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닌 척해도 결론은 文心?

추미애, 송영길 두 사람이 일찌감치 뛰기 시작했고 한동안 활동이 뜸하던 김상곤 전 혁신위원장이 합류했다. 그리고 장고를 거듭하며 좌고우면하던 이종걸 전 원내대표가 가세해 더불어민주당(더민주) 전당대회는 4자 구도로 치러지게 됐다.

일단 첫 관심사는 예비경선 탈락자다. 예비경선은 전당대회 본선과는 셈법이 다르다. 여론조사나 일반 당원의 의중은 포함되지 않고 국회의원, 지역위원장, 단체장, 중앙당 당직자 등으로 구성된 당중앙위원회에서 상위 3명만 가려내기 때문이다. 추미애, 송영길 두 사람이 선두그룹을 형성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이종걸, 김상곤 둘 중 한 명이 떨어질 개연성이 높다. ‘비주류’ 표가 결집하고 5선의 저력이 발휘된다면 이 의원이 허들을 넘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를 비롯해 박영선 의원 등이 끝까지 출마를 만류한 점, 옛 혁신위원회 그룹을 포함해 주류 일부가 김 전 위원장에게 우호적인 점을 감안하면 쉽게 가늠하기 어렵다는 관측도 나온다.

그런데 여러 상황을 감안해보면 더 불안하고 탈락 시 타격이 큰 쪽은 김 전 위원장이다. ‘비주류 대표주자’를 자임하는 이 의원은 탈락할 경우 “당이 주류 일색이 돼버렸다”고 주장할 여지가 있지만 김 전 위원장은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과거 야권 경기도지사 후보 0순위

지난 2년여 기간을 돌아보면 김 전 위원장은 계속 어려움을 겪었다. 2014년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둔 상황에선 김 전 위원장의 몸값이 지금과 비교도 안 될 만큼 높았다. ‘무상급식’ 브랜드를 갖춘 데다 경기도교육청을 무난하게 이끌어 교육감 재선에 성공했던 김 전 위원장은 자타공인 야권 경기도지사 후보 0순위로 꼽혔다. 특히 당시 신당 창당을 추진하던 국민의당 안철수 전 상임공동대표의 러브콜이 상당했다. 부산에선 오거돈(전 해양수산부 장관), 경기도에선 김상곤을 신당 간판으로 내세우겠다는 복안이었던 것.



그런데 김 전 위원장은 신당 후보보다 통합 야권후보가 되길 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안 전 대표가 민주당과 합당을 결심할 수밖에 없었던 데도 그의 결정이 상당한 원인이 됐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합당으로 탄생한 새정치민주연합의 경기도기사 경선에서 김 전 위원장은   3등에 그치고 말았다. 내심 ‘대권후보’까지 생각하던 김 전 위원장으로서는 엄청난 타격일 수밖에 없었다. 시련의 시간을 보낸 그는 2015년 야당의 극심한 내홍 국면에서 문재인 전 대표의 구원투수 격으로 혁신위원장을 맡았다. 무난했다는 평가도 있지만 결국 문 전 대표에게 시간을 벌어준 것밖에 한 일이 없다는 박한 평가도 교차한다. 어쨌든 그 후 영입된 김종인 대표와는 존재감이나 역량 면에서 현격한 차이를 보였다는 점을 부정하기 어렵다. 이후 그는 인재영입위원장을 지냈지만 깊은 인상을 남기지 못했고, 출마도 고려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처럼 계속 어려움을 겪은 김 전 위원장으로선 이번 전당대회 출마가 큰 승부수일 수밖에 없다. 이런 까닭에 “김 전 위원장이 아무런 계산 없이 나왔겠느냐”는 시선도 적잖다. 특히 문 전 대표 처지에서 보면 김 전 위원장에게 신세를 진 것도 사실이다.

김종인 대표의 최측근인 최운열 의원이 김 전 위원장과 주고받은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김 대표에게 보여주는 모습도 최근 카메라 렌즈에 포착됐다. 김 전 위원장의 광주일고, 서울대 상대 후배인 최 의원은 김 전 위원장에게 ‘조그마한 힘이라도 되어드리고 싶습니다’라는 문자메시지를 답으로 보냈다.

문 전 대표 측의 지원사격, 우호적 비주류 인사들의 결집 등이 보태진다면 김 전 위원장도 해볼 만하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하지만 냉정하게 보면 분명히 상황은 어렵다. 최 의원과 주고받은 문자메시지에는 ‘김상곤의 전화번호를 저장해주십시오’라는 내용이 들어 있다. 초면이나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냉정한 현실주의자인 김종인 대표 쪽과 김 전 위원장 사이엔 접점이 거의 없다. 문 전 대표에게 김 전 위원장을 지원할 여력이 있을지도 의문이다.

‘대세론’ ‘해보나 마나 한 선거’라는 얘기가 부담스러운 문 전 대표는 전당대회에 어떤 시그널도 보내지 않고 있다. 문 전 대표와 가까운 인사 중에서도 이호철 전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 박선원 전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전략비서관, 강화수 전 청와대 정책조정행정관 등은 송영길 의원을 거들고 있고, 최재성 의원 그룹은 추미애 의원을 돕고 있다. 문 전 대표 측 한 인사는 “각자 알아서 도울 사람 돕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이번 전당대회에 조직적으로 개입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라면서 “끝까지 이렇게 갈 것”이라고 말했다.

관망 분위기 팽배, 이변 가능성 낮아

비주류의 도움을 구하기도 쉽지 않다. ‘김상곤 혁신위원장’ 카드의 첫 제안자로 알려진 이종걸 의원은 본인이 당대표에 출마했다. 비주류 쪽에선 김 전 위원장을 ‘어차피 친문(친문재인)그룹’의 일원으로 분류하는 분위기도 적잖다.

안희정, 박원순 등 다른 예비 대권주자군은 관망하는 모양새다. 한 예비주자의 측근으로 광역자치단체에서 일하는 인사는 “뻔한 판이 되면 안 된다는 생각은 있지만 섣불리 개입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이 인사는 “(추미애, 송영길) 둘 중 한 명이 당대표가 되는 것이 좋으냐고 물어보면 대답하기 어렵지만 대표가 될 사람과 척을 질 순 없는 일이고, 우리가 지금 나서서 제3의 인물을 민다고 그 사람이 될 가능성도 극히 낮다”고 말했다.

더민주 한 초선의원은 김 전 위원장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 “대선후보도, 당대표도 재미없는 대세론으로 흘러가고 있어 걱정되는데, 그렇다고 다른 인물이 새로운 비전을 보여주는 것도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결국 이종걸 의원이나 김상곤 전 위원장 같은 ‘언더독’은 큰 위험을 지고 모험을 하는 것 외 다른 수가 없어 보인다.

7월 28일 교통방송과 인터뷰에서 김 전 위원장이 “지금 어느 한 명의 지지율이 높다고 그것이 끝까지 간다고 보장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대통령선거까지는 아직 1년 반가량이 남아 있지 않느냐. 1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역동적인 대선판이 어떻게 움직일지 아무도 모른다”고 한 발언 역시 이 같은 현실 인식 속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대세론은 위험하다”는 데 많은 사람이 고개를 끄덕인다고 해서 그들이 “그래서 내가 당대표가 돼야 한다”는 말에 동의하리란 보장은 없다.

이종걸 의원이든, 김상곤 전 위원장이든 아직 그것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남은 시간에도 지금 같은 상황이 이어진다면 더민주 8월 전당대회에서 이변을 보긴 어려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