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육군 31보병사단 유격장에서 신세대 장병들이 진흙탕 참호전투를 벌이는 모습.
군 생활 힘들수록 강해지는 자신감
필자는 2013년 3월 강원 고성 육군 22사단 53연대 전투지원중대에서 전역한 예비역 병장이다. 군복무 중 우수 분대장, 솔선수범 등의 공로로 사단장 표창을 포함해 총 7개 표창을 받았고 사단급 혹한기 훈련 후기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필자에게도 군 생활이 쉬웠던 건 아니다. 하지만 군 생활에서 많은 걸 얻은 것도 사실이다. 이런 경험을 살려 입대를 앞뒀거나 현재 군 생활을 하는 이들에게 몇 가지 조언을 하려 한다.
첫 대목은 결국 사람이 문제라는 점이다. 군대 역시 사람이 부대끼는 사회다. 거칠고 경직된 곳이지만, 하루하루가 치열한 만큼 가장 절박하고 또 끈끈한 곳이 바로 군대다. 확실한 인맥을 만드는 곳이자 평생 술안주 거리가 되기도 한다.
물론 누군가에게는 후임 때문에 제대할 때까지 힘들고, 선임 때문에 2년 내내 고단한 곳이기도 하다. 주지할 사실은 몸을 먼저 움직여야 하는 곳이지만 그 안에서도 마음은 통한다는 점이다. 마음이 통하면 군화 속에서도 꽃이 핀다. 누구는 배치 운이 없다고 한탄하지만 그곳이 본인을 돋보이게 하는 곳이 될 수도 있고, 고된 훈련 속에서 잊고 지내온 자신감을 되찾을 수도 있다.
필자도 입대 전에는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 않던 군인들이 이등병 휴가 때는 눈을 감아도 보이고, 초코파이와 ‘군대리아’가 호텔 요리보다 맛있게 느껴지는 경험을 했다. 군대는 이처럼 마음가짐 하나로 많은 것이 달라 보이는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방 마음을 읽어야 하고 자기 마음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
군 생활이 힘들수록 자신은 강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중요하다. 군 생활은 불공평함의 연속이다. 누구는 후방에 있는데 나는 최전방에 있을 수 있다. 부정적인 상황에 처할 때마다 사람들은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조언한다. 하지만 내 코가 석 자일 때 그런 진부한 말이 귀에 들어올 리 없다. 오히려 더 부정적으로 삐뚤어질지도 모른다. 이때는 리프레이밍을 하는 것이 좋다.
프레임은 세상을 바라보는 일종의 관점을 뜻한다. 사물과 상황을 관찰하고 해석하는 우리 관점이 바로 프레임이다. 리프레이밍은 이 관점, 즉 자신의 사고방식을 새롭게 구축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성미가 급해 걱정이라면, 일처리 속도가 빨라 단시간에 많은 일을 끝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미 엎질러진 물, 즉 현재 벌어진 상황을 되돌릴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이럴 때는 그 상황을 바라보던 낡은 프레임을 버리고 새로운 프레임으로 교체해야 한다.
단, 리프레이밍이 부정적인 사건을 무조건 긍정적으로 해석하라는 말이 아니라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부정적이라는 느낌을 충분히 받아들이고, 그 후 자신의 사고방식을 바꿀 기회를 노려야 한다. 무턱대고 ‘나는 다 잘할 수 있어’라거나 ‘무조건 잘될 거야’라고 생각하는 태도와는 거리가 있다. 즉 자신이 최전방에 ‘떨어졌다면’ 최전방에 온 것은 불운이지만 그래도 나중에 전역해 남들 앞에서 어깨 쫙 펴고 다닐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 방식이 바로 리프레이밍이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군대에서 여러 상황에 대해 이렇게 리프레이밍 연습을 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것도 능력이기 때문이다.
도움이 필요하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도 중요하다. 스스로의 노력으로 피할 수 없는 부정적인 환경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다 보면 손쉽게 할 수 있는 일도 자포자기하기 쉬운데, 이를 ‘학습된 무기력’이라고 한다. 군대에서는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겪는 실패가 많다. 주특기를 잘하지 못해 듣는 꾸중은 그렇다 해도, 선임의 이유 없는 괴롭힘, 생활관이나 교육훈련 중 발생하는 불합리한 임무 분담은 자기 노력과 상관없이 벌어지는 실패의 경험이라 할 수 있다. 2년 동안 이렇게 절망적인 일을 반복적으로 겪다 보면 어느 순간 무기력이 학습된다. 그러기 전 부당한 상황을 참지 말고 도움을 청해야 한다. 그것이 순리다.
이런 상황을 생각해보자. ‘잠깐이니까 괜찮겠지’라고 생각해 물건을 벤치에 남겨놓은 채 잠시 화장실에 다녀온 당신. 그런데 다시 돌아와 보니 물건이 없어졌다. 놀랄 수밖에 없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지켜보고 있는데 도둑이 물건을 가져가도 신경조차 쓰질 않았다니!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자. 만약 당신이 곁에 있는 누군가에게 “죄송하지만, 제가 화장실 다녀오는 동안 이 물건을 좀 봐주실 수 있나요?”라고 부탁했다면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군대에서도 마찬가지다. 무기력에 빠지기 전 “도와주세요”라고 소리 높여 외쳐야 한다. 그 말 한마디가 가진 힘은 생각보다 크다.
누가 뭐래도 ‘값진 배움의 장’
사소한 것에 행복을 느끼는 연습을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가지지 못한 대상을 동경한다. 자신에게 없는 것을 얻어야 행복해진다고 느낀다. 가난할 때는 ‘돈만 있으면 행복할 거야’라 생각하고, 외로울 때는 ‘애인만 생기면 내 삶이 완벽할 텐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막상 부자가 되면 ‘돈이 있다고 항상 행복한 건 아니다’라 하고, 애인이 생기면 애인과의 다툼에 상심하기도 한다. 행복이란 상대적 개념, 즉 수량이나 부피로 규정할 수 없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들이다.
행복만 있는, 혹은 행복은 없는 절대 조건이 있는 것도 아니다. 예전에는 같은 사람을 보거나 같은 물건을 받아도 행복을 느꼈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다. 이는 행복의 질량이 바뀌는 게 아니라 우리 자신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즉 행복은 마음먹기 달렸다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행복을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만약 지금 있는 곳이 힘들다면 그보다 더 힘든 곳, GP(경계초소)나 GOP에서 근무하는 다른 병사들을 떠올려보자. 지금 나를 기다리는 애인과의 다툼 때문에 짜증 난다면, 자신을 기다려줄 사람조차 없는 솔로를 생각하면 된다. 이런 식으로 매 순간 자신을 뒤돌아보고 일깨워가며 나아가는 것이 행복 체감 연습이다. 군대 안에서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아는 연습을 꼭 해보길 바란다.
누군가에게는 군대가 악몽의 공간이지만, 어느 누구에게는 값진 배움의 장이기도 하다. 군대는 상당수 사람에게 첫 사회생활의 장이자 첫 직장이기 때문이다. 남자 셋이 모이면 자연스레 군대 이야기로 꽃을 피우는데, 그만큼 정이 쌓이고 추억이 생기는 곳이 군대다. 최근 여러 사건을 바라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무척 크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라를 지키느라 땀 흘리는 모든 대한민국 장병과 그들을 떠나보낸 모든 이를 응원한다.
여인택 씨는…
1989년생. 중학생 시절 미국 유학을 떠나 미시간대 심리학과를 졸업했다. 2011년 6월 육군 논산훈련소에 입소해 강원도 최전방 부대에서 근무했다. 군복무 경험에 자신의 심리학적 지식을 접목해 지난해 ‘알면 인정받고 모르면 헤매는 군대심리학’(책이있는풍경)을 펴냈다. 현재 세계한인학생연합회(GLA) 동문회장을 맡고 있으며, 병영문화혁신위원회 ‘리더십 및 윤리증진’ 분과위원 및 대변인으로 활동 중이다(facebook.com/itye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