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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탕, 삼탕이 낫다

재탕, 삼탕이 낫다

“돈은 돈대로 쓰고 욕은 바가지로 먹은 셈이죠.”

이번에 각 대선후보의 정책 공약을 취재하면서 한 교수로부터 들은 얘기다. 돈 쓰고 욕먹은 사람은 박근혜 전 대통령. 그렇게 만든 건 대선 공약이던 기초연금의 축소였다. 따지고 보면 약속을 아예 안 지킨 건 아니다. 월 20만 원씩을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주겠다고 한 걸 소득 하위 70%로 낮췄을 뿐이다. 박 전 대통령 처지에선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복지혜택이란 게 원래 줬다 뺏는 건 안 된다. 처음부터 안 주면 모를까.

이번 대선도 그럴 조짐이 일찌감치 보인다. 대선후보들이 쏟아내는 공약이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기초연금 인상(월 30만 원), 아동수당 신설(월 10만 원) 등 공약 한 줄에 수조 원씩 드는 정책이 부지기수다. 과연 이 약속을 다 지킬 수 있을까. 대통령이 된 뒤 핵심 공약이라도 지킬 수 있다면 ‘슈퍼맨’이라 불러주고 싶다.

19대 대선이지만, 1987년 직선제가 실시된 이후 7번째 대선이다. 그동안 당연한 명제처럼 여겨지던 정책 선거에 대해 이제 고민할 때가 됐다. 표를 얻으려고 직접 고무신을 뿌리고 막걸리를 돌리며 돈봉투를 쥐어주는 선거는 구시대 유물이 됐다. 하지만 정책 선거라는 이름 아래 돈을 헬리콥터로 뿌려도 시원찮을 선심 공약을 남발하는 일은 선거 전 현찰을 주지 않는다는 것일 뿐, 본질적으로 매표 행위와 마찬가지다.

이렇게 해서 생긴 후유증은 대통령과 당대 국민에게만 남는 것이 아니다. 불가역적인 복지 정책 등은 후손에게도 큰 부담을 지운다.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는 1997년 선거에서 18년 장기 집권한 보수당을 꺾고 노동당의 집권을 일궜다. 그는 당시 “보수당이 잘한 게 많다. 하지만 내가 꼭 해결하고 싶은 일은 보수당 이념 아래서는 할 수 없다. 그러니 우리를 뽑아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제대로 된 정책 선거는 우선 이전 정부 정책의 연속성을 고려하면서 어떻게 시스템을 바꿀지 고민해야 한다. 이어 재정 조달 방식을 확실하게 구한 상태에서 선택과 집중을 통해 성숙한 정책을 공약으로 내놓아야 한다.

물론 후보만의 잘못은 아니다. 한국 선거문화가 그런 걸 받아들이기 쉽지 않고, 대통령 탄핵으로 조기에 치르는 선거라 미처 준비하지 못한 채 등판한 점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같은 공약을 내놓을 거라면 정책 선거를 하지 말고 그냥 대통령이 되고 난 뒤 정책을 말하는 게 낫다. 차라리 재탕, 삼탕 정책이 낫다.



입력 2017-05-08 09:51:35

  • 서정보 편집장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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