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는 이러한 흐름에서 약간 비켜나 있기는 하지만 큰 그림으로 보면 비슷한 면이 많다. 1300조 원이 넘는 가계부채의 부실 가능성이 제기되고, 최근 ‘핀테크’(FinTech·금융+기술)로 대표되는 새로운 흐름이 나타나면서 은행들의 입지는 매우 좁아지고 있다. 방향을 제대로 잡으면 변화의 시기를 잘 헤쳐나갈 수 있지만 반대의 경우 더욱 힘든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P2P·크라우드펀딩 등 형태도 다양

언번들링 전략은 이와 반대다. 각각의 서비스와 상품을 떼어내 독립적으로 다룬다. 최근 유행하는 핀테크 전략은 바로 이 언번들링 전략과 맥을 같이한다. 기존 은행, 증권, 카드사 등이 제공하는 금융 서비스의 일부에 빅데이터, 정보통신기술(ICT), 스마트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인공지능(AI) 등을 가미해 좀 더 신속하고 저렴하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중심이 되고 있다. 예를 들어 은행은 송금, 결제, 예금, 대출 서비스를, 증권사는 펀드 판매, 증권 중개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핀테크는 이 가운데 일부 서비스만 특화하는 것이 특징이다. 예를 들어 불특정다수의 돈을 모아 대출 관련 서비스만 따로 제공하는 핀테크업은 P2P(Peer to Peer) 대출이라는 이름으로 제공된다. 증권사가 제공하는 많은 서비스 가운데 인터넷을 기반으로 불특정다수의 돈을 모아 펀드를 조성한 후 주로 벤처기업에 창업자금 등을 지원하는 크라우드펀딩도 핀테크업의 일부다. 스마트폰으로 편리하게 송금이나 계좌이체를 할 수 있는 간편 송금결제 서비스도 중요한 핀테크 분야다. 이처럼 송금, 펀드, 대출 등의 서비스가 독립적으로 따로따로 제공되는 것이 큰 특징이다.
이렇게 되면 기존 금융기관은 상당한 도전을 받게 된다. 대출서비스가 P2P 업체에 의해 활성화되면 은행의 대출영업은 시들해지기 마련이다. 송금서비스가 간편해져도 마찬가지다. 증권사나 벤처캐피털의 펀드 서비스도 크라우드펀딩에 잠식당할 개연성이 크다.
일각에서는 중국의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 사례를 주로 언급하지만 이는 매우 특수한 경우다. 알리바바는 전자상거래 서비스를 하면서 신용카드가 없는 소비자에게 알리페이라는 회사를 통해 전자결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결제 자금이 일시적으로 부족한 고객에게 대출 서비스를 하기도 하고, 결제계좌에 미리 자금을 넣어두면 이를 고금리로 운용하는 위어바오라는 서비스도 제공한다. 한마디로 전자결제, 대출, 자금운용 등을 한곳에서 원스톱으로 제공하는 번들링 전략이 작동하는 셈이다. 하지만 중국은 13억 인구 중 신용카드를 사용하는 사람은 1억 명밖에 되지 않고, 우리나라처럼 금산분리 원칙도 엄격하지 않다. 결국 알리페이는 ‘안 되는 건 없다’는 중국 특유의 상업 마인드가 이뤄낸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큰 그림으로 보면 이제 은행업이나 증권업의 다양한 서비스가 언번들링 전략에 따라 각각 독립적으로 제공되는 시대가 오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핀테크를 통해 활성화, 가시화되고 있다. 그렇기에 기존 금융기관들, 특히 은행은 핀테크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맞서 싸워야 한다.
비이자 수익모델 구축해야

ATM이 가장 많은 K은행의 경우 ATM 대당 연간 166만 원 손실이 발생한다. 물론 이는 직접적인 비용과 이익만 계산한 것으로,고객의 지점 방문을 줄이는 등 간접적인 이익은 감안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직접비용이 수익보다 많다는 것은 그만큼 수수료 영업이 어렵다는 뜻이다. ATM 자체도 비싸고 고객의 왕래가 잦은 대로변 건물 1층에 설치하는 데 따른 임차료도 상당하다. 냉난방과 조명 사용으로 인한 전기료도 비싸고, 보안카메라에 현금 재고 유지 서비스까지 꽤 많은비용이 든다. 그런데 우리나라 금융 소비자의 생각은 다르다. ‘내가 내 돈 찾는데 웬 수수료가 이리 비싸냐’는 식이다. 이런 상황에서 은행들은 수수료를 올려받기 어렵고, 금융감독 당국까지 나서 수수료를 깎느라 바쁘다. 우리나라 시장에서 수수료 중심의 영업이 힘든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고령화 시대가 진전되면서 자산관리에도 상당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은행들은 소위 돈 많은 고객을 위한 PB(Private Banking)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문제는 돈을 제대로 버는 PB가 적다는 점이다. 자산관리 수수료를 직접 청구하기가 힘든 분위기 탓이다. 그러다 보니 펀드에 가입한 후 이익이 나면 이를 환매하고 다른 펀드로 갈아타도록 유도함으로써 수수료를 발생시키는 방법으로 간접수익을 챙긴다. 하지만 이를 바꾸지 않고서는 은행의 미래는 결코 밝아질 수 없다.
상황은 어렵지만 이럴 때일수록 은행들은 다양한 전략과 대응을 통해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다음은 은행들이 서둘러야 하는 전략적 대비다.
첫째, 핀테크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한 자구책을 마련해야 한다. 금융업은 대표적인 규제산업이고 우리나라는 규제 정도가 매우 강하다 보니 기술적 관점을 강조하는 핀테크업체는 상당 부분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핀테크업도 금융업으로 취급된다는 점에서 온갖 규제의 틀에 갇혀 있다.
결국 핀테크 서비스를 은행 스스로 개발해 제공하는 것이 나을 수 있다. 하지만 은행들이 이를 추진하면서 상당 부분 동력을 잃을 가능성이 큰 만큼 핀테크업체와 전략적 제휴가 한결 수월할 수 있다. 이러한 움직임에 물꼬가 트인 이상 향후 상황이 빠르게 전개될 개연성이 있는데, 초반에는 서비스 제공 면에서 불협화음이 생길 수도 있다. 기존 서비스에 대한 파괴적 접근이 필요한 경우 은행은 속도 조절을 하려 들거나, 심지어 도입을 회피하려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를 방지하려면 핀테크 전담 자회사 혹은 독립부서를 통해 전략을 추진하는 게 현명하다. 즉 은행 내부에 핀테크 친화적 거버넌스(governance) 체계를 도입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둘째, 자산관리 서비스를 강화해야 한다. 저금리·고령화 시대에는 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려 부동산을 매입하는 식의 재테크는 더는 힘을 받지 못한다. 빚 없이 보유 자산을 잘 관리해 수익을 내는 시대가 오고 있는 것이다. 즉 ‘부채시대’에서 ‘자산시대’로 이행이다. 은행들은 자산관리 서비스의 전면적인 재검토를 통해 서비스 제공 체제를 서둘러 개선해야 한다. 또한 인공지능을 이용해 자산관리 등에서 완전히 새로운 서비스도 적극 도입해야 한다. 알파고의 성공이 바둑계 전체 흐름을 바꿔놓은 것처럼 인공지능의 발전은 금융업 전반에 상당한 충격을 안길 것이기 때문이다. 자산운용 부분에서 고수익을 담보하는 시스템이 개발되기만 한다면 자산관리시장은 일대 변혁에 휩싸일 것이다. 그 결과 수많은 회사가 도태될 수도 있다. 물론 최근 들어 로보어드바이저라 부르는 인공지능 자산관리 시스템이 출현하고 있지만 아직은 이렇다 할 수준까지 이르지 못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혁명적 발전이 나타날 수 있는 만큼 시장을 선점하려는 다부진 노력이 필요하다.
자산관리 서비스 놓치지 말아야

넷째, 다양한 번들링과 언번들링 전략을 구사하되 전통적 상품과 서비스를 저비용에 제공할 수 있도록 체질을 강화하면서 다양한 신상품을 개발해야 한다. 특히 저금리·고령화 시대에 맞춰 다양한 금융상품을 출시함으로써 핀테크업체가 제공하기 어려운 영역을 집중 공략해야 한다.
다섯째, 세계화 전략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과거 금융허브 전략을 통해 외국계 금융기관을 우리 시장으로 초청하는 인바운드(in-bound) 전략을 구사한 바 있지만 사실상 실패했다. 이제는 우리가 밖으로 나가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아웃바운드(out-bound) 세계화 전략을 추진해야 한다. 외환위기 직전 세계화 전략을 일부 시행했지만 외환위기와 함께 철회함으로써 끝났다. 이제 새로운 흐름을 만들면서 동남아 등 유망한 시장을 공략해야 한다.
여섯째, 은행 점포 체제를 새로운 환경에 맞게 전면 개편해야 한다. 직장인이 퇴근한 시간 혹은 주말에 문을 열고 고객을 맞는 게 더욱 효율적일 수 있다. 단순 서비스를 창구직원에게 맡기는 것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지점 수를 줄이거나 기능을 조정해 비용을 낮추고 조직을 슬림화해야 한다.
일곱째, 비대면영업과 비이자수익 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다양한 방법과 전략을 통해 간접 혹은 직접 수수료 수입을 최대한 확보해 비이자수익을 증대해야 한다. 미국 은행은 예대마진과 수수료 수익의 비중이 5 대 5 정도인 반면, 우리나라 은행은 9 대 1 정도다. 따라서 다양한 수수료 수입의 원천을 만들고 확보해야 한다.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기존 은행들은 ‘새 부대’라기보다 ‘헌 부대’에 가깝다. 그렇기 에 미래금융을 준비하는 데 은행의 자체적 혁신과 개선이 반드시 필요한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