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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행복합니다, 이글스라 행복합니다

성적에 날개 단 한화 이글스, 숨었던 팬들 유니폼 꺼낸다

나는 행복합니다, 이글스라 행복합니다

대전 중구 한화생명이글스파크를 꽉 채운 팬들. [동아DB]

대전 중구 한화생명이글스파크를 꽉 채운 팬들. [동아DB]

대전 중구 ‘한화생명이글스파크’는 6월 17일까지 6경기 연속 매진 기록을 썼습니다. 올해 전체로 따지면 이날 경기가 총 12번째 매진 사례. kt 위즈가 이날까지 매진 세 차례로 이 부문 2위라는 점을 감안하면 한화 이글스만 다른 세상에 사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듭니다. 당연히 관중도 늘었습니다. 한국야구위원회(KBO)에 따르면 현재까지 대전 구장을 찾은 관중은 평균 1만275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9184명)보다 11.9% 증가했습니다. 이보다 관중 증가율이 높은 건 SK 와이번스(26.5%) 한 팀뿐입니다. 

그런데 SK가 안방으로 쓰는 인천 남구 ‘SK행복드림구장’(문학구장) 관중 현황을 분석해보면 재미있는 결과가 나옵니다. 현재 이 구장을 찾은 관중은 평균 1만4593명인데, 한화가 이 구장에서 치른 3개 경기를 빼면 1만1085명으로 줄어듭니다. 이러면 지난해 같은 기간 관중(1만2251명)보다 평균 관중 수가 감소합니다. 문학구장 관중이 증가한 데 한화가 무시 못 할 공을 세운 셈입니다. 

나머지 구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화가 방문 팀일 때 평균 관중은 1만5696명으로, 디펜딩 챔피언 KIA 타이거즈(1만5878명)에 이어 두 번째로 많습니다. 10년 연속 ‘가을야구’ 티켓을 따내는 데 실패한 한화가 전통적인 인기 구단 KIA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비결은 뭘까요. 

첫 번째 정답은 물론 성적입니다. 한화는 이날 현재 39승 30패(승률 0.565)로 두산 베어스(승률 0.691)에 이어 2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두산은 지난해(1만5360명)와 올해(1만5401명) 평균 관중 차이가 거의 없습니다. 그러니까 성적이 ‘방아쇠’가 된 건 맞지만 한화 팬들 가슴에 ‘총알’은 따로 있었다고 보는 게 옳은지도 모릅니다. 

프로야구 팬이라면 ‘엘롯기’라는 표현을 들어본 적 있을 터. LG 트윈스, 롯데 자이언츠, KIA를 한데 묶어 부르는 이 표현은 프로야구 인기 구단의 대명사처럼 통합니다. 실제는 조금 다릅니다. 한화는 KIA나 롯데에는 뒤지지만 LG보다는 인기 있는 구단입니다. 최소한 올해는 확실히 그렇습니다.


이글스는 30대 남성의 팀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에서 1003명에게 ‘가장 좋아하는 국내 프로야구 팀’을 물어본 결과에 따르면 한화라고 응답한 비율은 8%로 KIA(14%), 롯데(10%), 삼성 라이온즈(10%)에 이어 4위였습니다. LG는 6%로 두산(7%)에도 뒤져 6위에 그쳤습니다. 인구통계학적 특성에 따라 응답자 범위를 좁히면 더욱 재미있는 결과가 나옵니다. 30대가 두 번째로 좋아하는 팀이 한화(11%)였고, 남성이 두 번째로 좋아하는 팀 역시 같은 비율로 한화였습니다. 요컨대 30대 남성이 한화 팬덤을 떠받치고 있는 셈입니다. 

프로야구 팀이 다 그런 것 아니냐는 의문이 드는 게 당연한 일. 남성이 팬덤 주축인 건 어느 팀이나 마찬가지이지만 한화는 그 정도가 심합니다. 제일 좋아하는 팀으로 한화를 고른 남성(11%)은 여성(5%)보다 2배 이상 많습니다. 이 정도 차이가 나는 팀은 한화뿐입니다. 연령대를 살펴봐도 KIA는 50대에서, 롯데는 20대에서 가장 응답률이 높았습니다. 두산을 선택한 건 40대가 제일 많았습니다. 

이 정도면 한화는 유독 30대 남성으로부터 사랑받는 팀이라 해도 크게 무리는 아닐 겁니다. 한화가 전국구 인기 구단으로 거듭난 데는 30대 남성의 심장을 불타오르게 만든 게 제일 중요한 요소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화의 어떤 매력이 이들의 가슴을 요동치게 만든 걸까요.


한화는 격려다

한화 이글스 선수들. 한화는 최근 6회 연속 구장 매진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한용덕 한화 이글스 감독(오른쪽). 한 감독은 과거 한화 이글스에서 좋은 성적을 기록한 선수 출신이다. [동아DB]

한화 이글스 선수들. 한화는 최근 6회 연속 구장 매진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한용덕 한화 이글스 감독(오른쪽). 한 감독은 과거 한화 이글스에서 좋은 성적을 기록한 선수 출신이다. [동아DB]

페이스북에서 ‘오늘의 이글스’라는 한화 팬페이지를 운영 중인 임인혁(30) 씨는 “한화는 올해 역전승(24승)이 가장 많은 팀”이라면서 “요즘 30대를 일컫는 표현 가운데 하나가 ‘삼불남’(30대의 불안한 남성)이다. 취업해도 불안하고 결혼해도 불안해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게 현실이다. 한화가 자꾸 역전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언젠가는 역전할 수 있다’고 믿게 되는 심리적 안정 효과가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습니다. 

역전승도 보통 역전승이 아닙니다. 한화가 거둔 역전승 가운데 5번은 9회에 경기를 뒤집은 경우입니다. 현재까지 9회에 이렇게 경기를 많이 뒤집은 팀은 없습니다. 거꾸로 한화가 이긴 채로 9회를 맞이했을 때 패한 적은 아직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임씨는 “이기고 있으면 이길 것 같고, 지고 있어도 이길 것 같은 마음에 경기가 끝날 때까지 응원을 멈출 수 없다”며 웃었습니다. 

한용덕(53) 감독, 송진우(52) 투수코치, 장종훈(50) 타격코치 같은 ‘한화 레전드 출신’ 코칭스태프가 돌아온 게 영향을 미쳤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김성근(76) 전 감독을 영입하면서 ‘부활’을 꿈꾸다 오히려 더 깊어진 상처를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 코칭스태프가 보듬어주고 있다는 것. 여기서 동질감을 느낀다는 목소리입니다. 

‘모태 신앙’으로 한화를 응원하고 있다는 충북 청주시의 K(32)씨는 “30대가 되면서 지친 마음에 어리광을 부리고 싶어도 나이 탓에 망설이게 될 때가 많다. 그 대신 속으로 ‘형이나 어른이 나 좀 응원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지금 한화 분위기가 딱 그런 것 같다”면서 “요즘 한화를 보면 어린 시절 우리에게 꿈을 주던 선수들이 이제 지도자가 돼 현역 선수들을 향해 ‘잘했다. 더 놀다 오라’고 격려하는 느낌이 든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심장에 습기가 차는’ 감동을 멈출 수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K씨는 계속해서 “가을이면 자연스레 프로농구로 관심을 옮겼는데 올해는 진짜 한화가 가을야구를 할 것 같다. 올해 성적이 잘 나와 레전드 코칭스태프 체제를 오래 보고 싶다”고 덧붙였습니다. 

이렇게 팬들은 그라운드에서 즐길 줄 알게 된 한화를 통해 격려받는다고 이야기하지만 한화는 여전히 부끄러움이 많은 팀입니다. 관중이 많으면 성적이 내려가거든요. 관중이 1만5000명 이상 들어찬 경기에서 한화는 7승 10패(승률 0.412)를 기록하는 데 그쳤습니다. 10개 구단 가운데 뒤에서 세 번째 성적입니다. 만원 관중 앞에서 안방 경기를 벌였을 때 성적도 6승 6패로 빈자리가 있을 때인 14승 8패(승률 0.636)보다 떨어집니다. 

물론 한화가 관중이 많으면 약하다는 주장에 과학적 근거가 있는 건 아닙니다. 표본이 충분히 쌓인 것도 아닙니다. 지금으로서는 우연히 그런 결과가 나왔을 확률이 높다고 보는 게 합리적일 것입니다. 정말 그런지 아닌지 알아보는 방법은 딱 하나. 야구장을 더 많이 찾아가 더 크게 한화를 응원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전국에 아직도 숨어 있는 한화 팬 여러분, 어서 어서 예매하러 가세요!




주간동아 2018.06.27 1144호 (p66~67)

  • | 황규인 동아일보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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