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4일 오후 7시 서울 성북구 안암로 고려대 생활도서관에서 학생 8명이 도넛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대학, 안녕들 하십니까’(‘대학, 안녕들’) 모임 회원들이다. 지난해 말 대학가를 강타한 ‘안녕들 하십니까’(‘안녕들’) 대자보 열풍으로 인연이 돼 만든 단체다. 이날 모임에는 서울대, 고려대, 서울시립대, 성공회대, 원광대 학생들이 모였는데, 새내기부터 대학원생까지 참가자 연령은 다양했다.
이날 ‘대학, 안녕들’이 논의한 주제는 대학 내 ‘위헌 학칙’. 이들은 성균관대, 중앙대, 성신여대, 국민대 등의 학칙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학생의 정치 활동을 막는 등 위헌 여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25개 대학은 학생회장 출마자에 학점제한을 둔다. 이는 위헌일 뿐 아니라 학생 자치에 대한 탄압으로 보인다. 고등교육법 규정에도 맞지 않는다. 부당하다며 항의할 경우 자칫 불이익을 받게 될까 봐 말을 못 한다.”
이들은 앞으로 대학 학칙 관련 세미나와 기자회견을 준비하기로 하고 3시간 회의를 마무리했다.
지난해 말 우리 사회를 강타한 ‘안녕들’ 열풍이 대자보를 넘어 한국 사회 공론장 구실을 하고 있다. 이 열풍 이후 대학별, 지역별로 ‘안녕들’ 모임이 자발적으로 만들어졌고, 다양한 계층 사람이 모임에 참가해 우리 사회의 안녕하지 못한 이유를 따져보며 공론화하고 있는 것이다.
‘청소년,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제목의 대자보를 붙이고 활동을 시작했다는 김로디(21·필명) 씨는 “평소 청소년 인권문제에 관심이 많았는데 지난해 ‘안녕들’ 열풍을 보고 나도 할 말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며 “이후 뜻이 맞는 친구끼리 모여 ‘청소년, 안녕들’을 만들었고 청소년 문제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양한 계층 자발적 모임 생겨나
대학별 ‘안녕들’ 단체도 속속 생기고 있다. 서울대, 중앙대, 동국대, 부산대 등에서는 학내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안녕들 하십니까’ 단체가 생겼고 부산, 창원, 전주, 광주 등에서는 지역 이름을 건 지역 ‘안녕들’ 단체가 만들어졌다. 이들은 일주일에 한 번 정기모임을 갖는다. 각 대학과 지역단체 대표가 모인 ‘안녕 네트워크’는 이들 단체의 활동을 지원하거나 전국적인 행사를 기획하고 출판 업무를 맡고 있다.
‘안녕 네트워크’에서 활동하는 임민경(26) 씨는 “‘안녕들’ 현상이 벌어지고 페이스북 (Facebook) 페이지에 ‘대학별 안녕들’을 비롯해 여러 ‘안녕들’이 만들어졌다”며 “비슷한 이름을 쓰고 ‘좋아요’(게시 글에 동의를 표시하는 버튼)를 눌러주다 보니 ‘안녕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자연스레 뭉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안녕들’이 특정 정파의 목소리를 내거나, 논의 주제가 한정된 것은 아니다. ‘안녕들’이 대학생 정당으로 모습을 바꿀 거라는 예상도 있었지만 이들은 스스로 정파에 묶이지 않은 공론장이 되길 바란다고 한다. ‘안녕 네트워크’에서 활동하는 강태경(27) 씨의 설명이다.
“2월 22일 고려대 대강당에서 ‘안녕들’ 회원 6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총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안녕들’이 지향할 가치를 논하지는 않았다. 관료조직처럼 중앙에서 지시하는 게 아니라 여러 단체가 ‘안녕들’이라는 물음을 가지면서 고민하고 토론하면 좋겠다는 생각에서다. ‘안녕들’ 현상에 대한 해석이나 견해,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도 모두 다르다. 만약 정파가 된다면 지금 가진 가치를 잃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공론이 일어나는 공간 정도의 수준이다.”
이에 따라 여러 ‘안녕들’ 모임은 청소년 토론회, 대자보 백일장을 개최하거나, 3월 8일 여성의 날 행사에 참여하는 등 자발적으로 활동한다. ‘안녕 네트워크’는 3월 21일 그동안 전국에 게시했던 200개 대자보 내용을 담은 책 ‘안녕들 하십니까? : 한국 사회를 뒤흔든 대자보들’을 냈다. 강씨는 “이 책은 한국 사회에 던지는 작은 발제문이다. 토론의 시작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안녕들’이 지향하는 ‘진정한 공론장’을 만들려면 넘어야 할 산도 많다고 대학생은 입을 모은다. 여러 사람의 관심을 받으면서 공론장 구실을 하려면 다양한 사회적 주제를 다뤄야 하고, 운동권 학생만의 모임이라는 인식도 벗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많은 사람 관심과 참여가 관건
서울종합예술학교 3학년 강동리(23) 씨는 “‘안녕들’은 소극적 사회참여 운동이지만 의미가 깊다고 생각했다”면서 “하지만 활동하는 사람만 계속 활동하거나 그들만의 대자보 놀이로 끝나지 않으려면 더 많은 사람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숙명여대 법학과 4학년 남윤민(23) 씨는 “‘비판적 의식을 갖고 살자’는 뜻을 전하고 싶었던 학생 대자보가 무작정 정부를 비판하는 대자보가 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 행동에 거부감을 가질 사람이 많기 때문”이라며 “대자보 열풍이 불 때는 소위 운동권이 아닌 학생이 다수 참여했지만 오프라인에서 활동하는 건 결국 운동권이라는 인식도 ‘안녕들’모임이 풀어야 할 숙제”라고 말했다.
‘안녕들’모임은 이러한 비판을 받아들이면서도 많은 사람이 자기 이야기를 터놓는 중요한 구심점이 됐다고 자평한다.
‘대학, 안녕들’에서 활동하는 최하영(24) 씨는 “‘안녕들’ 모임 활동을 하는 사람은 대부분 자기 공간에서 목소리를 내던 이들이다. 중요한 것은 과거에 비해 폭넓은 호응을 얻는다는 점”이라며 “‘안녕들’ 모임이 더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불러일으키는 구실을 했으면 좋겠다. ‘안녕들’ 모임은 삶 속의 공론장이 되길 지향한다.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큰 운동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안녕 네트워크’는 책 출판에 맞춰 북 콘서트를 준비하고 있다. 또한 대자보 번역, 다큐멘터리 제작, 팟캐스트 방송 등 다양한 시도도 준비 중이다. 한 청년이 던진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물음이 우리 사회에서 어떤 의미 있는 공론장을 만들어 나갈지 자못 궁금하다.
●‘안녕들 하십니까’란… 2013년 12월 10일 고려대 정경대학 후문에 경영학과 4학년 주현우 씨가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제목의 대자보를 붙였다. 이 대자보는 철도파업 노동자의 직위 해제와 청년의 정치적 문제에 관심을 촉구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후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구호는 전국 학생과 일반인의 ‘응답 자보’로 이어졌다. 주씨는 철도파업에 대해 목소리를 내려고 응답 자보를 쓴 다른 학생들과 12월 11일 ‘안녕들 하십니까’ 모임을 만들었다. 당시 참여한 학생 대부분이 현재 ‘안녕 네트워크’에서 활동한다.
이날 ‘대학, 안녕들’이 논의한 주제는 대학 내 ‘위헌 학칙’. 이들은 성균관대, 중앙대, 성신여대, 국민대 등의 학칙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학생의 정치 활동을 막는 등 위헌 여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25개 대학은 학생회장 출마자에 학점제한을 둔다. 이는 위헌일 뿐 아니라 학생 자치에 대한 탄압으로 보인다. 고등교육법 규정에도 맞지 않는다. 부당하다며 항의할 경우 자칫 불이익을 받게 될까 봐 말을 못 한다.”
이들은 앞으로 대학 학칙 관련 세미나와 기자회견을 준비하기로 하고 3시간 회의를 마무리했다.
지난해 말 우리 사회를 강타한 ‘안녕들’ 열풍이 대자보를 넘어 한국 사회 공론장 구실을 하고 있다. 이 열풍 이후 대학별, 지역별로 ‘안녕들’ 모임이 자발적으로 만들어졌고, 다양한 계층 사람이 모임에 참가해 우리 사회의 안녕하지 못한 이유를 따져보며 공론화하고 있는 것이다.
‘청소년,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제목의 대자보를 붙이고 활동을 시작했다는 김로디(21·필명) 씨는 “평소 청소년 인권문제에 관심이 많았는데 지난해 ‘안녕들’ 열풍을 보고 나도 할 말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며 “이후 뜻이 맞는 친구끼리 모여 ‘청소년, 안녕들’을 만들었고 청소년 문제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3년 12월 고려대 정경대 후문에 붙은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와 2014년 3월 10일 ‘대학, 안녕들’이 주최한 ‘대자보 백일장’ 홍보 포스터(위).
대학별 ‘안녕들’ 단체도 속속 생기고 있다. 서울대, 중앙대, 동국대, 부산대 등에서는 학내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안녕들 하십니까’ 단체가 생겼고 부산, 창원, 전주, 광주 등에서는 지역 이름을 건 지역 ‘안녕들’ 단체가 만들어졌다. 이들은 일주일에 한 번 정기모임을 갖는다. 각 대학과 지역단체 대표가 모인 ‘안녕 네트워크’는 이들 단체의 활동을 지원하거나 전국적인 행사를 기획하고 출판 업무를 맡고 있다.
‘안녕 네트워크’에서 활동하는 임민경(26) 씨는 “‘안녕들’ 현상이 벌어지고 페이스북 (Facebook) 페이지에 ‘대학별 안녕들’을 비롯해 여러 ‘안녕들’이 만들어졌다”며 “비슷한 이름을 쓰고 ‘좋아요’(게시 글에 동의를 표시하는 버튼)를 눌러주다 보니 ‘안녕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자연스레 뭉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안녕들’이 특정 정파의 목소리를 내거나, 논의 주제가 한정된 것은 아니다. ‘안녕들’이 대학생 정당으로 모습을 바꿀 거라는 예상도 있었지만 이들은 스스로 정파에 묶이지 않은 공론장이 되길 바란다고 한다. ‘안녕 네트워크’에서 활동하는 강태경(27) 씨의 설명이다.
“2월 22일 고려대 대강당에서 ‘안녕들’ 회원 6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총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안녕들’이 지향할 가치를 논하지는 않았다. 관료조직처럼 중앙에서 지시하는 게 아니라 여러 단체가 ‘안녕들’이라는 물음을 가지면서 고민하고 토론하면 좋겠다는 생각에서다. ‘안녕들’ 현상에 대한 해석이나 견해,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도 모두 다르다. 만약 정파가 된다면 지금 가진 가치를 잃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공론이 일어나는 공간 정도의 수준이다.”
이에 따라 여러 ‘안녕들’ 모임은 청소년 토론회, 대자보 백일장을 개최하거나, 3월 8일 여성의 날 행사에 참여하는 등 자발적으로 활동한다. ‘안녕 네트워크’는 3월 21일 그동안 전국에 게시했던 200개 대자보 내용을 담은 책 ‘안녕들 하십니까? : 한국 사회를 뒤흔든 대자보들’을 냈다. 강씨는 “이 책은 한국 사회에 던지는 작은 발제문이다. 토론의 시작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안녕들’이 지향하는 ‘진정한 공론장’을 만들려면 넘어야 할 산도 많다고 대학생은 입을 모은다. 여러 사람의 관심을 받으면서 공론장 구실을 하려면 다양한 사회적 주제를 다뤄야 하고, 운동권 학생만의 모임이라는 인식도 벗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많은 사람 관심과 참여가 관건
서울종합예술학교 3학년 강동리(23) 씨는 “‘안녕들’은 소극적 사회참여 운동이지만 의미가 깊다고 생각했다”면서 “하지만 활동하는 사람만 계속 활동하거나 그들만의 대자보 놀이로 끝나지 않으려면 더 많은 사람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숙명여대 법학과 4학년 남윤민(23) 씨는 “‘비판적 의식을 갖고 살자’는 뜻을 전하고 싶었던 학생 대자보가 무작정 정부를 비판하는 대자보가 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 행동에 거부감을 가질 사람이 많기 때문”이라며 “대자보 열풍이 불 때는 소위 운동권이 아닌 학생이 다수 참여했지만 오프라인에서 활동하는 건 결국 운동권이라는 인식도 ‘안녕들’모임이 풀어야 할 숙제”라고 말했다.
‘안녕들’모임은 이러한 비판을 받아들이면서도 많은 사람이 자기 이야기를 터놓는 중요한 구심점이 됐다고 자평한다.
‘대학, 안녕들’에서 활동하는 최하영(24) 씨는 “‘안녕들’ 모임 활동을 하는 사람은 대부분 자기 공간에서 목소리를 내던 이들이다. 중요한 것은 과거에 비해 폭넓은 호응을 얻는다는 점”이라며 “‘안녕들’ 모임이 더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불러일으키는 구실을 했으면 좋겠다. ‘안녕들’ 모임은 삶 속의 공론장이 되길 지향한다.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큰 운동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안녕 네트워크’는 책 출판에 맞춰 북 콘서트를 준비하고 있다. 또한 대자보 번역, 다큐멘터리 제작, 팟캐스트 방송 등 다양한 시도도 준비 중이다. 한 청년이 던진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물음이 우리 사회에서 어떤 의미 있는 공론장을 만들어 나갈지 자못 궁금하다.
●‘안녕들 하십니까’란… 2013년 12월 10일 고려대 정경대학 후문에 경영학과 4학년 주현우 씨가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제목의 대자보를 붙였다. 이 대자보는 철도파업 노동자의 직위 해제와 청년의 정치적 문제에 관심을 촉구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후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구호는 전국 학생과 일반인의 ‘응답 자보’로 이어졌다. 주씨는 철도파업에 대해 목소리를 내려고 응답 자보를 쓴 다른 학생들과 12월 11일 ‘안녕들 하십니까’ 모임을 만들었다. 당시 참여한 학생 대부분이 현재 ‘안녕 네트워크’에서 활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