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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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치고 응급실 지켜?

8월 5일 ‘응급실 전문의 당직제’ 시행 앞두고 현실성 논란 가열

  •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입력2012-07-23 10: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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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닥치고 응급실 지켜?

    7월 초 서울시내 한 종합병원의 응급실(왼쪽) 및 수술실 풍경.

    8월 5일 이후 응급실을 찾는 환자는 당직 전문의에게 직접 진료를 받을 수 있다. 2010년 경북대병원에서 발생한 ‘장중첩증 소아 사망 사고’ 이후 “응급환자 누구나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받도록 하겠다”며 지난해 국회가 법을 바꿨기 때문이다. ‘응급실 전문의 직접 진료’를 규정한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지난해 6월 국회를 통과해 그해 8월 4일 공포됐다. 법 공포 이후 1년 뒤 시행한다는 점에서 올해 8월 5일부터 전국 모든 응급실에 적용된다. 관련 시행령과 시행규칙은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가 5월 입법예고했다. 그러나 법 시행을 코앞에 두고도 ‘응급실 전문의 당직제’를 둘러싼 ‘현실성’ 논란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의료계와 병원계는 응급실 전문의 당직제가 실현 가능하다는 견해를 보인다”면서 “의료계 현실을 고려하고 입법 취지를 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응급의료기관에 국고보조금을 지급하고, 응급의료관리비를 수가로 청구하도록 하는 등 국가가 직간접적으로 다양하게 지원하는 만큼, (병원과 전문의는) 응급의료라는 의무를 다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응급실 진료의 질 하락 우려

    그러나 모든 병원 모든 과에서 응급실 전문의 당직제를 시행하는 것에 대해 전문의들은 크게 우려한다. 야간 당직을 선 다음 날 잠 한숨 못 자고 외래와 수술까지 병행해야 한다면 전문의들이 체력적 한계에 부딪혀 전체 진료 질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

    송현곤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은 “응급실 전문의 당직제는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가 큰 제도”라면서 “응급의료의 질을 높이겠다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부족한 전문의 인력과 시스템은 그대로 두고 처벌 규정만 강화한다고 해서 사문화한 정책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반면 대한병원협회 측은 “응급실 운영의 묘를 살리면 법 취지를 구현할 수 있다”는 견해를 보였다. 이상석 대한병원협회 부회장은 “응급실에 찾아온 환자 가운데 진짜 응급환자를 가려내고, 중대한 환자의 경우 능력 있는 전문의에게 치료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 입법 취지”라면서 “응급환자의 상태에 따라 탄력적으로 (응급실 전문의 당직제를) 운용하면 전문의에게 돌아갈 부담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병원 응급실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세부 시행규칙에 담으려고 정부와 협의하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보건복지부는 애초 전공의(레지던트) 3년차 이상도 응급실 당직을 서게 하려고 했지만, 대한전공의협의회가 크게 반발하자 전문의가 직접 진료하는 것으로 방침을 바꿨다. 경문배 대한전공의협의회 정책이사는 “응급실 전문의 당직제는 과태료 처분 같은 강제성을 강화하는 것만으로 실효성을 거두기 어렵다”면서 “전문의가 절대 부족한 상황에서 인력수급은 어떻게 할 것이며, 그에 따른 비용 부담은 또 어떻게 할지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면 응급실 전문의 당직제는 파행으로 치달을 개연성이 크다”고 말했다.

    “어기면 과태료 처분 기가 막혀”

    닥치고 응급실 지켜?

    서울성모병원 위암센터 치료팀에 속한 전문의와 전공의들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전문의들 역시 ‘응급환자 24시간 상시 진료’를 위해 당직 전문의가 응급환자를 직접 진료하도록 명문화한 것은 현실을 도외시한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고 비판한다. 수도권에 위치한 C종합병원의 사례를 보자. 2011년 4월부터 2012년 3월까지 이 병원 응급실을 찾은 환자는 총 3만7000명. 하루 평균 100명꼴이다. 이 가운데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직접 해결한 환자는 하루 평균 40명. 나머지 60명은 응급의학과에서 진료한 뒤 해당 전문과 전공의가 해결했다.

    소아과의 경우 응급실을 찾은 환자가 하루 평균 25명이었고, 그중 17명은 심야 또는 새벽에 찾아왔다. 이 병원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는 7명이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꼴로 응급실 당직이 돌아온다. 그러나 전문의가 4명(1명은 해외연수 중이라 실제 근무하는 전문의는 3명)에 불과한 신경과는 사흘에 한 번꼴로 당직을 서야 한다. 신경과 전문의 D씨는 “생명이 위급한 환자의 진료를 마다할 의사가 어디 있겠나. 다만 사흘에 한 번씩 정년 65세가 될 때까지 심야든 새벽이든 공휴일이든, 언제든 콜 받으면 병원에 나와서 직접 진료하도록 명문화하고, 이를 어기면 과태료 처분하겠다는 것은 병원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처사”라고 개탄했다.

    또 다른 전문의는 이렇게 말했다.

    “사나흘에 한 번꼴로 전문의처럼 공무원도 야간과 심야에 수시로 호출하고 다음 날 정상업무를 보라고 하면 어느 공무원이 환영하겠나. 또 누가 정년까지 근무하려 들겠는가. 환자 우선 정책을 펴는 것도 좋지만, 정작 일해야 할 사람들의 업무 현실을 고려해 실현 가능한 방안을 마련한 뒤 시행해야 하는 것 아닌가. 국민 생명을 담보로 한 정책이라며 무조건 법부터 만들고, 법대로 안 지키면 과태료 처분하겠다는 발상은 후진적이다.”

    외국 사례는

    선진국, 전공의에 당직 책임 맡겨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전문의가 아닌 전공의(레지던트)에게 당직 책임을 맡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종합병원 응급실 운용 시스템은 전문의 당직제 전면 시행 이전의 현행 우리나라 응급의료 시스템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한다. 미국 동부 유명 대학병원에 근무하는 한국계 전문의 L씨는 “대학병원 응급실에 찾아온 응급환자는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먼저 보고, 전문과 진료가 필요하면 연차가 낮은 전공의(레지던트)가 환자를 먼저 진료한 뒤 필요한 경우 상위 연차 전공의가 환자를 본다”면서 “가끔 펠로(전문의를 이미 취득했으나 세부 영역을 더 공부하고 수련받는 과정)가 볼 때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전문의(대학교수)는 다음 날 출근해 당직 레지던트와 회진을 도는 것이 미국 어느 주에서든 통용되는 시스템”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응급환자가 전공의가 아닌 전문의에게 진료를 받으면 환자나 환자가 가입한 보험사에서 막대한 추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고 한다. 응급실에서 전문의에게 진료받는 데 드는 비용이 최소 수백 달러 수준이라는 것.

    L씨는 “한국에서 새로 도입한 응급의료 시스템을 제대로 시행한다면 응급환자에게는 좋겠지만 전체적으로 환자 진료의 질이 떨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심야와 새벽에 병원에서 호출받아 응급환자를 진료해야 하는 전문의가 다음 날 외래환자와 병실환자, 중환자실 환자까지 커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면서 “돈은 안 쓰고 일은 더 시키겠다는 제도가 오래 지속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본의 경우도 기존 우리나라 응급의료 시스템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일본은 국가 의사면허를 취득한 이후 2년간 의무적으로 임상연수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야간과 새벽 시간에는 내과와 외과 등 필수 전문과(科) 연수의(우리나라 전공의)가 응급실에서 당직을 선다. 특히 일과시간 이후 심야 이전까지의 준(準) 야간시간에는 연수의 1명이 당직을 설 수 있도록 탄력적으로 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일본 의료법에는 휴일과 야간에 당직을 할 경우 1년차 전공의는 반드시 지도의사와 함께 근무하도록 명시돼 있으며, 고참 전공의는 단독으로 당직을 설 수 있도록 허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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