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 아키하바라의 에로 망가 전문숍.
연예인을 꿈꿨던 오가와 미나(19)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잡지 모델로 데뷔하는 행운을 얻었다. 한 가지 문제는 또래 아이들이 즐겨 보는 틴에이저 대상의 패션지가 아니라 소녀애를 다룬 일명 ‘로리타 잡지’라는 것.
중학교에 진학해 이미지 DVD를 내면서 본격적인 아이돌로 스텝 업 할 기회를 노린 그를 기다리고 있던 건 바로 남자 스태프들의 협박 아닌 협박이었다. 성인 남성들이 한패가 돼 “T팬티를 입는 건 자유지만 이번에 안 팔리면 그다음은 없다”는 위협을 가하자 중학생 미나는 T팬티를 입고 성기 부위의 접사 촬영은 물론 성행위와 구강성교 포즈까지 취해야 했다.
그러나 그런 고생을 하면서까지 낸 사진집과 DVD로 미나에게 돌아온 건 인기가 아닌 “음란하다”는 동급생들의 비난과 왕따였다. 결국 연예계 활동을 시작한 지 6년 만인 18세에 은퇴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사진집이나 DVD는 아동포르노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지만 결국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유통되고 있다.
#2 헨타이쇼죠지다이(變態少女時代)
4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음란물 전문 출판사 산와에서 발행하는 무크지와 DVD 시리즈인 ‘헨타이쇼죠지다이(變態少女時代)’는 제목 그대로 ‘소녀들의 변태적 행위’를 사진으로 담아 상당한 마니아층을 확보한 ‘인기물’이다. 강간, 근친상간, 사디즘과 마조히즘(SM), 배설, 치한, 윤간 등 페이지마다 넘쳐나는 과격한 사진들의 모델은 모두 진짜 소녀들이다. 그것도 유아부터 청소년까지 고루 갖춰 소아성애를 선호하는 독자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킨다.
이런 사진집이 일반 서점과 아마존 재팬 등에서 버젓이 팔리는 이유는 바로 소녀들을 주인공으로 하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음란물로 ‘걸리는’ 수위는 체모의 노출 여부. 그러니 아직 2차 성징이 이뤄지기 전 소녀라면 모자이크 처리를 하지 않아도 오케이(OK)라는 얘기다.
촬영 적법성을 떠나 사진 속 소녀들의 표정이 서글프다. 자신의 꿈인 사진집 주인공이 됐음에도 시리즈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소녀의 얼굴엔 두려움이 서려 있다. 이를 두고 한 일본 누리꾼은 자신의 블로그에 “겁먹은 표정이 최고!”라는 평을 남겼다.
#3 딸 속옷마저 파는 비정한 엄마들
음란물 전문 출판사 산와가 발행하는 ‘변태소녀시대’.
그럼에도 이 사건은 일본 사회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이와 유사한 사건은 한 해에도 수차례 보도되는 ‘흔한 일’이기 때문이다. 등장인물과 배경만 바꿔서 방영하는 막장 드라마처럼 말이다.
이와 같은 사례들은 ‘아동포르노 대국’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는 일본 사회의 단면이다. 일본 경찰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 내에서 적발한 아동포르노 제작 및 판매 관련 사건은 2010년 1324건을 가볍게 뛰어넘은 1455건. 역대 최다 건수다. 아동포르노와 관련해 피해를 당한 아동 수도 확인된 것만 638명에 달한다.
일본에서 아동포르노를 본격적으로 단속하기 시작한 것은 아동매춘·포르노 금지법을 제정, 시행한 1999년. 이는 그 이전까지 단속 근거가 약해 ‘안전지대’에서 번성하던 아동포르노에 대해 엄중한 법 잣대를 적용하는 계기가 됐다.
위험한 촬영…그라비아 사진집
일본에서 제작, 유통하는 아동포르노의 형태는 미성년자가 직접 출연하는 음란 동영상과 포르노, 사진집, 에로 망가(야한 만화) 등이다. 그중 가장 많이 만들어지고 팔리는 사진집과 망가의 경우 ‘성인물’과 ‘포르노’의 경계가 분명치 않아 단속이 애매한 실정이다.
일본에서 미성년자의 나체사진을 ‘소녀사진’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사진집을 발매한 것은 1960년대부터다. 당대 유명 사진작가들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은 동화를 차용한 예술적이고 몽환적인 포커스로 소녀들의 누드집을 내면서 ‘소녀사진=예술’이라는 면죄부가 제작자와 구매자 사이에서 통하게 됐다. 유명 사진작가들이 피사체로 ‘소녀’를 선택한 건 아직 2차 성징이 시작되지 않은 미성년자의 누드는 ‘체모 금지’ 조항에 걸리지 않는다는 단순한 이유에서다. 소녀사진을 전문으로 찍는 작가까지 등장하면서 ‘소녀사진’ 시장은 점점 커졌다.
예술과 외설의 경계를 넘나들던 소녀사진이 ‘과격화’ 노선을 걷게 된 것은 일본의 거품경제가 한창이던 1980년대 일이다. 평범한 누드사진으론 독자의 시선을 잡아끌기 어려워진 출판사들이 성적 요소를 가미하기 시작하면서 예술성이 짙던 소녀사진은 가볍고 선정적인 ‘그라비아(일본의 여성 모델이 주로 비키니를 입고 제작한 화보) 사진’으로 변모했다. ‘헨타이쇼죠지다이’처럼 노골적인 하드코어를 내건 잡지도 등장했다. 미성년자의 ‘성(性)’을 둘러싼 어른들의 욕망이 본격적인 상업화 노선을 걷게 된 것이다.
사진집 출간이 늘면서 무명 사진작가들을 마구잡이로 기용한 것도 과격화 노선에 불을 지폈다. 이전 작가들이 자신의 지명도를 고려해 작품성이 높은 사진을 찍었던 반면, 새롭게 등장한 작가들은 출판사의 요구에 따라 돈을 목적으로 무분별하게 사진을 찍으면서 점차 정도를 넘어선 사진집이 등장했다.
열혈 팬을 쉽게 모을 수 있는 그라비아 사진집을 통해 무명에서 일약 스타로 도약한 사례가 생기면서 그라비아 사진을 연예계 진출의 발판 정도로 가볍게 생각하는 모델 지망생이 늘어난 것도 문제다. 이들 대부분이 10대 초·중반의 어린 나이라 아동포르노에 대한 인식이 전무하다시피 해 ‘뜰 수 있다’는 회유만으로도 위험한 촬영에 임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이 성인이 된 후 AV 여배우로 전직하거나 유흥업소로 빠지는 사례는 아동포르노의 피해 사례에 결코 집계되지 않는 숨겨진 비화일 뿐이다.
오가와 미나는 처음 사진집을 낼 때만 해도 성기에 물 묻은 휴지를 붙인 채 접사 촬영을 하는 (그라비아에선 지극히) 일반적인 사진을 주로 찍었다. 하지만 은퇴 직전엔 버추얼 섹스와 자위를 연상케 하는 포즈를 취할 정도로 과격해졌다. 하지만 어느 것도 법의 제재를 받지 않은 채 서점에서 버젓이 팔렸다. 일본의 아동매춘·포르노 금지법은 ‘아동의 성교, 아동의 성기를 만지거나 아동에게 성기를 만지도록 시키는 행위, 성욕을 자극하는 요소’에 대해서만 단속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미성년자의 성기나 유두가 노출되면 아동포르노로 단속하는 미국이나 유럽에 비하면 더없이 느슨한 규제라고 할 수 있다.
아동매춘·포르노 금지법에 따르면 일본에서 발매하는 대부분의 출판물과 이미지 DVD는 포르노가 아니다. 만든 당사자와 구매자들이 “성적 자극 없는 예술작품”이라고 주장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외국에서 일본을 ‘아동포르노 대국’이라고 인식하는 것에 대해 일본인이 반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포르노가 아닌 합법적인 출판물이라는 점을 오히려 아동매춘·포르노 금지법에 의해 인정받는 셈이기 때문이다. 이 기준에 따르면 앞서 소개한 오가와 미나의 사진집이나 ‘헨타이쇼죠지다이’ 등도 성행위와 상호 성기를 만지는 장면이 없는 데다 “흥분되지 않는다”는 주관적 평가가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에 합법적인 출판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10세 전후 여자아이들의 누드 사진을 모은 사진집 ‘어린 소녀의 미숙한 나체’.
하지만 에로 망가나 에로 아니메(애니메이션)를 들춰보면 보호받아야 할 상상력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큰 의문이 든다. 물론 창작자의 상상력은 보호받아야 하지만, 에로 망가나 에로 아니메에 한해선 ‘어떻게 하면 법에 걸리지 않게 더 과격한 장면을 그릴 수 있을까’에 국한돼 있는 듯한 인상이 짙기 때문이다.
보호받아야 할 상상력 어디까지
눈에 거슬리지 않는 만화적 효과를 이용해 문제가 되는 성행위 장면이나 성기 노출, 성기 접촉 등을 교묘히 가리는 기술을 상상력이라고 부른다면 에로 망가의 상상력은 이미 전성기에 이른 듯하다. 게다가 2차원의 창작물이라는 점을 이용해 실사 포르노에선 보기 힘든, 유아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거나 강간, 윤간, SM 등 실사 포르노에선 흉내도 낼 수 없는 잔혹한 행위들이 주저 없이 묘사되는 것을 보면 그들이 주장하는 ‘창작의 자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아동매춘·포르노 금지법에 반대하는 이들은 “아동포르노가 아동성범죄로 연결되지 않는다”며 아동포르노의 무해성을 주장한다. 그 근거로 미성년자 강간 사례가 연간 600명가량 발생하던 1960년대에 비해 아동포르노가 범람하는 2000년대엔 되레 50명 전후로 줄었다는 통계를 들이댄다. 하지만 낮아진 성범죄율에 비해 아동포르노로 인한 피해 아동은 해마다 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오히려 해를 거듭하면서 만남사이트나 전화방을 이용한 원조교제 같은 아동매춘 건수는 늘어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아동포르노를 유해매체로 단정하고 법으로 단속하는 이유는 아동포르노로 인해 유발되는 범죄 때문만이 아니라, 아동포르노 자체가 범죄행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강간, 폭력 등 아동포르노 생산과정에서 생기는 범죄만이 문제가 아니다. 아동포르노 확산이 아동의 성적 대상화와 맞물린다는 점에도 문제 소지가 있다. 물론 상의를 벗고 속옷만 입고 있다는 이유로 ‘아톰’을 아동포르노 범주에 넣은 엄격한 미국식 제재는 문화적 차이를 무시한 횡포일 뿐 아니라, 창작자의 상상력을 저해하는 요소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현재 일본에서 양산되는 아동포르노는 분명 ‘상상력’으로 용인될 수 있는 선을 넘어섰다. 업계 이익에 따른 상상력을 보장할 것인가, 아니면 아동 인권을 보호할 것인가. 한 치 양보도 없는 민감한 상황에서 확실한 것은 단 하나, 일본 당국이 어느 쪽 손을 드느냐에 따라 전 세계 아동포르노 시장 판도 또한 큰 변화를 보일 것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