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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경험이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지 않기를 바라며 이 글을 씁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역사 수업과 TV에서 방영하던 시대극 드라마를 통해 한일관계를 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야인시대’ ‘불멸의 이순신’ 같은 드라마가 인기였습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은 쉬는 시간마다 역할 놀이를 했습니다. 반에서 인기 있는 친구들은 선한 ‘조선인’ 역을, 그 반대에 있는 친구들은 악한 ‘일본인’ 역을 맡아 드라마 속 장면을 따라 하곤 했습니다. 드라마에 나오는 ‘조센징’과 ‘쪽발이’ 같은 단어를 써가며 실제 그 역할이 된 것처럼 놀았습니다. 물론 놀이였기 때문에 재미있는 추억으로 남았지만, 몇 가지 돌이켜 생각해볼 만한 것이 있습니다.
“정제되지 않은 표현은 비난”
제 어머니가 일본인이라는 사실을 이 역할 놀이를 하면서 처음 느꼈던 것 같습니다. 운 좋게도 저는 인기가 있었고 영향력 있는 친구 무리에 껴 있던 터라 조선인 역할을 부여받았습니다. 하지만 혹시라도 친구들이 어머니가 일본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내게 일본인 역을 맡기지 않을까, 걱정하곤 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불편함’이기 이전에 이런 사실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존’에 관한 고민에 가까웠습니다. 정체성을 형성해가고 있는 혼혈의 초등학생이 자칫 잘못하면 또래 사회에서 벗어나게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느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그러한 까닭에 중학교 시절까지 친구들을 집에 초대하지 않았고, 어머니가 일본어를 알려준다고 할 때마다 완강하게 거절했습니다. 고등학생이 된 이후에는 ‘나는 한국인이다’라는 생각을 스스로 강화하고자 어려운 한국어들을 찾아 단어장에 기록해두곤 했습니다. 또래 사회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았고, 또 한국인으로 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은연중에 일본은 악(惡)에 가깝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중 두려움에 저항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가장 친한 친구에게 어머니가 일본인이라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다행히도 그 친구는 제가 염려했던 것과 달리 편견을 가지고 저를 대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이러한 기회가 몇 차례 더 있었고, 좀 더 수월하게 어머니가 일본인이라는 사실을 주변에 말할 수 있었습니다. 요즘에는 고등학생 시절보다 더 적극적으로 제가 한일 혼혈임을 밝히는 편입니다.
이번 한일 갈등 같은 일이 생기면 주변으로부터 좋지 않은 이야기를 듣곤 합니다. 개인마다 표현의 차이가 있지만, ‘쪽발이’ 같은 다소 과격한 표현이 주를 이룹니다. 얼마 전에도 한 지인이 지소미아(GSOMIA·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에 대해 언급하며 제 앞에서 ‘쪽발이’라는 표현을 쓴 적이 있습니다. 그를 무안하게 만들고 싶진 않아 자연스럽게 제가 최근 일본에 갔던 이야기를 꺼내며 조심스럽게 어머니가 일본인이라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그는 자신이 한 말이 떠올라 어색했는지 얼른 화제를 바꿨습니다.
제가 혼혈이라는 사실을 아는 친구들조차도 일본이 옳지 않다고 판단하는 일에 대해 서슴없이 말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친구들은 일본인을 상대로 과격한 표현을 쓴 것에 대해 사과하기도 하고, 그냥 넘어가기도 합니다. 이럴 때 정제되지 않은 표현은 비난으로 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한 표현의 기저에는 제가 어릴 때 봤던, 한일 선악 구도가 여전히 영향을 끼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친구들에게 제가 혼혈이라는 사실을 밝힌 것이 악인 역할을 맡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려는 상징적인 행동이었다면, 이 두려움을 실제적으로 없애기 위해 택한 것은 역사 공부였습니다. 역사라는 것이 선과 악을 명확하게 구분하기보다 시기에 따라, 맥락에 따라 사안이 다르게 비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역사를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제게 주어진 한일 간 선악의 대결 구도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역사 전공으로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이번 기회에 과거 경험을 돌이켜봅니다. 저는 저 스스로 한국인이라고 생각하기 위해 무던히 노력해왔습니다. 법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제가 한국인이라는 것은 명백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한국과 일본 사이에 위치한 사람으로서 경험했던 선과 악의 구도가 현재도 여전히 유효하다고도 느낍니다.
“차분했던 도쿄 사람들”
8월 23일 일본 도쿄에서 한 일본 시민이 한일 지소미아(GSOMIA·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에 관한 TV 보도를 시청하고 있다. [뉴시스]
이러한 가운데 도쿄 분위기는 대단히 조용했습니다. 편의점에서 두어 번 일본인 할아버지와 “한국인이세요?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좋지 않은데, 잘 됐으면 좋겠습니다” 하는 대화를 나누기는 했지만, 한국인이기 때문에 무언가 불리한 상황을 맞은 적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옆집 할머니는 공부하느라 고생한다며 과자와 음료를 챙겨주셨고, 강의하던 선생님의 지인은 밥값으로 쓰라며 선뜻 용돈을 쥐어주셨습니다.
다만 매스컴의 태도는 사뭇 달랐습니다. NHK에서 나오는 한일관계 관련 뉴스를 두어 번 봤는데, 뉴스의 내용과 어조는 생각보다 자극적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자료 화면으로는 일장기와 아베 신조 총리의 얼굴 사진을 태우는 한국 국민의 시위 현장이 부각됐습니다. 이것이 은연중에 일본 국민 사이에서 한국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로 고착되지는 않을까 걱정됐습니다. 지역과 개인마다 경험의 차이가 있겠지만, 저의 한 달 경험에 비춰볼 때 일본 국민에게서는 양국의 정치·외교적 관계만큼 첨예한 감정 대립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선입견에 빠진다면 건강한 대화 불가”
국내 한일 가정에서 나고 자란 한 20대 청년이 스마트폰으로 한일관계 관련 기사를 보고 있다. ‘주간동아’에 보낸 글에서 그는 “일부 극우세력이 아닌 일본인 전체에 대한 선입견은 갖지 않았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김우정 기자]
물론 일본 사회 일각의 움직임은 경계해야 합니다. 과거사 문제를 왜곡하는 일본 극우 세력이나 이를 악용해 혐한(嫌韓)을 선동하는 일본 정치인들의 행태는 이성적 감정(鑑定)을 통해 비판해야 합니다. 이러한 노력 속에서 더 나은 한일관계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