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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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 구식 전파방해 방식 드론방어체계 도입 추진

광섬유·AI 드론에 속수무책… 드론 위협에 실질적 대응 안 돼

  • 이일우 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입력2025-05-01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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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병대 장병이 4월10일 경북 의성군드론비행센터에서 소형드론대응체계 실사격훈련을 하고 있다 . 해병대 제공

    해병대 장병이 4월10일 경북 의성군드론비행센터에서 소형드론대응체계 실사격훈련을 하고 있다 . 해병대 제공

    한동안 대규모 공세에 나서지 않던 러시아군이 4월 14일(이하 현지 시간)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 지역에서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했다. 이날 공세는 차시브 야르, 벨리카 노보실카 등 여러 축선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행해졌다. 다수의 전차와 장갑차, 오토바이가 작전에 투입됐다. 그러나 몇 시간 만에 전투는 우크라이나군의 일방적 승리로 끝났다. 이날 하루 러시아는 전차 19대, 장갑차 42대, 차량 179대를 잃고 1300명 넘는 사상자를 냈다. 우크라이나군 동부·남부작전사령부는 해당 공세에서 단 1명의 러시아군도 방어 진지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군이 공개한 교전 영상을 보면 러시아군 기갑 차량은 다양한 드론 방어용 구조물을 덕지덕지 붙이고 돌격했지만 삽시간에 궤멸됐다. 우크라이나군이 드론과 지뢰, 박격포를 적절히 조합해 대응했기 때문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드론 전쟁’ 

    같은 날 우크라이나군도 드론에 큰 낭패를 봤다. 우크라이나는 4월 9일부터 러시아 벨고로드에 지상군을 투입해 ‘제2 쿠르스크 전선’을 구축하려 시도하고 있다. 유럽 연수를 다녀온 인원을 중심으로 구성된 최정예 제225독립돌격연대가 선봉이다. 그 외에도 여러 전선에서 잔뼈가 굵고 서방제 장비로 무장한 제47기계화여단과 제17중기계화여단 등 정예 병력이 벨고로드에 투입됐다. 이들 공격부대는 벨고로드 국경의 러시아군 방어선을 돌파하는 데 성공했지만 이내 저지당했다. 우크라이나군은 다양한 방어 장비를 갖춘 미국제 M1A1SA 전차와 M2A2 ODS 장갑차를 투입했음에도 지뢰와 드론으로 방어선을 친 소수의 러시아군 수비대에 격퇴됐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의 대(對)우크라이나 군사 지원이 큰 폭으로 줄었다. 이에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양측이 ‘드론 전쟁’을 벌이면서 전쟁은 교착 국면에 접어들었다. 드론이 정찰·타격 임무를 중심으로 활약하며 전장을 지배하고 있긴 하다. 하지만 거점 장악은 사람이 직접 가서 깃발을 꽂아야 끝나기 마련이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모두 기존에 장악한 지역은 잘 방어하고 있지만 적진 돌입 작전에는 애를 먹고 있다. 전장에서 드론이라는 변수를 완전히 통제하지 못하면 쌍방의 피해만 늘어날 뿐 승부를 결정짓기 어려운 것이다. 이에 따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교착 상태임에도 양측 사상자가 꾸준히 늘고 있다. 사상자는 대부분 드론 공격으로 발생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군 총참모부는 3월 전체 사상자 70%가 드론에 의한 것이라고 밝혔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물론, 세계 각국은 드론 전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드론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다양한 안티(anti) 드론 전략을 고민하고 있다. 드론 잡는 미사일과 드론 잡는 드론까지 등장했다. 근접 전용 화기였던 산탄총은 드론 요격무기로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여러 나라에서 드론 무선 제어 신호를 교란하는 재머(jammer) 보급도 확대되는 추세다. 전차나 장갑차, 차량 외부에 철제 펜스와 합판을 다는 궁여지책도 이제 낯설지 않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3년, 드론 전쟁이 본격화한 지 2년 만에 한국군도 드론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방위사업청(방사청)은 4월 10일 올해  1차 신속시범사업 대상 사업으로 ‘지능형 전자기전 기반 대드론 대응체계’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쉽게 말해 드론 재머를 개발·양산해 배치하는 사업이다. 방사청에 따르면 이 시스템은 모든 방향에서 수신되는 원격제어 신호를 탐지할 전망이다. 위협 신호를 포착하면 재밍으로 적 드론의 원격제어를 차단하고 항법 신호를 교란시킨다고 한다. 해당 시스템은 향후 전차에 탑재될 예정이다. 과연 ‘지능형 전자기전 기반 대드론 대응체계’는 현대 전장에서 드론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까.

    우크라이나군 장병이안티(anti) 드론무기를 들고 있다. 뉴시스

    우크라이나군 장병이안티(anti) 드론무기를 들고 있다. 뉴시스

    드론 재머, 만능 무기 아니다

    드론 재밍은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나뉜다. 원격제어 신호를 가로채 드론 통제권을 빼앗는 방식과 위성항법 신호 수신을 방해하는 방식이다. 통제권을 빼앗는 재밍의 경우 흔히 쓰는 원격제어 신호 주파수 몇 가지를 뽑아 동일한 주파수로 드론의 신호 수신기를 속인다. 드론과 통제소의 거리가 멀어질수록 원격제어 전파는 약해질 수밖에 없다. 반면 재머는 진짜 송신기보다 강한 전파를 송출하기 때문에 드론은 재머 신호를 진짜로 착각하게 된다. 재머가 이런 방법으로 드론의 통제권을 확보하면 전원을 꺼서 추락시키거나 착륙시킬 수 있다.

    이런 방식의 드론 재밍이 최고 가성비 옵션이다. 재머만 있으면 미사일이나 총탄을 사용할 필요 없이 반영구적으로 쓸 수 있다. 전파를 이용하는 지향성 장비라서 일반 총기보다 명중률도 월등히 높다. 드론 재머는 제조국이나 재밍 가능 대역, 출력 및 방해전파 송출 거리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현재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널리 쓰이는 모델은 저렴한 것은 300~400달러(약 43만∼57만 원), 비싸도 2만~3만 달러(약 2900만∼4300만 원) 정도다. 주변 30~50m 범위에서 극히 제한된 대역 몇 개만 재밍할 수 있는 염가형 모델은 수백 달러 정도다. 5~6개 대역을 재밍할 수 있는 소총 형태의 안티 드론건도 보통 수천 달러면 구할 수 있다. 

    방사청이 신속시범사업으로 도입한다는 전차용 재머는 현재 공개된 요구 능력치만 보면 근거리 몇 개 대역을 재밍하는 염가형 모델이다. 이런 재머를 전차나 장갑차에 붙이면 유사시 장병들이 드론 위협에서 해방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노(no)라는 게 필자 견해다. 무기체계 발전 역사는 흔히 창과 방패의 대결로 비유된다. 적 전차와 장갑차를 상대하기 위한 가성비 좋은 무기로 드론이 만들어졌다. 그 드론을 잡으려고 다시 재머가 등장했다. 최근 재머 보급이 확산되면서 안티 재밍 기술도 나오고 있다. 이미 우크라이나 전장에선 안티 재밍 기술이 광범위하게 보급돼 드론 재머를 무력화하고 있다.

    현재 사용되는 안티 재밍 방식은 크게 3가지다. 우선 드론과 컨트롤러가 주고받는 주파수를 암호화하거나 신호 출력을 높여 외부 전파 간섭으로부터 최대한 보호하는 방식이 있다. 또한 무선 재밍 자체가 불가능하도록 광섬유로 드론을 유선 제어하거나 인공지능(AI)을 적용해 재밍이 들어오면 외부 전파를 차단하고 드론 스스로 임무를 수행하게 하는 방식도 있다. 드론과 컨트롤러 자체에 안티 재밍 시스템을 탑재하는 방식은 관련 제품이 여럿 출시되고 있지만 기술적 제약이 많다. 주파수를 암호화하는 방법을 쓰자니 비용 부담이 크고, 제어 신호 출력을 높이자니 전력 소모량이 많아 컨트롤러와 드론 모두 크기가 커진다. 이에 따라 선진국을 중심으로 1인칭 시점(FPV) 드론에도 탑재할 수 있는 초소형·일체형 안티 재밍 시스템이 개발되고 있다. 하지만 이 또한 비용 문제 때문에 소모성 FPV 드론에 광범위하게 적용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우크라이나군 당국이공개한 영상에서러시아군 탱크가 드론공격을 받고 화염에휩싸여 있다. 우크라이나 국방부 X(옛 트위터) 계정

    우크라이나군 당국이공개한 영상에서러시아군 탱크가 드론공격을 받고 화염에휩싸여 있다. 우크라이나 국방부 X(옛 트위터) 계정

    AI 탑재로 똑똑해진 드론

    오늘날 전장에서 가장 흔히 쓰이는 안티 재밍은 광섬유 제어 방식이다. 유선으로 드론을 통제하는 것이라서 재밍 자체가 불가능하다. 게다가 무선에 비해 데이터 전송 속도가 월등히 빨라 드론에 고해상도 카메라나 적외선 센서를 붙일 수 있다. 그 덕에 드론의 명중 정밀도를 높이는 데도 유리하다. 광섬유 드론은 비교적 저렴하고 제작도 간편하다. 이런 배경으로 기존 무선 드론을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최근 우크라이나 전장에선 격렬한 전투가 끝난 뒤 전장 곳곳에 광섬유 잔해가 거미줄처럼 엉켜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다만 광섬유 방식도 만능은 아니다. 유선 케이블 뭉치를 드론에 부착하는 방식이라서 무선 드론보다 비행거리가 짧다. 산림이나 도심 지역에서도 제약이 크다.

    AI 드론은 이런 문제점을 모두 해결한 궁극의 드론이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양측이 전장에 시범 투입하고 있는 AI 드론은 무선 제어 방식인 기존 FPV 드론과 일견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AI 드론은 제어 신호가 끊기거나 재밍으로 의심되는 방해전파에 노출될 때 진가를 발휘한다. AI 드론은 외부 전파 수신을 차단하고 자체 센서와 내장된 알고리즘으로 임무를 수행한다. 임무가 ‘정찰’인 드론 AI는 위성항법시스템(GPS) 등을 이용해 사전에 입력된 좌표 상공을 돌면서 사진이나 영상을 촬영한 뒤 복귀 좌표로 자동 귀환한다. ‘타격’ 임무를 부여받은 AI 드론은 전자광학카메라나 열영상카메라로 적 차량 또는 장비를 스캔한 뒤 돌진해 자폭·파괴한다. 이런 드론은 최대한 빨리 탐지해 물리적으로 파괴하는 방법 말고는 대응책이 없다.

    다시 한국군의 ‘지능형 전자기전 기반 대드론 대응체계’ 이야기로 돌아오자.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 시스템은 적 드론의 제어 신호를 차단·강탈하거나 항법 신호를 교란하는 ‘전파방해’ 방식이다. 이런 유형의 안티 드론 시스템은 군용은 물론, 민수용으로도 광범위하게 보급돼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안티 재밍 기술과 장비도 보급되고 있는 상황이다. 다시 말해 재머 한 가지로 드론에 대응하는 것은 이미 구식 개념이다. 그럼에도 한국군이 이제야 철 지난 개념의 안티 드론 장비를 도입하려는 것은 속된 말로 ‘뒷북’이 되기 십상이다. 전차병들이 이런 드론 대응 시스템만 믿고 있다가는 유사시 광섬유 드론이나 AI 드론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북한 조선노동당 기관지‘노동신문’은 김정은국무위원장(왼쪽)이 3월25~26일 ‘무인정찰및 자폭공격형 무인기’성능시험을 참관했다고3월 27일 보도했다. 뉴스1

    북한 조선노동당 기관지‘노동신문’은 김정은국무위원장(왼쪽)이 3월25~26일 ‘무인정찰및 자폭공격형 무인기’성능시험을 참관했다고3월 27일 보도했다. 뉴스1

    드론 접근 전 격추하는 게 제일

    사실 적의 드론 공격으로부터 전차·장갑차를 보호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드론이 접근하기 전 탐지해 격추하는 것이다. 그래서 선진국의 개발 트렌드는 대전차 로켓·미사일로부터 전차를 보호하려고 개발한 능동방어시스템(APS)을 개선해 드론 요격 능력을 부여하는 것이다. 물론 APS는 일반 재머와 달리 위상배열레이더, 사격통제장치, 요격탄 발사기를 갖춰야 해 중량과 부피가 크고 가격도 비싼 편이다. 한국이 K2 전차에 탑재하려고 개발한 K-APS나 최근 세계 각국이 앞다퉈 구매하는 이스라엘 ‘트로피’ APS는 세트당 20억 원이 넘는다. 방사청이 ‘지능형 전자기전 기반 대드론 대응체계’라는 이름으로 이미 대세가 지난 형태의 드론 재머를 조달하겠다고 나선 것이 비용 부담 탓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행정 군대’ 같은 보여주기 식 사업이 아닌, 드론 위협에 실질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장비 도입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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