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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천 위에 미투 검증

性 관련 전과자 공천 배제…의혹 제기만으로도 정밀 판단 대상

공천 위에 미투 검증

공천 위에 미투 검증
3월 14일 오후 자유한국당 중앙당 공천관리위원회는 6·13 전국동시지방선거(지방선거)에 출마하려는 경기도지사, 대전시장, 대구시장, 경남도지사 등 광역단체장 공천 신청자를 면접했고, 15일에는 서울시장을 비롯한 10개 광역단체장 공천 신청자의 자질 및 능력을 검증했다. 공천 심사는 예전과 크게 다를 바 없었지만 한 가지 눈에 띄는 절차가 있었다. 바로 면접자들로부터 ‘미투운동(#Me Too) 지지 서약서’를 받은 것이다. 서약서에는 ‘최근 사회적 이슈인 미투운동(성추행·성폭행 등 성범죄)을 적극 지지하며, 공직 후보자로서 우리 사회 인권보호와 양성평등 실현을 위해 적극 노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특히 ‘당의 후보자로 확정된 이후라도 공직자로서의 도덕성과 청렴성에 관련한 중대한 흠결이 추가로 발견된다면 당이 공천 취소를 결정하더라도 이에 절대 승복하고 어떠한 징계 조치도 감수할 것’이라는 부분이 포함됐다. 

‘도덕성과 청렴성에 관련한 중대한 흠결’로 표현돼 있지만 최근 사회문제로 대두된 미투에 연루되면 공천을 취소할 수 있다는 경고로 해석된다. 자유한국당 한 관계자는 “과거 공직 후보자 면접 때도 대부분 서약서를 받았다”며 “올해는 특히 때가 때인 만큼 달라진 시대적 요구에 부응한다는 의미에서 미투운동 지지 내용이 포함됐다”고 말했다.


미투운동 지지 서약서

‘안희정 전 지사 성폭력 사건 대책위원회’와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관계자들이 3월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미투운동’을 지지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동아DB]

‘안희정 전 지사 성폭력 사건 대책위원회’와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관계자들이 3월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미투운동’을 지지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동아DB]

바른미래당 역시 이번 지방선거 공천 때 ‘미투’를 정밀검증 요건으로 강화할 방침이다. 바른미래당 이학재 지방선거기획단장은 “성폭력은 물론, 성희롱이나 성추행 전과가 있는 사람은 공천에서 원칙적으로 배제하고, 기소되지 않았더라도 미투에 연루된 적이 있으면 공천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겠다”고 밝힌 상태다. 특히 공천 심사 와중에 미투 관련 문제제기가 있으면 정밀 심사를 통해 판단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수행비서 성폭행 의혹 제기로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은 더불어민주당도 강도 높은 대책을 마련했다. 3월 7일에는 전국윤리심판원·공직선거후보자검증위원회 연석회의를 갖고 권력형 성폭력 대응 방안을 발표했다. 지방선거 공천 때 후보자의 성폭력 범죄 전력을 엄격히 검증하고 성범죄에 연루된 후보자를 원천 배제하는 것을 뼈대로 하고 있다. 

이처럼 정치권이 발 빠르게 미투 관련 대책을 쏟아내는 것은 미투운동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면서 이번 지방선거에서 당락을 가를 중요 변수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특히 지방선거에 나설 후보자는 정당 공천 심사 과정은 물론, 본선 무대에 올라 선거를 치를 때까지 여론의 ‘미투 검증’이란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특히 자유한국당 서약서에서 보듯 공천 확정 이후에라도 미투 의혹이 제기되면 언제든 공천 취소로 이어질 수 있다. 의혹 제기만으로도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겠느냐’며 의심의 눈초리로 보는 사회적 분위기가 팽배하기 때문이다. 



서울시장 출마 선언 직전 터져 나온 미투 의혹 제기로 출마 자체가 불투명해진 정봉주 전 의원의 사례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미투가 얼마만큼 핵폭탄급 위력을 발휘할지를 잘 보여준다. 의혹이 제기되자 정 전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을 둘러싼 의혹이 허위라고 반박하는 한편, 법적 대응까지 했다. 그럼에도 여론은 그에게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 의혹이 해소되기는커녕 오히려 진실 공방으로 미투의 늪에 더 빠져드는 형국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미투가 공천은 물론, 본선 무대에서도 당락을 좌우할 결정적 변수로 작용할 수 있음을 예고하는 셈이다. 

지방선거까지 석 달도 채 남지 않았다. 그만큼 지금 의혹이 제기되면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나쁜 소문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타고 삽시간에 전국으로 퍼지는 반면, 해명이 도는 데는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특히 여론은 가해자로 지목된 이의 해명에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이래저래 지방선거 출마 예정자를 둘러싼 미투 의혹 제기는 결정적일 수밖에 없다. 

여권 한 인사는 “이번 미투운동을 우리 사회에 남아 있던 성문화 적폐를 일소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며 “특히 공직 후보자들에게 부동산 투기, 위장 전입, 논문 표절 등 기존 국민적 평가 기준 외에 미투라는 도덕적 기준이 추가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긍정적 측면에서 자기 검열 계기’

3월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성추행 의혹을 받고 있는 정봉주 전 의원이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동아DB]

3월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성추행 의혹을 받고 있는 정봉주 전 의원이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동아DB]

미투운동은 정치권 전반의 문화를 바꾸는 계기로도 작용하고 있다. 정진우 전 더불어민주당 문재인대통령후보 수석부대변인은 “미투운동은 과거 잘못을 드러내 바로잡는 계기가 될 뿐 아니라, 앞으로 정치에 나설 뜻을 둔 인사들이 성평등 관점에서 말과 행동을 조심하게 되는 긍정적 측면도 있다”며 “미투를 통해 우리 사회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바른미래당 김철근 대변인도 “미투운동은 당장 지방선거 공천에서 유불리로 작용할 뿐 아니라, 우리 사회가 성숙해가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에 근무하는 한 인사는 “미투운동이 본격화된 이후 여성 동료나 후배에게 얘기할 때 한 번 더 생각하는 습관이 생겼다”며 “긍정적 측면에서 자기검열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20년 가까이 국회 보좌진으로 일하는 40대 후반의 한 보좌관은 “20대 국회 이후 가장 큰 변화는 호칭”이라고 전했다. “과거 보좌진 사이에 서로 이름을 부르는 것이 친근함의 표시로 통하는 때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깍듯하게 ‘비서’ ‘씨’로 통일됐다”며 “이는 20대 국회 이후 크게 달라진 모습”이라고 말했다. 

그는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사태 이후 실시된 17대 총선을 통해 386 운동권 출신 인사가 대거 국회에 들어왔을 때 일시적으로 ‘선배’ 대신 ‘형’이라는 호칭이 국회 의원회관에서 주로 통용됐다”며 “당시에는 의원-보좌진이 상하관계라기보다 정치적 동지의 모임, 흡사 대학 동아리 같은 분위기를 띠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 이 같은 보좌진 문화가 크게 달라졌다고 한다. 18대 국회부터 국회 보좌진으로 일한 여당 한 보좌관은 “20대 국회 이후 의원회관은 확실히 업무 중심으로 돌아간다”며 “꼭 미투운동이 아니더라도 의원회관은 남녀 구분 없이 서로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면서 자기 할 일을 하는 문화가 자리 잡아가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그는 “밤늦도록 회식하고 노래방으로 2차를 가 인간적 유대를 확인하는 문화는 지금도 거의 사라졌지만, 앞으로는 더욱 그럴 일이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주간동아 2018.03.21 1130호 (p16~17)

  • |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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