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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익의 미식생활

양념 밴 33조각 입에 달라붙었다

안동찜닭

양념 밴 33조각 입에 달라붙었다

양념 밴 33조각 입에 달라붙었다

안동찜닭은 생닭을 쓴다. 그래서 그 맛이 빈다. 이를 극복하려고 닭 한 마리를 33조각으로 잘게 나눠 맛을 풍성하게 한다.

1990년대 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경북 안동에서 비롯한 한 음식이 전국 외식시장을 강타한 적이 있다. 안동찜닭이다. 매스컴에 자주 나온다 싶더니 순식간에 떴다. 한두 집이 대박을 치자 프랜차이즈 업자들이 본격적으로 나섰다. 그렇게 하여 1~2년 사이에 젊은이가 붐비는 곳이면 어디서든 안동찜닭집을 볼 수 있었다.

그때 대충 기록해둔 안동찜닭집 브랜드는 이랬다. 봉추찜닭, 이귀남 원조 안동찜닭, 고수찜닭, 고추찜닭, 다래 안동찜닭, 찜닭 영계소문, 찜닭웰, 김대감 찜닭, 다기야, 단가마, 신안동찜닭, 당추찜닭, 안동 참찜닭, 하회 안동찜닭, 원조 안동찜닭, 안동 봉황찜닭, 와룡 안동찜닭, 와룡 봉추찜닭, 왕추찜닭, 안동 민속 찜닭, 닷컴찜닭. 참 많았다. 그러나 안동찜닭 붐은 오래가지 못했다. 순식간에 번진 그 정도의 속도로 순식간에 외식시장에서 사라졌다. 독자 여러분도 “그때 그랬나?” 싶을 것이다.

안동에서도 안동찜닭은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것이었다. 1990년대 말 안동시청 위생계 관계자에게서 취재한 내용은 이랬다.

“예전부터 해먹던 음식은 아닙니다. 닭집 골목이야 예전부터 있었고요. 1980년대 중반쯤 찜닭을 하는 집이 생겼습니다. 누가 원조인지는 모릅니다.”

안동 구시장 내 찜닭집 주인들의 증언도 이와 비슷하다. 한때 자기 이름으로 안동찜닭 프랜차이즈 사업을 제법 크게 벌였던 이귀남 씨는 자신이 원조라고 주장한 적이 있다. 1990년대 말 그가 한 말이다.

“남편 도박 탓에 가정 경제가 말이 아니었습니다. 시장 안에 있는 조카 집을 빌려 생닭과 튀김닭을 팔았는데 집세도 못 낼 만큼 장사가 안 됐죠. 가게 이름은 매일통닭이었습니다. 학교 선생님인 듯한 분들이 단골이었는데 닭을 찌개처럼 끓여달라는 주문을 자주 했어요. 처음엔 고춧가루 넣고 찌개를 하다가 이 손님들의 요구에 따라 채소가 들어가고 감자와 당면도 넣기 시작했죠. 그러다가 차츰 지금의 안동찜닭이 만들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 후로 손님이 늘어 하루에 80~100마리씩 팔았고 주변에도 이 음식이 번져나갔습니다.”

1980년대 중반 안동 구시장 찜닭집 골목에서 개발돼 10년 정도 그 자리에 머물다 외식 프랜차이즈 업자들에 의해 순식간에 외지로 퍼져나간 것이다.

외식 시장에서 한순간에 번지는 아이템은 생명력이 길지 않다는 공통점이 있다. 닭고기 소재 아이템이 특히 그러한데, 창업비용이 적게 들어 진입장벽이 낮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이런 아이템은 유행이다 싶으면 너도나도 매달리고, 얼마 가지 않아 사업자와 소비자 모두가 ‘피로’를 느끼고 관심을 거둬버리고 마는 것이다. 외지에서는 그렇게 사라졌지만 안동찜닭의 발상지인 안동 구시장 골목에는 여전히 많은 찜닭집이 있다.

2001년 안동찜닭 맛에 대해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안동찜닭 맛은 단순하다. 양념이 전혀 되지 않은 생닭을 살짝 익혀 소스에 버무려 음식을 하며, 그 소스라는 것도 간장 맛과 단맛, 매운맛의 조화만 있을 뿐 뒤에 숨은 맛이 없다. 이런 음식은 금방 싫증을 느끼게 돼 있다. 안동찜닭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할 것이다.”

최근 안동 구시장에 가서 찜닭을 먹었다. 찜닭집 사람들도 필자가 지적한 찜닭 맛의 한계를 알아차렸는지 조리법을 개량했다. 닭을 더 잘게 나누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통닭이나 닭볶음탕은 닭 한 마리를 26~27조각으로 나누는데, 찜닭은 33조각으로 나눈다. 닭고기에 양념을 더 많이 배게 하기 위해서다. 또 닭을 이렇게 잘게 나누면 닭뼈가 더 많이 노출돼 조리 과정에서 골즙을 풍부하게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찜닭 맛이 한결 좋아졌다. 그렇다고 다시 외지에 나갈 생각은 하지 말았으면 한다. 안동찜닭이니 안동에만 있어도 괜찮은 일이다.

입력 2012-08-06 09:50:00

  •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 blog.naver.com/foodi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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