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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한의 세상 관심법

“여성운동, 性 대결보다 차별 해소에 집중해야”

여자 가슴을 신체 부속 기관으로 보라?… ‘관념 개조’는 설득력 떨어져

“여성운동, 性 대결보다 차별 해소에 집중해야”

6월 2일 ‘불꽃페미액션’ 회원들이 서울 역삼동 페이스북코리아 사옥 앞에서 상의 탈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뉴스1 = ‘불꽃페미액션’ 페이스북]

6월 2일 ‘불꽃페미액션’ 회원들이 서울 역삼동 페이스북코리아 사옥 앞에서 상의 탈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뉴스1 = ‘불꽃페미액션’ 페이스북]

6월 2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페이스북코리아 사옥 앞에서 ‘불꽃페미액션’이라는 여권운동단체의 ‘탈의 시위’가 있었다. 페이스북에 올라온 여성의 상의 탈의 사진을 페이스북 측이 음란물이라며 삭제한 것이 계기였다. 그들은 “왜 우리 몸이 음란물이냐”는 논리로 상의를 벗는 퍼포먼스를 펼쳤고, 경찰은 준비한 담요로 그들의 가슴을 가렸다. 

그들의 목적은 ‘탈코르셋’ 운동이었다. ‘여성은 외모가 경쟁력’이라는 사회의 강요 탓에 짧은 치마나 몸매가 드러나는 옷을 입어야 하는 ‘꾸밈 노동’을 거부한다는 것이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탈코르셋’을 인증하는 여성의 글과 사진이 이어지고 있다. 

필자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서 성 주체성 문제를 관심 있게 지켜봐왔고, 이런 형태의 페미니즘이 새로운 방향이라는 점에서 몇 가지 화두를 던지려 한다. 

첫째, 그들은 ‘성별이 인간의 특성에서 얼마나 중요한 비율을 차지하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윗옷을 벗은 남성 사진은 SNS에 버젓이 돌아다니고 광고나 TV 드라마, 영화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볼 수 있는데, 여성은 왜 꼭 브래지어를 착용해야 하고 상의를 벗어선 안 되는지 묻는다. 여성 상반신이 노출되는 장면은 현재로선 미성년자 관람 불가인 영화에서나 가능한 얘기다.


‘남자와 다르게 생긴 가슴’ 논쟁

사실 이 문제에 대해 그동안 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크게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남성의 밋밋한 가슴과 달리 여성의 유방과 진한 유두는 성적 상징으로 간주됐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러한 기존 관념을 거부한다. 이러한 기존 관념은 생각보다 감정의 영향이 더 크다. 즉 우리가 여성의 가슴을 보면서 ‘성적인 의미가 강한 신체 기관’이라는 생각을 하기보다, 성적인 느낌을 받으면서 성적 호기심이나 자극을 크게 받는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우리의 생각이나 느낌의 교정을 주문한다. 여성의 가슴을 성적 흥분을 일으키는 대상으로 보지 말고, 그저 ‘남성과는 다르게 생긴 모습의 가슴’일 뿐이라는 생각과 감정을 가질 수 없느냐고 호소한다. 

몸매가 근육질이거나 뚱뚱하거나 마른 사람이 있고, 머리카락도 곱슬머리와 직모가 있듯이 여성의 가슴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는 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 대다수 남성과 상당수 여성이 여성의 가슴을 성적 상징으로 바라보는 생각과 느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그들의 바람대로 여성의 가슴을 성적 상징 기관이 아닌 신체 부속 기관으로 바라보려면 엄청난 학습과 노력이 필요하다. 유아기 성교육을 시작으로 학교를 다니는 내내 이러한 관점을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가르쳐야 할 것이다. 성인을 대상으로도 정신 개조를 위한 상당한 홍보나 교육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전에 많은 남성이 이와 같은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것이다. 여성의 가슴을 보면서 좋아하거나 흥분할 수 있는 자유를 주장하면서 인간의 본능을 인정하자고 할 것이다. 

둘째, ‘여성이 남성을 뛰어넘을 수 없는가’ 하는 문제다. 비록 전수조사를 하지 않았지만, 남성 대부분이 이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그렇다면 여성은 왜 남성에게 ‘여성이 아닌 동등한 인간’으로 바라봐달라고 끊임없이 요구하는 것일까.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여성으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여성으로 태어난 것은 그들의 자유 의지가 아니다. 그런데 세상을 살아갈수록 여러 면에서 남성에게 밀린다는 것을 알게 된다. 유아기 때 전혀 느끼지 못했던 신체 능력의 차이를 아동기와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분명히 깨닫는다. 그리고 학창 시절에는 몰랐던 성취 능력의 차이를 직장 생활을 하면서 느낀다. 

신체 능력의 차이는 생물학적이고 선천적인 것이라 많은 여성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성취 능력의 차이가 벌어지는 상황에서는 얘기가 달라진다. 학교 다닐 때 남학생들보다 성적이 더 좋았고 졸업 후 더 우수한 성적으로 입사했는데, 취업 후 10여 년이 지나면 남자 동료는 저 멀리 앞서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출산과 육아, 가사는 여성의 경쟁력을 갉아먹는다. 자신의 에너지와 시간을 온전히 일에 쏟을 수 없다. 이때 비로소 여성은 현실을 직시하고 억울한 느낌을 갖는다. 그래서 남성을 뛰어넘기는 어려워도 남성과 근접한 위치까지 도달하려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여성에 대한 관념 개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남성은 여성을 지배하는가

그들은 남성이 여성을 배려하고 보호하면서도 성적 대상으로 여기는데, 이제부터 더는 그렇게 바라보지 말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여기에는 전통적인 여성의 역할, 즉 출산, 육아, 가사, 내조 등을 남성도 함께할 것을 요구하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생물학적으로 출산은 불가능하지만, 육아와 가사는 공동분담하고 외조도 얼마든 할 수 있다. 결국 페미니즘의 결과는 남성과 동등해지거나 남성에 근접하는 것이지 추월하지는 않는다. 그러니 여권신장운동에 대해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 

셋째, ‘남성은 여성을 지배하는가’ 하는 문제다. 지배와 피지배라는 대립구도의 용어가 우리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현실세계에서는 지배와 피지배 구도가 엄연히 존재한다. 사회 지배층에서 남성 비율은 여성보다 압도적으로 높다. 남성의 수입이 여성의 그것보다 더 많다. 이분법적으로 말하자면, 사회적으로도 고학력자나 자본가, 권력자가 지배하고 있다. 그렇다면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는 사회 질서를 타파해야 하는데, 실제로는 거의 불가능하다. 양반과 노비는 공약수나 공통분모가 없었지만, 남성과 여성은 다르다. 남성과 여성으로 나누기 전 그들은 모자, 부녀, 남매라는 가족관계요, 부부와 연인이라는 이름의 사랑하는 관계이자 동료, 선후배, 친구라는 이름의 친밀한 관계다. 그러니 온전한 대립 관계는 처음부터 성립되지 않는다. 

넷째, ‘여성과 남성의 완전한 평등은 이뤄질 수 없는가’ 하는 점이다. 우리가 꿈꾸는 남녀평등 사회는 꼭 와야 하고 실제로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는 이뤄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말 그대로 이상주의, 이상향이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다. 물론 다른 동물에 비해 이성과 도덕을 갖춘 훌륭한 존재이기는 하지만, 결코 완전하지 않다. 개인의 욕망과 이기심이 결국 이성과 도덕을 넘어서는 경우가 너무 많다. 

따라서 남성과 여성의 대립구도가 실제로 심각해지면, 이미 지배적 위치에 있는 남성이 결코 패배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사회적 권력을 이미 가진 데다, 비록 원시적 관점이긴 하지만 신체적으로도 힘이 더 세기 때문이다. 이상과 현실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점에서 여성운동은 남녀 성 대결보다 남녀 성차별 해소 측면에서 전개돼야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남녀 간 갈등과 반목을 넘어 서로 존중하고 조화롭게 살아가는 사회를 기대한다.


“여성운동, 性 대결보다 차별 해소에 집중해야”


주간동아 2018.06.20 1143호 (p62~63)

  • |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의학박사 psysohn@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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