권을 빼앗긴 하디 대통령은 남부 지역으로 피신해 제2 도시 아덴을 중심으로 지지 세력을 규합하고 민병대를 조직해 후티 반군에 맞서 싸웠다.

    유엔과 사우디 등 아랍국들은 하디 대통령을 예멘의 유일한 합법적 대통령으로 인정했다. 이에 후티 반군은 남부 지역까지 세력을 확장하면서 아덴까지 공격했다. 아덴이 점령될 위기에 처하자 하디 대통령은 3월 24일 유엔을 비롯해 국제사회에 지원을 호소했고, 사우디 등 아랍국들에 군사 개입을 요청했다. 하디 대통령은 보트를 타고 탈출해 오만을 거쳐 사우디 수도 리야드로 피신했다.

    사우디 지상군 23만 중 15만 투입

    예멘 전체 인구 2600만여 명 가운데 시아파는 47%이고, 수니파는 53%이다. 후티 반군은 1992년 북서부 사다 주에서 ‘청년신도(BY)’란 이름으로 시아파 분파인 자이드파의 부흥을 위해 시작한 청년운동단체다. 이 단체는 후세인 알후티가 주도했다고 해서 후티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예멘 정부의 강력한 탄압을 받은 후티는 2011년 아랍의 봄을 맞아 독재자인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이 퇴진하자 북부 지역을 무력으로 장악했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시아파 종주국 이란과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의 지원을 받아왔다. 병력은 10만 명에 달한다.

    후티 반군이 정권을 쉽게 장악한 것은 축출된 살레 전 대통령이 배후에서 지원했기 때문이다. 살레 전 대통령은 후티와 같은 시아파 분파인 자이디파다. 예멘 정부군과 경찰 조직에 여전히 살레 전 대통령 추종세력이 남아 있고, 후티 반군이 사나를 점령할 때도 정부군의 저항은 거의 없었다. 특히 이란은 후티와 항공협약을 맺고 하디 대통령을 전 대통령으로 부르는 등 사실상 후티를 예멘의 새로운 정부로 인정하는 조치를 취했다. 심지어 이란은 수송기를 통해 각종 무기는 물론 군사자문관까지 지원했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사우디는 3월 26일부터 ‘아시파트 알하즘(단호한 폭풍)’이란 군사작전에 따라 전투기 100여 대를 동원해 사나를 비롯해 후티 반군이 장악한 주요 시설과 군 기지 등을 연일 공습하고 있다. 사우디는 또 예멘과의 국경에 지상군 병력 15만 명을 포진시키는 등 직접 공격할 준비를 갖췄다. 사우디의 지상군 전체 병력은 23만 명. 이 가운데 15만 명을 투입한다는 건 사우디가 예멘 내전사태를 자국의 국가안보 위기로 보고 있다는 뜻이다. 사우디의 군사작전에 아랍국과 수니파 국가도 대거 동참했다. 아랍에미리트, 바레인, 쿠웨이트, 카타르, 요르단 등이 전투기 87대를 지원하고 있고, 이집트와 수단 등이 지상군 파병을 고려 중이다.

    사우디가 일찌감치 군사행동에 나서지 못한 것은 1월 23일 압둘라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국왕이 타계하면서 국내의 정치적 안정이 무엇보다 중요했기 때문이다. 압둘라 전 국왕을 승계한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79) 신임 국왕은 국내 정국을 수습하자마자 예멘 내전사태를 가장 중요한 과제로 보고 해결 방안을 모색해왔다. 고령인 살만 국왕은 이를 위해 자신의 아들이자 국방부 장관인 무함마드 빈 살만 알 사우드 왕자에게 예멘 내전사태 해결을 지시했다. 30세로 군 경험이 전혀 없는 무함마드 장관은 3월 21일 리야드에서 걸프협력회의(GCC) 주요 지도자들과 비밀 회동을 갖고 군사개입을 결정했다.

    사우디가 무력 동원에 나선 이유는 이란의 영향력이 자국과 국경을 맞댄 예멘까지 확대되는 것을 묵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란은 그동안 시아파가 정권을 잡고 있는 이라크에서 빠른 속도로 세를 늘려왔다.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이라크에서 준동하자 이란은 IS 소탕작전을 지원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이라크에 군 병력을 보내기도 했다. 시아파 독재자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이 통치하는 시리아에도 이란은 군 병력과 각종 물자를 지원해왔다. 이란은 또 헤즈볼라와 오랜 기간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이란의 의도는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와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 이어 예멘 수도 사나에 이르는 이른바 ‘시아파 벨트’를 구축하려는 것이다. 중동 지역에 ‘시아파 제국’을 만들어 옛 페르시아 제국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야심이라고도 할 수 있다.

    ‘시아파 제국’을 저지하라

    수니파와 시아파는 지난 1400여 년간 대립해왔다. 두 종파의 갈등과 분쟁은 칼리프제 때문에 비롯됐다. 칼리프는 이슬람 창시자이자 예언자인 무함마드의 대리인을 뜻하는 말로, 무함마드의 종교·정치적 권한을 이어받아 이슬람 공동체를 다스린 최고통치자다. 그러나 무함마드가 632년 후계자를 남기지 않고 세상을 떠났고, 이후 이슬람은 후계자 선정을 놓고 수니파와 시아파로 분열했다. 시아파는 무함마드의 사촌이자 사위인 알리가 당연히 칼리프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슈라(원로회의)에서는 만장일치로 아부바크르(재위 632~634년)를 초대 칼리프로 선출했다.

    2대와 3대 칼리프를 거쳐 알리(재위 656~661년)가 4대 칼리프로 등극했지만 수니파와 시아파는 끊임없이 권력투쟁을 했다. 그러다 알리가 살해되자 두 종파는 후계자를 놓고 또다시 대립했고, 680년 현재의 이라크 카르발라에서 대규모 전투를 벌였다. 이 전투에서 수니파가 대승을 거둬 시아파는 겨우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러한 역사 때문에 이슬람 전체 인구 15억 명 가운데 85%인 수니파를 대표하는 사우디와 15%인 시아파를 대표하는 이란은 견원지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우디는 과거에도 이란의 세 확산을 저지하기 위해 무력 개입을 서슴지 않았다. 인구의 70%가 시아파지만 정권은 수니파가 잡고 있는 바레인에서 2011년 민주화 시위가 벌어졌을 때, 사우디는 군대를 동원해 바레인 시아파 주민들의 시위를 무력 진압한 적 있다. 사우디는 2009년에도 후티가 자국 영토를 침입했다는 이유로 수차례 공습을 가했고, 지난해엔 후티를 테러조직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사우디는 후티가 예멘을 장악할 경우 자국의 동남부 지역에 거주하는 시아파가 반란을 일으킬 가능성도 우려해왔다. 이 지역에는 주요 유전이 밀집해 있고 전체 인구의 20%에 달하는 시아파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수니파가 대부분인 아랍연맹 22개 회원국도 정상회의를 갖고 4만 명 규모의 연합군 구성에 합의했다. 이란은 사우디를 비롯한 아랍국들의 공세에 강력하게 반발하며 후티 측에 무기 등을 지원하고 있다. 수니파와 시아파가 벌여온 ‘피의 역사’가 예멘에서 재현될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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