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경호처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박종준 대통령경호처장의 인사말이다.
대통령 경호처 직원들의 경호 시범 모습 [동아일보 DB]
그렇지만 법조계에서는 “적법하게 발부된 체포영장의 집행을 막아서는 근거가 될 수 없다”, “영장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라는 비판이 나온다.
당장 야당에선 경호처를 해체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하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한 때는 ‘권력의 2인자’로 통하며 세상을 호령하기도 했던 경호처다. 하지만 지금은 국회 탄핵소추안이 가결되고 체포영장이 발부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법 집행을 저지하는 처지에 이르렀다.벼랑 끝 위기에 내몰린 경호처의 부침을 되돌아본다.
‘대신 죽는 연습’ 보여주는 경호처
‘탕!’한 발의 모의 총성이 울렸다. 대통령 주변에 있던 경호원들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일제히 대통령을 향해 몸을 날렸다. 대통령을 겨냥한 총탄을 대신 맞기 위해 이들은 팔과 다리를 모두 활짝 벌렸다.
대통령의 최근접 경호를 담당하는 대통령경호실(현재 대통령경호처)은 10 여 년 전 까지만 해도 새 정부가 들어서면 신임 대통령 내외를 초청해 경호시범 행사를 열었다. 목숨을 바쳐 대통령을 지키겠다는 결의를 보여주는 것이다.
2003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자신을 위해 대신 죽는 연습을 하는 경호원들의 시범을 보고 눈물을 흘린 일화는 유명하다. 2008년 경호시범을 참관한 이명박 전 대통령도 예정에 없던 인사말을 통해 “경호관들이 얼마나 헌신적으로 직무에 임하는지를 새삼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이 같은 경호시범 행사는 박근혜 문재인 청와대에선 열리지 않았다. “시대의 변화를 반영했다”는 설명이었다. 윤석열 정부에선 개최 여부가 명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그렇지만 대통령과 경호처장의 특수한 관계는 여전하다.
차지철 전 경호실장(오른쪽)이 경복궁에서 국기 하기식을 지휘하던 모습. [동아일보 DB]
한 때는 '권력 2인자', 평탄치 않은 말로
경호처장은 대통령과 가족들의 동선을 포함한 모든 일거수일투족을 관리한다. 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만큼 측근으로 통했고 핵심 실세로 꼽혔다.특히 과거 군사정권 시절 군 출신 경호실장들의 위세는 실로 대단했다. 3공 시절 박종규·차지철 경호실장이 권력을 휘둘렀고, 5공의 장세동 경호실장, 6공의 이현우 경호실장이 그랬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해 사건 당시 대통통비서실장이었던 김계원 씨가 10·26 수사 과정에서 남긴 증언에 따르면 차 실장은 함께 운동을 한 당시 백두진 국회의장이 샤워장에서 빨리 나오지 않자 “이 늙은이가 무엇을 우물우물하는가. 늙으면 죽어야 한다”고 호통 친 일도 있다. 그의 월권과 전횡이 10·26 사태의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차 실장이 매주 금요일 경복궁에 정·재계 인사를 초청해 경호실 차원의 ‘국기 하기식’을 열었다는 건 유명한 일화다.
과잉 충성도 문제로 거론됐다. 전두환 정부 때 장세동 경호실장이 대표적이다. 장 실장은 이른바 ‘심기 경호’를 펼쳤다. 대통령 마음이 편안해야 국정도 잘 되니 심기까지 경호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장 실장은 대통령이 산책하다 돌부리에라도 걸리면 심기가 불편해질 수 있다며 도로 평탄화 작업을 지시하는가 하면 대통령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대통령과 같은 향수를 썼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들의 말로는 평탄치 못했다. 차 실장은 1979년 10·26 당시 박 대통령과 함께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탄에 맞아 숨졌고, 장 실장은 5공 비자금 조성과 통일민주당 창당방해사건(일명 용팔이사건)으로 두번 구속됐다. 노태우 전 대통령 시절 이현우 실장은 5공과 6공 비자금 조성에 개입한 혐의로 구속됐다.
경호실의 힘이 빠진 건 김영삼 정부 들어서다. 문민정부를 표방한 김영삼 전 대통령은 경호실에서 군을 배제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답변하고 있는 김용현 당시 국방부 장관. [동아일보 DB]
윤석열 정부서 규모 커진 경호처
“전두환, 차지철 같아서 아주 좋습니다.”(박선원 더불어민주당 의원)“깜도 안 되는 사람을 그렇게 높이 평가해주셔서 감사합니다.”(김용현 당시 국방부 장관)
“차지철이 되지 마시오.”(박 의원)
“전 거기 발가락에도 못 따라갑니다.”(김 장관)
지난해 10월 국회 국방위원회의 국방부 국정감사에서 나온 박 의원과 김 전 장관 사이의 설전이다. 김 전 장관은 지난해 9월까지 경호처장을 지냈다.
현재 경호처장은 차관급이지만 역대 경호처장은 장관급과 차관급을 오갔다.
경호실장이 장관급에서 차관급으로 내려간 건 이명박 전 대통령 때였다. 해외와 비교했을 때 경호처장의 위상이 불필요하게 높다는 지적이 반영됐다. 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경호처는 대통령비서실에서 벗어나는 동시에 대통령경호실로 격상했다. 경호실장은 다시 장관급 대우를 받았다. 시대를 역행한다는 비판도 쏟아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경호실을 경호국으로 낮춰 경찰로 이관할 계획을 밝혔지만 실행되진 않았다. 대신 경호실을 경호처로 다시 내렸다. 이후 지금까지 차관급으로 유지되고 있다.
그렇지만 윤 대통령 취임 이후 경호처 예산과 인력은크게 증가했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 슬림화’ 기조를 강조했지만 경호처 만큼은 예외였다. 나라살림연구소에 따르면 경호처 예산은 2022년 970억 원에서 2023년 985억 원, 2024년 1032억 원, 2025년 1391억 원으로 해마다 증가했다. 예산증가율이 43.4%로 같은 기간 정부 총지출 증가율인 11.5%와 비교해도 그 증가 폭이 4배에 육박한다.
경호처 정원 역시 2022년 698명에서 2025년 758명으로 60명 늘어났다. 경호처 예산 증가의 주요 원인도 인건비였다. 전체 1391억 원의 예산 가운데 675억 원을 차지했다. 이는 2022년과 비교해도 102억 원(17.8%) 증액된 수치다.
기로에 선 경호처
비상계엄 사태를 겪으면서 야당에서는 경호처 해체론까지 제기되고 있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달 4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의원총회에서 “경호처의 체포영장 집행 방해는 제2의 내란”이라며 “경호처를 해체하고 다른 나라들처럼 경호업무를 타 기관으로 이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호처가 ‘대통령 친위부대’처럼 운영되는 점은 군부독재의 잔재라는 지적도 나온다.해외 사례를 보면 대다수 대통령제 국가는 전문 기관을 운영하는 반면 내각제 국가는 경찰에서 경호를 주로 담당하고 있다. 미국은 국토안보부 산하 비밀경호국(USSS)이 대통령과 그 가족, 전직 대통령, 국빈 등의 경호를 맡는다. 일본은 경시청 경비부 경호과에서 총리 및 요인 경호를 전담하는 식이다.
전문가들은 제도보다 대통령의 의지가 중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대통령이 경호처장에게 어디까지 힘을 실어주느냐, 경호실을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따라 경호실의 위상이 바뀔 수 있다. 제도 자체 보다는 대통령의 뜻이 무엇보다중요하다는 얘기다.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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