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원로 배우 알랭 들롱(왼쪽)과 그의 젊은 시절 모습. [뉴시스, GettyImages]
‘세기의 미남 배우’가 선택한 인생 ‘마지막 여행’ 방식이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프랑스의 원로 배우 알랭 들롱(87)은 최근 ‘안락사’로 삶을 마무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들롱이 동료 여배우 나탈리 들롱과 결혼해 낯은 아들 앙토니는 최근 프랑스 방송사와 인터뷰에서 “아버지로부터 안락사에 대한 요청을 받았다”고 밝혔다.
들롱은 과거에도 여러 차례 안락사에 대해 긍정적 태도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안락사는 논리적이고 자연스러운 일”, “특정 나이가 되면 우리는 병원이나 생명 유지 장치를 거치지 않고 조용히 세상을 떠날 권리가 있다”며 안락사에 찬성한 바 있다. 전 부인 나탈리의 죽음도 그가 안락사를 선택한 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나탈리는 예후가 좋지 않은 췌장암 투병 중 지난해 1월 프랑스 파리에서 숨졌다. 당초 안락사를 원했으나 프랑스 정부가 안락사를 금하고 있어 무위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들롱은 1964년 나탈리와 결혼해 1969년 이혼한 후에도 꾸준히 교류했다. 나탈리의 사망 소식에 “나는 그녀 삶의 일부였고 그녀도 내 삶의 일부였다”며 비통한 심정을 토로했다.
‘프렌치 누아르’ 전성기 주역
들롱은 특유의 수려한 외모와 연기력으로 ‘프렌치 누아르’ 전성기를 이끈 명배우다. 1935년 태어난 들롱은 부모의 이혼 등 가정불화로 불우한 성장기를 보냈다. 파리에서 웨이터, 잡역부를 전전한 끝에 영화계에 투신해 1957년 ‘여자가 다가올 때’로 데뷔했다. 1960년 영화 ‘태양은 가득히’로 세계적 톱스타 자리에 올랐고 ‘볼사리노’ ‘암흑가의 두 사람’ ‘한밤의 살인자’ ‘미스터 클라인’ 등 성공적인 필모그래피를 이어갔다. 1995년 베를린 국제영화제 명예 황금곰상, 2019년 칸 영화제 명예 황금종려상을 받은 세계 영화계의 원로이기도 하다.현재 들롱은 안락사가 법적으로 허용된 스위스에 체류하고 있다. 1999년 스위스 시민권을 취득한 프랑스·스위스 이중국적자다. 들롱은 2019년 뇌졸중 수술을 받은 후 스위스에서 머물고 있으며 이미 현지 변호사들과 상의해 재산 등 신변 정리도 마쳤다고 전해진다. 다만 들롱이 당장 위독한 것은 아니며 건강이 더 악화될 경우에 대비해 안락사를 미리 결정한 것이다. 스위스에서 허용된 안락사는 환자가 의사로부터 처방 받은 약물을 스스로 주입해 삶을 마감하는 일종의 ‘조력에 의한 죽음’이다. 타인이 직접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적극적 안락사’는 스위스에서도 불법이다.
한국에서는 2009년 ‘김 할머니 사건’을 계기로 존엄한 죽음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본격화됐다. 당시 식물인간이 된 김 할머니에 대한 연명치료 중단해달라는 가족들과 이를 거부한 병원 간 소송전이 벌어졌다. 2009년 5월 대법원은 “회복 불가능한 사망 단계에 이른 환자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에 기초해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 연명치료 중단을 허용할 수 있다”며 존엄사를 허용했다. 해당 사건을 계기로 2016년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다. 환자 의사에 따라 치료 효과 없이 생명만 연장하는 의학적 시술을 중단·유보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다만 환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을 돕는 등 죽음에 직간접적으로 가담하는 행위는 형법상 촉탁·승낙에 의한 살인이나 자살교사·방조죄로 1년 이상 10년 이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
김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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