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고 출신 정재계 고위 인사들. 동아DB, 뉴스1, 한화그룹, 두산그룹, CJ 제공.
1974년 고등학교 평준화 정책이 도입되기 전까지 경기고는 전국에서 공부 잘하는 학생들만 모인 곳이었다. ‘서울대는 한해 5000명이 들어가지만 경기고는 500명도 못 들어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법조계, 관계, 정계, 재계 고위층에 경기고 출신들이 다수 포진해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1957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대법관과 감사원장, 국무총리를 지낸 이회창 전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총재(경기고 49회), 1961년 고등고시 행정과에 합격해 장관을 세 번, 서울시장을 두 번 했던 고건 전 국무총리(52회) 등이 모두 경기고 출신이다.
이렇게 공부 잘 하고 사회에 나와 출세한 사람들이 많은 경기고가 이루지 못한 단 한 가지 꿈이 있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내지 못했다. 경기고 33회 졸업생인 고 최규하 전 대통령이 대통령을 역임했지만, 이는 박정희 대통령 서거 이후 과도기 상황에서 통일주체국민회의가 선출한 것이었다.
한 달 앞으로 다가온 6·3 조기 대선에 뛰어든 한덕수 전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도 63회 경기고 졸업생이다. 그가 이번에 대권을 거머쥔다면 ‘첫 경기고 출신 대통령’이라는 역사를 새로 쓰는 셈이 된다.
경기고 49회 이회창, 아들 병역 문제로 낙마
지금까지 경기고 출신 가운데 대통령 꿈에 가장 근접했던 인사는 이회창 전 총재다. 이 전 총재는 대권에 총 3번 도전했다. 처음은 1997년 12월 치러진 제15대 대통령 선거였다. 당시 집권 여당이었던 신한국당에는 ‘9룡(김덕룡·김윤환·박찬종·이수성·이인제·이한동·이홍구·이회창·최형우)’이라 불리던 대선 주자들이 9명이나 있었다. 김영삼 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지낸 이 전 총재는 1997년 7월 21일 열린 신한국당 경선에서 60%라는 높은 득표율로 최종 대선 후보로 확정됐다. 이 전 총재는 경선 직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50% 가까운 지지율을 얻었고 그의 대선 승리는 ‘따 놓은 당상’처럼 보였다.하지만 이 전 총재의 꿈은 두 아들의 병역 문제로 무너졌다. 이 전 총재의 장남과 차남은 최초 병역 판정 검사에서 ‘갑종(현 1급)’을 받았다가 병역 연기 신청 후 ‘체중미달’로 병역을 면제받았는데, 이것이 고의적 병역기피 행위라는 의혹에 휩싸인 것이다. 이후 이 전 총재의 지지율은 20%대로 급락했다. 이런 와중에 신한국당 경선에서 2위로 탈락했던 이인제 후보가 9월 신한국당을 탈당하고 국민신당을 창당, 새로운 당의 대통령 후보로 대선에 출마한다. 결국 여권 지지표가 이 전 총재와 이인제 후보로 분산되면서 야당이었던 새정치국민회의의 김대중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다.
이 전 총재의 두 번째 대선이었던 2002년 대선에서는 48.91%를 득표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57만980표(2.3%포인트) 차로 뒤져 패배했다. 2007년 대선에서 이 전 총재는 이명박 전 대통령(득표율 48.67%), 정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26.14%)에 이어 3위(15.07%)를 기록하며 대선 도전이 막을 내렸다.

제21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경기고등학교 63회 졸업생 한덕수 전 국무총리(왼쪽)와 경기고 33회 졸업생 최규하 전 대통령. 동아DB, 뉴시스.
경기고 출신 유력 대선 주자로는 고건 전 국무총리를 빼놓을 수 없다. 고 전 총리와 한덕수 전 총리는 비슷한 점이 많다. 모두 전주북중학교를 다녔고, 경기고 졸업 후 서울대에 진학했다. 차관, 장관, 부총리, 외국 대사 두 번에 국무총리를 두 차례 역임하고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한 것도 같다.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이력도 두 사람 뿐이다.
고 전 총리는 2004년 3월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후 2개월여간 국정을 안정적으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해 말부터 고 전 총리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대선 주자 선호도 1위로 꼽혔다. 2005년 상반기까지 여러 대선 후보 여론조사에서 2위와의 격차를 10%포인트 이상 벌렸고 30%대의 높은 지지율을 이어갔다. 고 전 총리가 대선에 나가겠다는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았는데도 그를 지지하는 팬클럽이 만들어질 정도였다.
52회 졸업생 고건, 한덕수 닮아
하지만 2005년 하반기부터 고 전 총리의 지지율이 하락하기 시작했다. 그해 10월 경쟁자인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의 지지도가 청계천 복원 이후 급속도로 올랐다. 고 전 총리는 이렇다 할 반전 카드를 내지 못하면서 2006년 12월 실시한 동아일보 여론조사에서 14.1%까지 지지율이 떨어졌다. 결국 고 전 총리는 제17대 대선을 11개월 앞둔 2007년 1월 “상생의 정치를 찾아 진력해 왔으나 대결적 정치구조 앞에서 제 역량이 너무나 부족함을 통감한다”며 대선 출마를 포기했다.이외에도 경기고 출신 유력 인사들로는 정대철 헌정회장(58회), 고 김근태 전 보건복지부 장관(61회), 손학규 전 바른미래당 대표(61회), 정운찬 전 국무총리(62회), 고 노회찬 전 정의당 의원(72회) 등이 있다.
경기고 출신 재계 인사로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66회), 박용만 전 두산그룹 회장(전 대한상공회의소 회장·69회), 손경식 CJ그룹 회장(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경기고 중퇴 후 명예졸업), 방시혁 하이브 의장(87회) 등이 있다.
임경진 기자
zz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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