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츠버그의 앤디 워홀 미술관에 근무하는 엘렌 박스터는 어느날 아침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미술관 안을 둘러보고 있었다. 워홀의 작품 중 하나인 ‘욕조’(Bathtub) 앞을 지나치는 순간,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라 할 말을 잊고 말았다. 그림의 한 구석에 보란 듯이 붉은색 립스틱 자국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어느 관람객이 경비원의 눈을 피해 고의로 남겨놓은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장난’으로 보기에는 너무도 심한 행동이었다.
이것은 생각처럼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아니, 미술관 전체에 비상이 걸릴 만큼 중대한 사건이었다. 립스틱 자국을 지울 수 있는 방법은? 물로 빡빡 문지른다? 립스틱은 물에 지워지지 않는다. 알코올이나 벤젠 등의 유기용매를 사용하면? 유기용매로 립스틱 자국을 녹일 수는 있다. 하지만 녹은 립스틱이 캔버스 천 속으로 더욱 깊이 침투해 보기 흉한 핑크빛 자국을 남길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워홀의 그림은 욕조만 그려진 아주 단순한 것이라 입술 자국은 마치 작가의 사인처럼 더욱 도드라져 보이는 것이었다.
그림을 벽에서 떼어낸 채 몇 개월을 고민하던 미술관 관계자들은 ‘미국 미술품 보존 협회’의 연례 회의에서 발표되었던 미 항공우주국(NASA)의 연구결과를 기억해냈다. NASA는 로켓 과학을 이용해 훼손된 미술품을 복원해낸 희한한 사례를 이 회의에서 발표했던 것이다. 미술품과 NASA의 로켓 과학.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 두 가지가 과연 어떻게 연결될 수 있었을까.
과학자들은 가끔 아주 우연한 발상에서 탁월한 결과를 끌어낸다. NASA와 미술품 복원의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NASA의 연구진들은 우주왕복선이나 인공위성의 표면을 망가뜨리는 산소원자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우주선이 떠 있는 높은 고도에서는 자외선에 의해서 산소분자(O2)가 원자 상태의 산소(O)로 분해되는데 바로 이 산소원자들이 우주선의 보호막을 녹여버리는 것이다. NASA는 산소원자의 공격으로부터 우주선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꾸준히 연구해 오고 있었다.
NASA 글렌 연구센터에서 이 분야를 연구하고 있던 브루스 뱅크스와 샤론 밀러는 자신들의 연구를 뒤집어 생각해 보았다. 산소원자는 우주왕복선의 표면 보호막을 분해시킬 만큼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 강력한 능력을 반대로 사용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들은 궁리 끝에 손상된 예술품, 예를 들면 화재로 망가진 미술작품을 복원하는 데에 산소원자의 분해능력을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내기에 이르렀다.
예나 지금이나 미술품은 화재에 속수무책이다. 1992년에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거주하는 윈저성에 불이 났을 때도 영국 왕실은 수집해 온 많은 미술품들을 화마에 속수무책으로 잃었다. 불길이 그림의 표면을 그을리기만 해도 현재의 기술로는 복원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을음을 벗겨내기 위해 벤젠이나 알코올 같은 유기용매를 사용하면 그림의 표면이 부풀어오르고 원래의 색상이 배어 나와 탈색이 일어나는 등, 원작이 훼손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기용매 대신 산소원자를 사용하면 캔버스 천이 부풀어오르거나 색상이 번질 염려가 없다. 그을음과 산소원자 사이의 반응은 그림의 표면에서만 일어나기 때문에 원래의 그림이나 캔버스 천은 아무런 손상을 입지 않는다.
좀 어렵더라도 전문적인 용어를 몇 가지 동원해 보자. 원작 그림의 성분은 산화금속이다. 산화금속은 산소원자와 반응을 일으키지 않는다. 그리고 그 위에 시꺼멓게 묻은 검댕은 탄화수소다. 탄화수소는 산소원자와 반응해서 일산화탄소, 이산화탄소, 그리고 물로 변한다. 결론적으로 말해 그을음 위에 산소원자를 쐬어주면 그을음은 일산화탄소와 이산화탄소, 그리고 수증기가 되어 ‘마법처럼’ 날아가 버리게 된다.
NASA에 가장 먼저 예술품의 복원을 의뢰한 곳은 클리블랜드 미술관이었다. 이 미술관은 화재로 그을린 두 점의 19세기 유화를 복원하고 싶어했다. NASA의 과학자들이 손상된 그림 위에 레이저처럼 산소원자를 쏘아주자 색상이 서서히 살아나면서 검댕으로 뭉개졌던 머리타래, 섬세한 눈썹, 꽃이 수놓아진 소매, 염주 등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화학반응이 불러일으킨 기적 아닌 기적이었다. 이 광경을 지켜본 한 관계자는 “검댕이 사라진 것은 물론이고 묵은 때가 사라지면서 화재 전에 볼 수 없었던 보석장신구나 막달라 마리아의 망토처럼 세밀한 부분까지 볼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앤디 워홀 미술관이 기억해낸 것은 NASA의 이같은 연구성과였다. NASA는 ‘욕조’의 경우도 복원을 자신했다. 립스틱의 성분 역시 화재의 검댕과 마찬가지로 탄화수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술관측은 안심할 수만은 없었다. 때아닌 립스틱 낙인에 이어 NASA의 실험마저 실패한다면 수십만 달러나 하는 그림은 완전히 망가져 버리고 말 것이었다. 몇 번의 모의실험을 거친 뒤에야 립스틱 자국이 찍힌 ‘욕조’가 NASA 연구진들의 손에 넘어왔다. 캔버스 천 한 올 한 올에 산소원자총을 쏘는 작업이 하루종일 계속되었다. 미술관 관계자들은 숨을 죽인 채 이 광경을 지켜보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차츰 빨간 립스틱 자국이 사라져갔다.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한 장면처럼…. 자칫하면 지하창고에 처박힐 운명이었던 ‘욕조’는 다시금 미술관의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게 되었다.
몇 번의 성공사례에 자신을 얻은 NASA의 연구팀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양초와 횃불에 오랜 기간 그을린 고대 이집트 유적들에서 검댕을 제거하는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또한 화재로 인해 훼손된 여러 대작들, 예를 들면 화재로 불타버린 모네의 ‘수련’ 같은 그림도 어쩌면 복원이 가능할지 모른다.
문제는 오히려 엉뚱한 곳에 있다. 보수적인 미술관측이 과학을 이용한 NASA의 복원방법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이다. NASA의 한 연구진이 디스커버리지와의 인터뷰에서 토로한 대로 대다수의 미술관들은 ‘기존의 복원방법을 쓸 수 있는 경우라면 절대로 이상한 신기술을 쓰지 않는다.’ 그러나 NASA의 복원법은 이상한 신기술도, 마법도 물론 아니다. 이것은 다만 현대 과학이 이루어낸 수많은 진보 중 아주 작은 한 부분일 뿐이다.
이것은 생각처럼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아니, 미술관 전체에 비상이 걸릴 만큼 중대한 사건이었다. 립스틱 자국을 지울 수 있는 방법은? 물로 빡빡 문지른다? 립스틱은 물에 지워지지 않는다. 알코올이나 벤젠 등의 유기용매를 사용하면? 유기용매로 립스틱 자국을 녹일 수는 있다. 하지만 녹은 립스틱이 캔버스 천 속으로 더욱 깊이 침투해 보기 흉한 핑크빛 자국을 남길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워홀의 그림은 욕조만 그려진 아주 단순한 것이라 입술 자국은 마치 작가의 사인처럼 더욱 도드라져 보이는 것이었다.
그림을 벽에서 떼어낸 채 몇 개월을 고민하던 미술관 관계자들은 ‘미국 미술품 보존 협회’의 연례 회의에서 발표되었던 미 항공우주국(NASA)의 연구결과를 기억해냈다. NASA는 로켓 과학을 이용해 훼손된 미술품을 복원해낸 희한한 사례를 이 회의에서 발표했던 것이다. 미술품과 NASA의 로켓 과학.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 두 가지가 과연 어떻게 연결될 수 있었을까.
과학자들은 가끔 아주 우연한 발상에서 탁월한 결과를 끌어낸다. NASA와 미술품 복원의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NASA의 연구진들은 우주왕복선이나 인공위성의 표면을 망가뜨리는 산소원자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우주선이 떠 있는 높은 고도에서는 자외선에 의해서 산소분자(O2)가 원자 상태의 산소(O)로 분해되는데 바로 이 산소원자들이 우주선의 보호막을 녹여버리는 것이다. NASA는 산소원자의 공격으로부터 우주선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꾸준히 연구해 오고 있었다.
NASA 글렌 연구센터에서 이 분야를 연구하고 있던 브루스 뱅크스와 샤론 밀러는 자신들의 연구를 뒤집어 생각해 보았다. 산소원자는 우주왕복선의 표면 보호막을 분해시킬 만큼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 강력한 능력을 반대로 사용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들은 궁리 끝에 손상된 예술품, 예를 들면 화재로 망가진 미술작품을 복원하는 데에 산소원자의 분해능력을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내기에 이르렀다.
예나 지금이나 미술품은 화재에 속수무책이다. 1992년에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거주하는 윈저성에 불이 났을 때도 영국 왕실은 수집해 온 많은 미술품들을 화마에 속수무책으로 잃었다. 불길이 그림의 표면을 그을리기만 해도 현재의 기술로는 복원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을음을 벗겨내기 위해 벤젠이나 알코올 같은 유기용매를 사용하면 그림의 표면이 부풀어오르고 원래의 색상이 배어 나와 탈색이 일어나는 등, 원작이 훼손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기용매 대신 산소원자를 사용하면 캔버스 천이 부풀어오르거나 색상이 번질 염려가 없다. 그을음과 산소원자 사이의 반응은 그림의 표면에서만 일어나기 때문에 원래의 그림이나 캔버스 천은 아무런 손상을 입지 않는다.
좀 어렵더라도 전문적인 용어를 몇 가지 동원해 보자. 원작 그림의 성분은 산화금속이다. 산화금속은 산소원자와 반응을 일으키지 않는다. 그리고 그 위에 시꺼멓게 묻은 검댕은 탄화수소다. 탄화수소는 산소원자와 반응해서 일산화탄소, 이산화탄소, 그리고 물로 변한다. 결론적으로 말해 그을음 위에 산소원자를 쐬어주면 그을음은 일산화탄소와 이산화탄소, 그리고 수증기가 되어 ‘마법처럼’ 날아가 버리게 된다.
NASA에 가장 먼저 예술품의 복원을 의뢰한 곳은 클리블랜드 미술관이었다. 이 미술관은 화재로 그을린 두 점의 19세기 유화를 복원하고 싶어했다. NASA의 과학자들이 손상된 그림 위에 레이저처럼 산소원자를 쏘아주자 색상이 서서히 살아나면서 검댕으로 뭉개졌던 머리타래, 섬세한 눈썹, 꽃이 수놓아진 소매, 염주 등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화학반응이 불러일으킨 기적 아닌 기적이었다. 이 광경을 지켜본 한 관계자는 “검댕이 사라진 것은 물론이고 묵은 때가 사라지면서 화재 전에 볼 수 없었던 보석장신구나 막달라 마리아의 망토처럼 세밀한 부분까지 볼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앤디 워홀 미술관이 기억해낸 것은 NASA의 이같은 연구성과였다. NASA는 ‘욕조’의 경우도 복원을 자신했다. 립스틱의 성분 역시 화재의 검댕과 마찬가지로 탄화수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술관측은 안심할 수만은 없었다. 때아닌 립스틱 낙인에 이어 NASA의 실험마저 실패한다면 수십만 달러나 하는 그림은 완전히 망가져 버리고 말 것이었다. 몇 번의 모의실험을 거친 뒤에야 립스틱 자국이 찍힌 ‘욕조’가 NASA 연구진들의 손에 넘어왔다. 캔버스 천 한 올 한 올에 산소원자총을 쏘는 작업이 하루종일 계속되었다. 미술관 관계자들은 숨을 죽인 채 이 광경을 지켜보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차츰 빨간 립스틱 자국이 사라져갔다.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한 장면처럼…. 자칫하면 지하창고에 처박힐 운명이었던 ‘욕조’는 다시금 미술관의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게 되었다.
몇 번의 성공사례에 자신을 얻은 NASA의 연구팀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양초와 횃불에 오랜 기간 그을린 고대 이집트 유적들에서 검댕을 제거하는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또한 화재로 인해 훼손된 여러 대작들, 예를 들면 화재로 불타버린 모네의 ‘수련’ 같은 그림도 어쩌면 복원이 가능할지 모른다.
문제는 오히려 엉뚱한 곳에 있다. 보수적인 미술관측이 과학을 이용한 NASA의 복원방법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이다. NASA의 한 연구진이 디스커버리지와의 인터뷰에서 토로한 대로 대다수의 미술관들은 ‘기존의 복원방법을 쓸 수 있는 경우라면 절대로 이상한 신기술을 쓰지 않는다.’ 그러나 NASA의 복원법은 이상한 신기술도, 마법도 물론 아니다. 이것은 다만 현대 과학이 이루어낸 수많은 진보 중 아주 작은 한 부분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