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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작가의 음담악담(音談樂談)

해체와 사망 못지않게 강력한 문화상품, 추억

H.O.T.의 재결성을 지켜보며

해체와 사망 못지않게 강력한 문화상품, 추억

[사진 제공 · MBC ‘무한도전’]

[사진 제공 · MBC ‘무한도전’]

음악산업은 공백을 좋아하지 않는다. 한 시대의 스타가 다음 시대의 스타에게 자연스럽게 바통을 넘겨줄 때 산업은 기뻐한다. 해체와 사망은 그래서, 음악산업의 가장 큰 상품이지만 유효기간이 짧은 상품이기도 하다. 기한이 지나기 전 다른 무언가로 진열대를 채워야 하는 것이다. 

1996년은 한국 음악계의 갑작스러운 공백으로 시작됐다. 그것도 두 개나. 김광석의 죽음, 서태지와 아이들의 해체였다. 하루아침에 사라진 ‘문화 대통령’의 권좌를 누가 차지할 것인가. 각축이 벌어졌다. 터보, 쿨 등을 정상에 올리며 신세대 작곡가의 대표로 자리 잡은 윤일상-이승호 콤비가 있었다. 클론의 메가 히트로 건재를 과시한 김창환 사단도 있었다. 최후의 승자는 누구였을까. 답을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H.O.T., 그리고 이수만이었다.
 
17세부터 19세까지로 구성된 다섯 명의 소년이 데뷔와 동시에 정상에 오른 것은 아니었다. 1996년 9월 7일 MBC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에 ‘전사의 후예’이 공개됐을 때만 해도 그랬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컴백홈’으로 선보인 갱스터 랩 스타일의 이 노래는 방송 차트에서도 높은 순위를 차지하지 못했다. 운명을 바꾼 건 ‘캔디’였다. 유피(UP)의 ‘바다’ ‘뿌요뿌요’로 그해 여름을 정복한 작곡가 장용진이 만든 이 노래는 ‘전사의 후예’에서 보여줬던 어둡고 반항적인 이미지를 깨고 H.O.T.를 ‘10대의 상징’으로 바꿔놓았다. 

‘캔디’를 통해 그들은 이전 댄스그룹과는 다른, 지금까지도 통용되는 아이돌의 공식을 확립했다. 랩과 보컬, 댄스 정도로 막연하게 구분되던 역할이 각자의 음역대를 살려 랩과 보컬 포지션으로 나뉘었다. 멤버별로 의상과 넘버, 상징색을 부여해 캐릭터를 차별화했다. 예능프로그램을 통해 구축된 성격으로 캐릭터를 구체화한 것도 그들이다. 요즘 아이돌들이 하는 ‘◯◯에서 ◯◯를 담당하고 있는 ◯◯입니다’의 시초가 H.O.T.였던 것이다. 기획과 트레이닝, 관리를 통해 아이돌 가수가 된다는 방정식 또한 그들을 통해 입증됐고, 이수만은 이 방식을 구체화하며 입지를 굳힐 수 있었다. 

음반시장을 하이틴에서 로틴까지 확대한 점도 빼놓을 수 없는 ‘업적’이다. 초등학교 고학년들이 H.O.T.를 비롯한 아이돌의 카세트테이프를 사려고 레코드숍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했다. 그 아이들에게 십대 후반인 H.O.T.는 부담 없이 ‘오빠’라 부를 수 있는 최초의 스타였다. 

MBC ‘무한도전’을 통해 그들이 2001년 이후 처음으로 재결성한다는 소식이 전해진 날은 그 16년 동안의 주름을 일거에 땅기는 날이었다. 기존 ‘토토가’ 기획보다 훨씬 정밀하게 다루는 과정을 통해 그때의 로틴이 누군가의 며느리가 됐고, 엄마가 됐으며, 카페 사장이 됐음을 알았다. 하필이면 공연 날이 설 전날인지라, 시청자 게시판은 ‘그날 시집에 가서 전 부쳐야 한다’는 한탄으로 가득했다. 불혹 전후의 멤버들 또한 박자를 놓치고 숨을 헐떡거리며 무대를 떠나 있던 시간만큼의 공백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요즘 애들은 저런 걸 음악이라고 듣나”라는 비아냥거림의 대상이던 H.O.T.,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티켓 오픈 며칠 전부터 티켓예매처인 은행 앞에서 밤을 새우던 아이들이 추억의 책갈피처럼 펼쳐졌다. 추억은 해체와 사망 못지않은, 음악산업의 가장 큰 상품임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주간동아 2018.02.28 1127호 (p72~72)

  • |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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