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빈 더브라위너(왼쪽)와 제이미 바디. GETTYIMAGES
2015년 맨시티에 합류한 더브라위너는 10년간 핵심 플레이메이커로 활약하며 ‘지배적인 10년’을 보냈다. 그의 발끝에서 맨시티는 프리미어리그 6회, FA컵 2회, 리그컵 5회, 챔피언스리그(클럽 사상 최초), 클럽 월드컵, 슈퍼컵 등 총 19개의 메이저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특히 센추리온 시즌(2017∼2018)과 트레블 시즌(2022∼2023) 달성에서 그의 역할은 절대적이었다.
‘가장 위대한 미드필더’ 더브라위너
더브라위너를 정의하는 핵심 키워드는 단연 ‘어시스트’다. 그는 EPL 통산 119도움을 달성했는데, 라이언 긱스에 이어 역대 2위 기록이다. 237경기 만에 100도움을 달성해 이 부문 역대 최단 경기 기록을 세웠다. 2019∼2020시즌에는 20도움을 달성해 앞서 티에리 앙리가 가지고 있던 단일 시즌 최다 도움 타이틀을 공유하게 됐다. 더브라위너는 경기 평균 177분마다 1도움을 기록했는데, 이는 50경기 이상 출전 선수 중 역대 최고 분당 도움 효율이다. EPL ‘올해의 플레이메이커’를 세 차례 수상한 그는 2015∼2016시즌 맨시티 합류 이후 EPL에서 최다 도움(117개)과 기회 창출(827회)을 기록했다. 펩 과르디올라 맨시티 감독은 더브라위너를 향해 “이 나라(영국)와 이 클럽(맨시티)에서 뛴 역대 가장 위대한 미드필더 중 한 명”이자 “특별한 선수” “맨시티 가족의 일원”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하지만 영원할 것 같던 맨시티와 더브라위너의 동행에도 끝이 찾아왔다. 다가온 계약 만료 시점과 더브라위너의 34세라는 나이, 최근 몇 시즌 그를 괴롭힌 잦은 부상으로 출전 시간이 줄어든 게 이별 배경이다. 그의 다음 행선지로는 사우디아라비아 리그나 미국 메이저리그사커(MLS: 미국 최상위 프로축구리그) 등이 거론되고 있다.
그가 축구 역사에 남긴 유산은 명확하다. 스티븐 제라드, 프랭크 램파드, 폴 스콜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어쩌면 그 이상의 평가를 받을 만한 EPL의 위대한 미드필더 중 한 명이라는 것이다. 일각에선 맨시티 홈구장 에티하드 스타디움에 더브라위너의 동상이 세워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그는 맨시티의 역사를 바꾼 변혁적 인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제이미 바디가 레스터 시티에서 보낸 13년은 한 편의 영화와도 같은 시간이었다. 바디는 2012년 5부 리그에서 단돈 100만 파운드(약 19억2000만 원)에 레스터 시티로 이적했다. 공장 노동자 출신으로 EPL에 진출한 ‘인간 승리’의 표본이기도 하다. 그의 커리어에서 하이라이트는 단연 레스터 시티에 첫 EPL 우승을 안긴 2015∼2016시즌이다. 당시 11경기 연속 골이라는 리그 신기록을 세우며 팀의 돌풍을 이끈 그는 EPL 올해의 선수상을 거머쥐었다.
바디의 맹활약은 한 시즌에 그치지 않았다. 2021년 팀에 첫 FA컵 우승을 안겼고 2019∼2020시즌에는 33세 나이로 리그 득점왕(골든 부트)에 오르며 역대 최고령 수상 기록을 세웠다. 두 번의 챔피언십 우승(2013∼2014시즌, 2023∼2024시즌)에 기여한 것은 물론, 팀이 강등됐을 때도 남아 재승격을 이끌었다. 그는 레스터 시티 소속 EPL 최다 득점(143골) 기록 보유자이자 만 30세 이후 최다 득점자(109골)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노동자 출신 축구 영웅’ 제이미 바디
바디가 이룬 업적은 축구계의 오랜 통념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는 프로축구계에 늦은 나이로 입문해 33세에 골든 부트를 수상했다. 만 30세가 넘어 EPL에서 가장 많은 골을 넣은 그의 여정은 엘리트 스포츠에서 흔히 나타나는 ‘연령별 기량 곡선’을 거스르는 것이다. 바디는 20대 초반까지 하부 리그에서 뛰다가 27세에 EPL에 데뷔했다. 그리고 38세인 현재까지도 현역 생활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어린 시절 엘리트 아카데미에서 육성되는 대다수 선수의 성장 경로와는 매우 다른 모습이다. 이는 기존 축구 인재 발굴 시스템에 빈틈이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나아가 특별한 자질과 노력이 있다면 커리어 후반에도 최고 수준의 기량을 발휘하고 유지할 수 있다는 것도 보여준다.바디의 플레이 스타일은 명확하다. 폭발적인 스피드를 활용한 뒤공간 침투와 지치지 않는 압박, 간결하고 정확한 마무리다. 때로는 상대 팬들을 자극하는 세리머니로 악동 이미지를 얻기도 했다. 이런 그의 솔직하고 거침없는 모습은 오히려 팬들에게 더 큰 매력으로 다가갔다. 레스터 시티 팬들에게 그는 영원한 영웅이다.
더브라위너는 첼시, VfL 볼프스부르크 등 엘리트 코스를 밟아 세계적 클럽에서 실력을 꽃피웠다. 반면 바디는 하부 리그에서 시작해 기적을 썼다. 일견 상반된 축구 인생을 살아온 두 선수 모두 각자 클럽에서 10년 이상 헌신하며 상징적 존재가 됐고 EPL에 지울 수 없는 발자취를 남겼다. 이제 맨시티와 레스터 시티는 두 레전드의 빈자리를 채워야 한다는 과제를 안게 됐다. EPL 역사에 빛나는 업적을 남긴 두 전설에게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