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대회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트로피는 선수에겐 가보와 같다. 하지만 골프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꼭 그렇지 않은 때도 있었다. 최초 골프대회인 ‘디(브리티시)오픈’은 승자에게 와인을 따라주던 주전자 클라레 저그를 트로피로 사용했고, 그마저도 대회 초기 10년간은 승자에게 그것 대신 챔피언 벨트를 부상으로 줬다.
1887년 스코틀랜드 이스트로디언 프레스트윅골프클럽에서 열린 디오픈에서 윌리 파크 주니어가 R. 마틴을 꺾고 처음 우승했는데, 트로피인 클라레 저그 없이 상금만 받았다. R. 퍼거슨이 1882년부터 대회 3연패를 한 뒤 클라레 저그를 분실했기 때문이다. ‘분실’을 대회 전통과 권위에 손상을 입힌 사건으로 여긴 영국왕립골프협회(R&A)는 이 사실을 쉬쉬하며 숨겼다. 행방불명된 클라레 저그는 28년 만인 1910년 에든버러의 한 전당포 진열장에서 발견됐고, 그해 세인트앤드루스에서 열린 디오픈의 우승자 제임스 브레이드에게 전달됐다.
기증자 이름을 따 워너메이커컵이라고도 부르는 미국 PGA챔피언십 트로피 역시 6년간 행방불명된 적이 있다. 미국 인디애나 주 프렌치릭에서 열린 1924년 대회에서 월터 헤이건(미국)이 J. 반즈를 꺾고 우승한 다음 트로피가 자취를 감췄다. 내막은 어처구니가 없다. 대회장에서 우승 트로피를 받은 뒤 택시를 타고 돌아가던 헤이건은 갑자기 다른 볼일이 생각나 택시기사에게 자신이 묵는 호텔에 트로피를 가져다달라고 부탁했다.
저녁 늦게 호텔로 돌아온 헤이건은 트로피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크게 당황했다. 경찰에 신고하려 해도 택시기사의 인상착의와 차량 번호를 기억하지 못해 괜히 남들의 웃음거리가 될까 걱정한 그는 이 사실을 숨겼다. 이듬해 PGA챔피언십은 일리노이 주 올림피아필즈컨트리클럽에서 열렸다. 당시까지만 해도 우승자가 트로피를 소장하는 게 전통이었다.
이 대회에서 헤이건이 2연패를 했다. 대회운영위원장은 “왜 트로피를 가져오지 않았나”라고 물었고, 이에 헤이건은 “가져오기도 귀찮고, 어차피 내가 우승할 거라서…”라며 얼버무렸다. 이후 헤이건은 이 대회를 27년까지 4년 연속 우승했는데, 대회 주최 측도 크게 문제 삼지 않고 간단히 상금만 전달하고 넘어갔다.
하지만 1928년 헤이건은 우승을 놓쳐 트로피를 반납해야 했다. 그는 그때서야 트로피 분실을 자백했고, 미국 프로골프협회(PGA) 측은 부랴부랴 트로피를 새로 만들었다. 2년이 지난 1930년, 6년 동안 자취를 감췄던 우승컵은 헤이건이 중역으로 있던 한 운동회사 창고 안 상자에서 먼지가 쌓인 채 발견됐다. PGA는 트로피를 반환받자마자 협회 진열장에 보관한 뒤 진품은 시상식에서만 사용하고 선수에게는 복제품을 주고 있다.
일본 골프박물관에 소장된 일본오픈 트로피 역시 복원한 것이다. 진품은 6·25전쟁 때 분실됐다. 1941년 일본오픈에서 우승한 한국 최초 프로골퍼 연덕춘이 트로피를 안고 대한해협을 넘어왔지만 이듬해 대회가 열리지 못하고 태평양전쟁이 발발했다. 트로피는 당시 조선은행(한국은행)에 보관됐으며, 해방 후 연덕춘의 집으로 옮겨졌다.
하지만 6·25전쟁이 터지면서 피란 갔다 돌아와 보니 트로피가 사라지고 없었다. 일본골프협회는 트로피 설계도를 찾아 복원한 뒤 박물관에 보냈다. 그 후부터 복원품의 모조품을 작게 만들어 매년 챔피언에게 수여한다. 요즘 대회마다 수여하는 트로피가 다양하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프로대회인 KPGA선수권대회 트로피도 60주년을 맞은 올해 새로 만들어지는데, 분실되지 않고 보존되길 바란다.
1887년 스코틀랜드 이스트로디언 프레스트윅골프클럽에서 열린 디오픈에서 윌리 파크 주니어가 R. 마틴을 꺾고 처음 우승했는데, 트로피인 클라레 저그 없이 상금만 받았다. R. 퍼거슨이 1882년부터 대회 3연패를 한 뒤 클라레 저그를 분실했기 때문이다. ‘분실’을 대회 전통과 권위에 손상을 입힌 사건으로 여긴 영국왕립골프협회(R&A)는 이 사실을 쉬쉬하며 숨겼다. 행방불명된 클라레 저그는 28년 만인 1910년 에든버러의 한 전당포 진열장에서 발견됐고, 그해 세인트앤드루스에서 열린 디오픈의 우승자 제임스 브레이드에게 전달됐다.
기증자 이름을 따 워너메이커컵이라고도 부르는 미국 PGA챔피언십 트로피 역시 6년간 행방불명된 적이 있다. 미국 인디애나 주 프렌치릭에서 열린 1924년 대회에서 월터 헤이건(미국)이 J. 반즈를 꺾고 우승한 다음 트로피가 자취를 감췄다. 내막은 어처구니가 없다. 대회장에서 우승 트로피를 받은 뒤 택시를 타고 돌아가던 헤이건은 갑자기 다른 볼일이 생각나 택시기사에게 자신이 묵는 호텔에 트로피를 가져다달라고 부탁했다.
저녁 늦게 호텔로 돌아온 헤이건은 트로피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크게 당황했다. 경찰에 신고하려 해도 택시기사의 인상착의와 차량 번호를 기억하지 못해 괜히 남들의 웃음거리가 될까 걱정한 그는 이 사실을 숨겼다. 이듬해 PGA챔피언십은 일리노이 주 올림피아필즈컨트리클럽에서 열렸다. 당시까지만 해도 우승자가 트로피를 소장하는 게 전통이었다.
이 대회에서 헤이건이 2연패를 했다. 대회운영위원장은 “왜 트로피를 가져오지 않았나”라고 물었고, 이에 헤이건은 “가져오기도 귀찮고, 어차피 내가 우승할 거라서…”라며 얼버무렸다. 이후 헤이건은 이 대회를 27년까지 4년 연속 우승했는데, 대회 주최 측도 크게 문제 삼지 않고 간단히 상금만 전달하고 넘어갔다.
하지만 1928년 헤이건은 우승을 놓쳐 트로피를 반납해야 했다. 그는 그때서야 트로피 분실을 자백했고, 미국 프로골프협회(PGA) 측은 부랴부랴 트로피를 새로 만들었다. 2년이 지난 1930년, 6년 동안 자취를 감췄던 우승컵은 헤이건이 중역으로 있던 한 운동회사 창고 안 상자에서 먼지가 쌓인 채 발견됐다. PGA는 트로피를 반환받자마자 협회 진열장에 보관한 뒤 진품은 시상식에서만 사용하고 선수에게는 복제품을 주고 있다.
일본 골프박물관에 소장된 일본오픈 트로피 역시 복원한 것이다. 진품은 6·25전쟁 때 분실됐다. 1941년 일본오픈에서 우승한 한국 최초 프로골퍼 연덕춘이 트로피를 안고 대한해협을 넘어왔지만 이듬해 대회가 열리지 못하고 태평양전쟁이 발발했다. 트로피는 당시 조선은행(한국은행)에 보관됐으며, 해방 후 연덕춘의 집으로 옮겨졌다.
하지만 6·25전쟁이 터지면서 피란 갔다 돌아와 보니 트로피가 사라지고 없었다. 일본골프협회는 트로피 설계도를 찾아 복원한 뒤 박물관에 보냈다. 그 후부터 복원품의 모조품을 작게 만들어 매년 챔피언에게 수여한다. 요즘 대회마다 수여하는 트로피가 다양하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프로대회인 KPGA선수권대회 트로피도 60주년을 맞은 올해 새로 만들어지는데, 분실되지 않고 보존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