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84

2017.04.19

커버스토리 | 입시 '헬조선' 장미 대선이 바꾸나

‘학종’이 바꾼 학교 풍경

공교육 정상화 신호탄 될까  …  맞춤형 학교 프로그램과 교사의 노력이 관건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7-04-17 10:33:52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서울 숭문고 학생들은 입학하면 누구나 겉면에 ‘따뜻한 봉사활동(따봉)’이라고 적힌 책자를 한 권씩 지급받는다. 봉사활동이 뭐라고 보는지, 어떤 봉사활동을 하고 싶은지 등을 생각해본 뒤 기록하게 돼 있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에게 다양한 과학실험을 접하게 해주는 찾아가는 실험실, ‘홀몸어르신’에게 반찬을 배달하고 말벗을 해드리는 섬김봉사단, 숭문고와 주변 지역 소식을 담아 소식지를 펴내는 우리 마을 기자 되기 프로젝트 ‘숭문나루’ 등 30개에 이르는 봉사활동 프로그램 목록을 볼 수 있다.

    숭문고 학생들은  3년 동안 자신이 원하는 활동에 참여하거나, 스스로 새로운 프로그램을 기획해 수행할 수 있다. 이 결과는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에 기재된다. 2010년 따봉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지금까지 이끌고 있는 허병두 숭문고 교사는 “입학사정관제전형이 생기면서 학생들이 봉사활동시간을 채우려고 관심도 없는 봉사를 형식적으로 하는 모습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이 세상의 다양한 모습을 접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적성도 찾을 수 있는 봉사활동이 없을까 하는 생각에 대흥동주민센터 등 지역 자치단체와 유니세프, 월드비전, 세이브더칠드런 등 외부 기관 등과 폭넓게 접촉하며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활동 과정에서 아이들이 삶의 방향을 정하고 ‘베풀 줄 아는 어른’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다”고 밝혔다.





    형식적 봉사 아닌 진짜 봉사

    현행 고교 학생부는 △인적사항 △학적사항 △출결상황 △수상경력 △자격증 및 인증 취득상황 △진로희망사항 △창의적체험활동(자율활동/동아리활동/봉사활동/진로활동) △교과학습발달상황(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세특) △독서활동상황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 등으로 구성돼 있다.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은 이 가운데서도 △창의적체험활동(창체) △교과학습발달상황 등의 내용이 각 대학의 학생 선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전형이다. 허 교사는 “예전 같으면 학생이나 학부모가 공부에 방해된다고 봉사활동 참여를 꺼렸을 수도 있다. 그런데 학종 덕분인지 요새는 봉사활동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과 참여도가 부쩍 높아졌다”고 밝혔다.

    숭문고 따봉 프로그램은 다른 학교에도 널리 알려져 서울 풍문여고, 남강고 등 여러 학교가 이 프로그램을 그대로 가져다 운영하고 있다. 김재환 남강고 교사는 “학종 초창기에는 학교마다 준비 정도가 달라 운영 프로그램의 편차도 컸다. 그러다 보니 일반고 학생은 특수목적고교(특목고), 자율형사립고(자사고) 학생에 비해 상대적으로 창체 영역이 미흡하다는 불만도 있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학종이 크게 확대되면서 교사들이 제자들을 위해 발 벗고 뛰고, 성공적인 프로그램들을 벤치마킹해 전반적으로 수준이 상향 평준화됐다”고 평했다. 김 교사에 따르면 “창체 담당교사들이 오전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프로그램 개발 및 관리에 최선을 다한 덕”에 학종 확대 이후 이 학교 학생들의 서울 주요 대학 진학률이 크게 높아졌다.

    이 밖에도 서울 휘문고의  ‘아트&단편영화 콘테스트’, 양재고의 PBL(Problem-Based Learning·반에서 무작위로 5~6명이 팀을 구성해 한 편의 과제를 완성, 제출하는 프로그램) 등 화제를 모으는 창체 프로그램이 적잖다. 일반고에서 오랫동안 교사생활을 했던 김하정 수원외고 교사는 “외고에 처음 왔을 때 일반고에 비해 동아리 및 진로활동 기회가 훨씬 많이 마련돼 있다는 걸 느꼈다.

    학종에 맞춰 별도의 준비를 하지 않고 이미 있는 교육활동만 충실히 해도 입시 준비에 어려움이 없어 보였다”며 “학종 전형이 확대되면서 그동안 상대적으로 학과 수업 비중이 높았던 일반고에 변화가 생긴 건 긍정적”이라고 밝혔다. 교사들에 따르면 학종은 일선 학교의 교실 풍경도 크게 바꿔놓았다. 창체와 더불어 학종의 또 다른 키워드 가운데 하나인 ‘세특’을 완성하려면 학생 개개인을 특성화할 수 있는 수업 방식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교육부가 ‘2017학년도 학교생활기록부 기재 요령’에 제시한 수학과목 세특 예시에는 ‘수학 관련 동영상 ‘문명과 수학’을 보고 건축, 미술, 얼굴, 자연, 주식, 디자인 속의 수학적 개념을 탐색하고 재조명하는 계기로 삼음. ‘열기구의 부피는 온도가 변함에 따라 연속적으로 변하는 함수로 나타낼 수 있다’는 주제를 모둠원들과 협동적으로 탐구하며, 적극적인 의사소통과정을 통해 부피와 온도 함수를 정확히 추론하고 정교하게 수행함’ 등의 내용이 있다.

    조만기 판곡고 교사는 “대학에서는 이러한 세특을 통해 학생의 지망 전공 관련 과목수업 참여도, 자기주도성 등을 판단한다. 그래서 교사들은 지어내 만들 수 없는, 진짜 내용 있는 세특을 기재하려고 애쓰게 된다. 과거의 수학수업 방식으로는 학생 개개인의 특기사항을 찾아낼 수 없기 때문에 많은 교사가 새로운 수업 방식을 개발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고3 수학교사인 그도 일상생활에서 수학이 사용되는 사례를 찾아 보고서를 쓰게 하는 등 다양한 방식을 시도하고 있다고 한다.   



    사교육계가 공교육 교사 스카우트 제안하기도

    이는 교사에게 과거보다 훨씬 많은 노력을 요구한다. 이름 밝히기를 꺼린 서울의 한 고교 교사는 “우리 학교 학생은 대부분 평범하거나 그보다 조금 못한 부모 아래서  그럭저럭 지내온 아이들이다. 신입생 중 중학교 내신 상위 10% 안에 드는 학생이 10명이 채 안 된다. 그런데 교사가 열성적으로 ‘해보자’고 하니 생전 안 보던 책과 논문을 뒤지고, 진로를 고민하며, 봉사활동에 나선다. 그 모습을 보면 마음이 뿌듯할 때가 있다. 그런 활동이 바탕이 돼 아이들이 수능으로는 가기 힘들었을 대학에 진학하는 모습을 보는 게 학종 시대 진학 담당교사의 보람”이라고 밝혔다.

    서울시교육청이 시행 중인 고교선택제도 일선 학교의 ‘학종 상향 평준화’의 한 원인으로 꼽힌다. 서울은 2010년부터 학생들에게 희망 고교 신청을 받고 있다. 학생들이 1·2단계에 걸쳐 각각 1·2지망씩 총 네 학교에 지원한 결과를 바탕으로 추첨 배정하는 방식이다. 상당수 학생이 각 고교의 창체 프로그램과 진학 실적 등을 비교해 선호 학교를 결정할 공산이 크다.

    이에 따라 2015학년도에 시작된 학종이 3년 만에 대학 입시의 ‘대세’가 된 동시에 학교 현장 변화의 핵심 동인으로 부상한 듯하다. 상당수 고교 교사는 “학종 이후 교육의 중심이 학원에서 학교로 돌아왔다”고 입을 모은다. 수업과 평가가 직접적으로 연결되면서 학생들의 수업 참여도 또한 눈에 띄게 높아졌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1980년대 교편을 잡은 후 학력고사, 수능, 학종 등 다양한 대입제도에 맞춰 고3 진학지도를 해왔다는 한 교사는 “최근 몇 년 사이 서울 강남 사교육업체에서 몇 차례 스카우트 제안을 받았다. 학원생들을 대상으로 학종에 맞는 진학 컨설팅을 해달라는 얘기를 들으며, 세상이 정말 변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이런 학원들은 학교의 입시지원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고 느끼는 학생 등을 대상으로 고액 컨설팅을 진행할 수 있다. 실제로 그런 현상이 이른바 ‘사교육 특구’에서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이성권 서울 대진고 교사는 이에 대해 “기존 입시제도가 개인 간 경쟁이었다면 학종은 학교 간 경쟁 요소도 있다. 학교 프로그램과 교사의 역량, 성실성이 학생들의 진학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전보다 공교육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된다. 학종을 계기로 학교 현장을 정상화하고 교사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교육정책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